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편 형의 것을 훔치자. 창세기 마지막 이야기
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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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모르는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 안 되는 사건이 많이 나온다. 선악과 사건이 그러한데 뱀이 창조되지 않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가져오는 사건도 그러하다.
이런 사건을 교회를 위한 믿음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많이 발생한다.
야곱이 형의 지분을 빼앗는 장면과 삼촌의 딸과 재산을 가져오는 장면을 보면 이런 일이 정당한지 의문이 든다.
성경에 깔린 영적인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억지 해석을 하는 교회에 문제가 있다. 구약 성경은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위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문서라면, 4복음서는 예수가 자신이 아는 구원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울 서신은 사울의 입장을 대면하는 글이다.
저자의 의도를 모르거나 육신의 세계가 영적인 세계의 투영이란 사실을 모른 채 성경을 해석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이단 사이비 같은 종교가 생긴다.
구약의 창세기는 철저히 야훼 여호와의 입장을 대변하는 문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삭으로부터 육적인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된다. 그의 집안은 영적인 얄다바오트의 가정의 축소판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브라함은 명목뿐인 조상이고 실제는 이삭이다.
이삭은 우두머리 통치자 얄다바오트.
에서는 엘로힘 여호와.
야곱은 야훼 여호와.
영적인 가정을 투영한 것이 이삭의 가족이다. 이것이 보이는 세상의 시작이다. 예수는 그들을 넘어선 자로 불완전한 율법을 완전케 한다는 말에서 이미 눈치를 채고 예수에게 줄을 서야했다. 여호와를 섬기며 예수의 이름을 팔아 죄를 지은 모두는 구원이 없다.
마태복음 5장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노동자의 사장과 상처받은 어린 성도의 목사와 거룩함으로 위장하고 뒤에서 죄를 지은 성직자들과 예수 이름으로 장사한 모든 사람은 지은 죄를 다 갚기 전에 예수 앞에 설 수 없다.
육신의 집을 넓히길 원한다면 그 집을 가득 채울 의의 행실도 함께해야 한다. 육신의 부귀영화는 죽음을 변론하지 못한다.
창세기 25장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의 태에서 싸우는 두 형제는 엘로힘 여호와와 야훼 여호와로 보면 된다. 동생이 섬김을 받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형의 발목을 잡은 아우이다.
두 명의 형제에서 두 민족을 만든다고 말하는 이유를 이젠 알아야 한다. 이것은 지상을 지배하는 두 신의 이야기다. 한 어미의 태에서 싸우는 두 형제의 모습은 지상의 이권을 차지하려는 엘로힘과 야훼의 싸움이다.
교회에서 야훼 여호와를 유일하고 절대적인 신으로 가르치지만, 실제 성경에는 형의 것을 빼앗으려는 동생의 치열한 몸부림이다.
회사의 경영권을 얻기 위해 주식을 사들이는 동생의 몸부림과 같다.
야훼 여호와는 지상을 장악하기 위해 아버지의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조력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땅에 강림하는 구세주가 어린아이일 때 제물로 바치는 약속을 한다. (신의 두 아들편 참조)
그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야훼 여호와는 혼의 인간을 생산하고 이스라엘 육신의 몸에 불어 넣었다.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고 율법으로 무장해 야훼 여호와의 이름만 부르게 하는 과정 중에 어떻게 야훼가 자신이 상속권을 빼앗아 왔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삭은 호적상, 차자로 아브라함의 장자는 이스마엘이다. 야훼 여호와가 아무리 노력해도 형을 이기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엘로힘 여호와는 지상을 정비하고 생명을 생산한 절대적 권한을 가진 자이다.
야훼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이는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바다의 것도 모양을 본떠 형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말한 이유이다. 보이는 모든 것이 형의 것으로 그것을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야훼 여호와가 질투하는 대상이 엘로힘이다.
창세기 25장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이젠 속임수로 형의 장자 명분을 빼앗는 장면이 연출된다. 야훼 여호와도 자기 맘대로 안되니 별일을 다 벌인다.
야훼 여호와는 집요하고 비열하며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다. 그의 입에 나오는 거룩한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예수의 등장으로 야훼 여호와는 권세를 잃고 쫓겨나지만, 아버지의 도움으로 부활하여 지상에 강림한다. (요한계시록) 그가 지금의 교회를 다스리는 하나님이다.
에서와 야곱의 사건을 단지 이스라엘의 외향적인 역사 기록으로 보고 지나치면 안 된다. 형의 지분을 빼앗으려는 야훼 여호와의 비열함을 봐야 한다.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닌 이삭이 이스마엘 장자의 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신은 엘로힘 여호와이고 야훼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불러 자신을 섬기도록 동요하는 신이다. 사람을 속이려고 그들을 가인과 아벨로 부른다.
가인은 아버지의 불경함에 머리를 들고 외치다 지상에 갇히는 신이 되었고 아벨은 아버지가 바라는 구세주를 죽여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거래를 통해 지상에 내려왔다. 그가 지상에서 땅따먹기를 시작한 것이 유대인의 역사이다.
