성경의 기본 지식.

16편 소돔 심판은 혼의 이사.

geun2 2023. 4. 27. 08:26

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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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모르는 이야기

 

야훼 여호와가 불로 심판한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보자.

 

창세기 1장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3장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에 세 명의 신이 등장한다. 자신들을 우리라 지칭하며 복수를 사용한다. 교회가 야훼 여호와가 유일신이라 가르치는 이유는 유대인의 하나님 야훼가 자신을 유일한 하나님이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훼 여호와가 만약 하나의 절대적인 신이라면 질투도 없어야 하고 이스라엘 외에 다른 민족도 없어야 하며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아야 한다.

 

지상을 다스리도록 명령을 받은 두 명의 아들과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아브라함 이전의 기록이다.

엘로힘은 물과 흙을 다스리는 신이고 태양을 상징하는 신으로 이방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태양신, 다산의 상징, 풍요의 신, 성에 관련한 신, 물의 신, 바다의 신 등 이미 지상을 엘로힘 하나님에 의해 완성이 끝난 후 후발대로 등장하는 신이 야훼이다.

 

야훼 여호와는 불과 바람을 다스리는 신으로 달을 상징하며 인간과 친밀하고 늘 인간의 주변을 맴돈다.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야훼 여호와의 자신만을 위한 백성을 갖기를 소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불과 바람의 신답게 불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한다.

 

구약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유대인이고 그 내용의 주체는 야훼 하나님이다. 야훼는 사람들을 속이려고 모든 신을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는 질투와 전쟁의 이면에는 야훼의 형 엘로힘이 존재한다.

 

유대인의 경전이 예수의 가르침 앞에 편집되는 순간, 야훼는 예수의 아버지로 등극한다. 예수의 날개에 여호와의 이름을 싣고 세상을 날아가 인간을 지배한다. 지금의 교회가 예수보다 여호와를 많이 닮은 이유이다.

 

그들의 교리는 선택받은 사람은 구원에 이른다. 그 선택은 교주나 목사가 하고 자신들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을 지정한다. 물질은 신의 축복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나 교황은 신과 구세주 흉내를 내고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에게 구원의 미끼로 헌금을 강요한다. 이런 모습이 구약의 야훼 여호와다.

 

야훼 여호와는 사라를 미끼로 아브라함에게 재산을 축적케 하고 그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고, 형의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에게 축복을 한다. 롯은 딸과 교접하여 자식을 얻고 다윗은 다른 남자의 아내를 강간하고 많은 첩을 거느린다. 더 많은 추악하고 더러운 행위가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며, 신의 뜻이라는 교리로 믿는 자의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이것이 여호와의 실상이다. 이 모든 것이 감추어진 이유가 구세주의 희생과 헌신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의 가르침을 여호와의 경전이 삼켰다.

 

야훼 여호와가 벌인 심판을 통해 신의 숨은 의도를 다시 보자.

 

창세기 13장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소돔은 여호와를 섬기는 민족도 아닌데 여호와에게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소돔이 몹시 거슬린다. 소돔에서 하는 행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이 되거나 그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닮을까 두렵다. 빨리 이 민족을 없애 악의 씨앗을 제하여 버리자

 

소돔을 심판한 근거로 성적인 타락과 큰 죄를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냥 여호와가 때리면 맞아서 죽어야 한단 말인가. 정확한 죄목도 모른 채, 교회는 그들이 동성연애나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심판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아브라함이 10명의 의인도 발견하지 못한 것에서 찾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적인 도덕성을 한번 보자.

 

아브라함은 이복누이와 근친 결혼한다. 이삭은 호적상 조카인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고 야곱은 외삼촌의 두 딸과 결혼한다. 야곱 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과 성관계를 하고 다윗의 아들, 아도니아는 아버지의 첩 10명을 능욕한다.

 

창세기 19장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딸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성관계로 자식을 생산한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심판하는지 모르겠다.

 

출애굽기 22장

19.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짐승과 성관계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목축을 위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양과 염소와 교접을 했다는 말은 사실이다.

 

동성연애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한 근거라고 주장하는 교회는 위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도덕성을 해명해야 한다. 교회는 철저하게 동성연애를 금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교회가 말하는 동성연애에 관한 이야기는 정답일까?

 

야훼 여호와가 동성연애나 동물과의 교접, 자위를 싫어한 이유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세상을 주관해야 하는데, 번성이 안되는 성적인 관계를 하니 금한 것이다. 쪽수를 불려야 하는 야훼 입장에서 이런 것이 걸림돌이 되니 성결함으로 위장하여 금기시했다.

나에게 동성애에 관한 질문을 한다면, 그들의 행위가 죄가 되거나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오답이라고 전하고 싶다.

 

육신의 몸에 같은 동성의 혼이 강림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성의 혼의 몸이 강림하기도 한다. 남자 몸에 남자의 혼이 들어오고 여자의 몸에 여자의 혼이 들어온다는 원칙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자신의 정체성은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고 구원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구세주를 따르는 것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더 많이 구세주를 사랑하고 너희 형제를 사랑하라. 영원한 사랑을 위한 길은 영생의 몸으로 거듭난 자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육신의 사랑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이다. 영의 인간으로 어떤 배우자를 만날지는 나도 모른다.

 

소돔이 다른 도시보다 화려하고 발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동성연애로 그들 모두를 모함하지 말아라.

 

사람이 많은 곳에 도둑도 있고 간음하는 자도 있고 선을 행하는 자도 있으며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도시 하나를 동성연애 소굴로 만들어 여호와 심판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10장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예수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복음서를 찾아보라. 그 도시가 죄를 지어 심판을 받았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야훼 여호와의 심판보다 구세주의 심판이 훨씬 더 무섭고 엄격함을 경고하고 있다.