이 싸움이 확장되어 예수에게 쫓겨난 야훼의 자리를 예수가 떠나고 엘로힘이 차지한다. 엘로힘 여호와는 종교를 통해 구세주를 죽이고 승리한 사탄과 손을 잡아 여호와의 세계를 확장한다. 사울은 엘로힘이 세운 구세주로 할례를 통한 혈통의 민족이 아닌 믿음의 백성을 강조하며 전 세계에 여호와의 이름을 알리는 기초를 마련한다.
초대교회와 로마교회의 부정과 폐단이 생긴 이유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엘로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제사와 문화에 태양신과 이방신을 섬기는 방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엘로힘이 아버지에게 쫓겨나 태양과 다양한 신의 형태로 지상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요한계시록에서 부활하는 하나님의 아들 야훼를 교회에서 예수로 가르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야훼 여호와는 자신에게 충성한 144,000명의 유대인의 혼을 부활시켜 개신교를 만들고 형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이미 야훼 여호와가 약속한 부활의 인구는 끝이 났다. 아직도 144,000명을 찾고 있는 종교는 거짓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다니엘을 통해 예언한 이스라엘의 마지막은 2023년이다.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가 전한 진짜 복음이 선포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빼앗긴 천국 아버지의 이름을 찾는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야훼 여호와는 1,000년 동안 자신과 부활한 이스라엘 백성이 재림의 역사를 막아 지상을 차지하자는 호언을 요한계시록을 통해 보이지만 여호와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의 계략은 이미 지상에 드러났고 재림의 역사는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24장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가복음 13장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예수의 가르침에 깨어 있지 못한 사람은 구세주의 강림을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비밀이 선포되고 진리의 성령이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나게 할 것이다.
신의 두 아들의 싸움으로 시작한 성경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지 않은가?
다시 야곱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창세기 32장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과 천사의 싸움. 야곱과 하나님의 싸움. 야곱과 하나님의 여행 등과 같이 표현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이름과 실질적인 12 부족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가 된다.
야곱이 이스라엘의 기초가 되는 12명의 아들을 낳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장면에서 야훼 여호와가 자신의 아버지 얄다바오트에게 거래를 성사시켰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에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물에 관한이야기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신들의 계획과 의도를 보이는 육신을 통해 이치를 파악하고 함정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천국을 보거나 갈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죽음 상태에서 경험한 하늘은 얄다바오트가 만든 세계를 체험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보석으로 치장된 천국 성전의 모양도 얄다바오트 세계의 일부이다.
예수가 말한 천국은 이 모든 세계를 넘어선 곳에 있으며 아무도 그곳을 보거나 아는 자가 없다. 다만 그 나라에서 내려온 유일한 구세주만이 아버지를 가르치고 그 나라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가 말한 천국은 견학하는 곳이 아니다.
영의 인간으로 회복된 영은 더이상 육신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곳은 어둠이고 거짓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설명할까. 알에서 깨어난 새는 다른 세계에 살아가게 된다. 물론 알과 새는 같은 공간에 머무르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세계는 다르다. 알은, 어두운 알 속이 전부이고 새는 날개를 달고 어디든 간다.
영적인 사건이 보이는 육신의 사건으로 투영되는 것이다.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시차가 많이 난다. 예수가 다시 오리라는 예언이 곧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하지만 2,000년이 지나서 만약 온다면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죽고 사라져 억울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모든 오해는 육신을 기점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육신은 100년의 세월을 살지만, 혼의 몸을 심판하고 소멸하는 기간은 훨씬 길다. 혼의 인간을 소멸하고 심판하기 위한 육신의 시간은 명분이 적다는 말이다. 즉 죄를 충분히 지어야 그들을 소멸시킬 명분이 만들어진다.
이런 규칙이 생긴 것은 홍수심판으로 혼의 인간들이 자신이 섬기는 신에 대한 불만을 재개한 것에 비롯된다. 바벨탑 사건은 혼의 인간이 심판의 불만을 품고 다른 신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 일이 혼의 인간을 죽이거나 심판을 하여도 되는 근거, 그것이 율법에 상응하는 죄가 된다.
신이 지정한 명령을 어기는 횟수나 무게에 따라 너희를 심판할 것이니 이 말에 복종하라. 이것이 율법이다.
출애굽기 20장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야곱의 이야기를 잠시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인간에게 선포한 야훼 여호와의 법은 인간을 살리는 법인지 인간을 죽이는 법인지 생각해보라.
크게 보면 신의 구속력을 높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결속을 강하게 하는 법이 전부이다.
만약 내가 신이라면 이런 법을 만들 것이다.
*육신의 집이나 땅을 많이 가진 자는 지상에 소망이 있는 자로 천국을 상속받기 어렵다. 공짜로 빌려주는 목적이 아니라면 두 집을 소유하지 말라.