 

여호와를 섬기며 예수의 이름을 팔아 부를 축적하고 어린 백성의 섬김을 받고 외식한 모든 자들, 그들의 행위가 심판을 받는 날이 왔다. 거짓은 드러나고 진실은 선포되리라.

 

왜 여호와가 소돔을 심판했는지 진실에 가까이 가보자.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은 혼의 인간 무리는 두 부류다. 하나는 노아의 말을 듣고 심판을 피한 사람들과 심판에 살아남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 빛의 자녀와 여호와의 자녀로 나누어진다. 여호와의 자녀들이 벌인 일이 바벨탑 사건이다.

 

홍수로 살아남은 사람이 노아의 가족으로 가르치는 교회를 조심하라. 이 사건은 육신의 인간이 아닌 영적인 세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육신이 8명이 살아남았다면 지금의 인류를 형성하지 못한다.

 

신이 화를 내고 인간과 대화를 하는 장면이 육신의 사건으로 가르치는 일이 미친 짓이다. 그럼 지금도 여호와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보여야 한다. 교인들은 천재지변이나 사건, 사고로 신이 응답한다고 말하지만, 구약의 여호와의 메시지가 늘 정확하고 명료했는데, 왜 지금은 그 답이 자연현상을 통해 보여 준단 말인가. 신이 오래 참아 잠이 들었나, 아님 고통으로 술에 취해 있는가?

 

다시 심판으로 돌아가서, 홍수로 살아남은 영적인 빛의 자녀들은 과연 어디에서 살았을까?

노아의 후손이라 말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럼 다른 무리는 어떤 육신을 입고 도시나 민족을 이루며 살았을 것이다. 여호와의 눈을 피해 다른 지역 육신의 몸을 입고 도시를 건설하고 문명을 이루고 존재했다.

 

요한복음 4장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왜 구원의 예수가 유대인의 사람으로 와야 하는지 의문을 품은 적은 없는가?

누구는 예수가 흑인이나 부처의 제자로 억지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말 그대로 억지다. 부처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빛은 같은 빛으로 어둠은 어둠으로 구별한다. (부처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의 비교는 다음에.)

 

이 뜻은 구세주가 유대인의 육체를 입고 태어난다는 말과 동시에 생명의 씨앗을 품은 아담의 후손들이 유대인 속에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안에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 구세주의 말에서 빛의 자녀들이 유대인의 육체를 입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5장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예수가 찾아야 하는 잃어버린 하나의 양이 이스라엘 민족 안에 있다는 말이다.

 

홍수심판으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이 모여 살아간 곳이 소돔과 고모라 땅이다. 빛의 자녀들이 있는 도시와 나라는 빛이 나고 화려하다는 말과 같이 우수한 문명이 형성된다.

세계가 쳐다보는 대한민국이 될거라는 예언이다. 새로운 문명의 르네상스 부활이 한국에서 시작된다. 부활은 동시에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의 이름을 팔아 죄를 지은 모든 가톨릭과 교회부터 심판 해야 한다.

 

야훼 여호와가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태운 이유는 혼의 인간의 육체를 죽여 다시 이스라엘의 육신의 몸으로 윤회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다. 아담과 노아 후손인 혼의 인간들을 유대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 이스라엘 육체가 그들의 울타리가 되고 감옥이 되었다.

 

이해하기 쉬운 말로 육신의 감옥에 있는 노아의 후손들을 다른 교도소로 이송하는 작업이다.

 

요한복음 10장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이 가르침은 많은 의미가 있다. 요한복음을 참조하라.

문을 통해 참 목자가 왔고 그가 자신의 양들을 불러 찾아가고 있다. 유대인의 육신에 갇혀있는 빛의 자녀를 찾아서 자신을 따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신랑을 기다린 신부도 50%만 들어가고 임금의 혼인 잔치에 선택을 받은 사람들도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오랜 기다림 속에 빛이 어둠에 동요되어 빛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구세주는 그들에게 깨어 있으라 명령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어둠에 있지 않아 보고 듣는 일이 가능하다. 지금 쓰고 있는 18편의 이야기만 읽어도 수천년의 비밀과 예수를 보고 듣는 귀와 눈이 열린다.

 

18편의 글이 모든 사람의 등불이다. 이 지식만으로 다시 예수의 가르침을 읽으면 자신에게 솟아 나는 샘물을 맛보게 될 것이다. 가르치는 자가 없어도 스스로가 깨달음이 이르는 일이 생긴다.

 

거짓말인지 시험해보라. 이 글을 읽고 요한복음 마가복음 마태복음 순으로 다시 읽어라.

 

요한계시록 11장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영적인 소돔이 의미하는 것이 구세주의 죽음이다. 이 말은 빛의 자녀들이 그곳에서 죽었다는 말이다. 소돔과 애굽, 겟세마네 동산은 빛과 어둠의 치열한 전쟁터라고 보면 된다. 살인의 현장이며 증거 인멸을 시도한 장소이다. 여호와의 범죄 사실이 감추어진 장소이다.

 

롯이 소돔 땅으로 이주하면서 빛의 자녀들의 은둔 장소가 여호와에게 발각되었다. 여호와가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육체에 숨어 있는 혼의 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행실의 열매로 유추하거나 구세주의 계시로 구별한다.

 

육신은 신이 빛의 자녀를 심판하는 감옥이지만 구원을 위한 우리에겐 진리를 깨우치는 탈출의 시간이다. 육신을 가진 동안 길을 찾지 못하면 죽은 혼의 몸은 어둠의 통치자에게 끌려가거나 믿지 않는 사람은 지상을 떠돌아다닌다. 영적인 세계는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것으로 소돔 심판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