*제도와 인간의 법이 약자의 생명과 권위를 해친다면 빛과 같은 속도로 고쳐가라. 그 대가를 받게 되리라.
*물질은 나누기 위해 벌고 공부는 세상을 이롭게 하도록 사용하라.
*신은 약하고 병들고 무지한 자에 있으니 그들을 강하게 하고 고치는 자에게 아버지 나라가 상속될 것이다.
*지상에 있는 뱀의 유혹을 조심하고 그들보다 명철하고 지식으로 무장하여 물질의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영을 강하게 하고 각자가 성직자이고 구세주임을 잊지 말라.
*기쁘고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서 얼굴 보자.
야훼 여호와가 만든 율법이 인간의 발목을 잡는 죄가 된다. 이런 사실을 아는 예수가 우리에게 전한 말을 기억하라.
누가복음 5장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혼의 인간이 죄가 가득 차기까지 윤회를 거듭하는 이유이다. 여러 번 육신을 쓰고 태어난다는 사실이 놀라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무지하다. 육신이 지식 없이 의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세주의 진짜 진리를 모르면 육신이 거듭하여 태어나는 것은 죄를 짓기 위함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가정하에 사람들과 인터뷰를 한다면, 그들 대답은 성공, 돈, 권력, 유명세 등에 치우친다. 예수의 가르침으로 의를 이루고 희생하며 빛과 같이 살겠다는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선택보다 더 풍요로운 물질을 추구하는 그 결심이 다음 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육신은 풍요롭지만, 혼의 몸은 더 많은 죄를 짓는 것이다.
영적인 세계의 하루가 육신으로 1,000년이 되기도 하고 10,000년이 되기도 한다. 영적인 세계는 시간의 개념이 없다. 빛과 충만이 존재할 뿐이다. 구세주가 빨리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아라. 모두의 심판과 구원이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때가 왔다. 살고자 하는 자들은 여러 생을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라.
예수의 이름으로 돈을 벌고, 그 이름으로 정죄하고, 많은 이들로 영광을 받은 사람의 심판이 있으리라.
다시 야곱의 이야기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거래를 완성하고 허벅다리를 다쳤다. 이는 자신이 무엇을 얻고, 대신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다. 어둠과의 거래는 항상 조건이 따른다. 아벨이 드린 새끼 양은 구세주이며, 자기 목숨값이다.
장자 명분을 훔친 야곱이 여러 여자를 통해 번성을 시작하는 일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벌어진다. 그는 4명의 여자에게서 12명의 아들을 얻고 많은 제물을 삼촌을 속여 얻어 온다.
그런 야곱이 왜 형에게 돌아와 화해를 청하는가.
야곱이 형과 화해를 청한 것은 타향살이로 힘이 들거나 거처할 땅이 없어서가 아니다. 앞으로 벌어지는 애굽 집에 들어가기 위한 계략이다.
야곱의 화해는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이라 볼 수 없다. 형에게 맞아 죽을까 봐 무서워 머리를 숙이는 야곱의 모습에서 야훼 여호와의 계획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부강해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의 머리 숫자이다. 일차적인 확장이 할례이고 두 번째가 애굽의 보호 아래 번성이다. 전쟁은 자식을 생산하는 일에 방해가 되고 많은 사람이 죽어난다.
쪽수를 늘려나가는 일에는 태평성대가 좋은데 아름다운 아내와 많은 재물을 가진 야곱은 다른 이의 표적이 된다.
애굽의 막강한 군사력과 함께 다양한 민족이 교류가 벌어지는 곳은 이스라엘 민족이 둥지를 틀기 적합한 곳이다.
출애굽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재앙이 그들의 신을 제압하는 것이다.
나일강의 신, 땅의 신, 가축의 신, 태양신은 엘로힘 여호와의 상징이다. 물과 흙을 다스리고 태양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민족 단위로 성장한다.
애굽의 안전한 울타리를 기반으로 성장한 이스라엘 민족을 야훼가 모세를 통해 꺼내오기를 권유하는 장면이 출애굽기다.
약삭빠르게 입으로 거룩함을 말하는 야훼 여호와 율법의 구속에서 벗어나라.
이것을 끝으로 창세기는 끝난다. 창세기 정도만 알아도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지 않는다.
여성을 차지하려는 교주는 어둠이다.
성적인 간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교주는 어둠이다.
자유를 억압하고 맹목성을 강요하는 교주는 어둠이다.
영생에 필요 없는 돈을 밝히는 교주는 어둠이다.
여호와를 섬기는 모두는 어둠이다.
오직 예수만이 생명이고 빛이다.
18편의 짧은 글만 읽어도 교회도, 목사도, 헌금도 필요 없는 스스로의 깨달음에 이르는 지식의 기초가 된다.
예수가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 말한 것이며, 이런 이해를 통해 요한복음, 마가복음을 읽어가면 눈과 귀가 열릴 것이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인터넷에 올린 나의 글들을 참고하라.
생명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은 요한복음서와 마가복음부터 읽고 그의 가르침에 집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