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인간.
어둠의 신이 자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완성하고 천국의 인간을 모방하여 혼적인 아담과 여자를 창조했다
요한복음1장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어둠이다. 그 이유는 영원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이다. 지구는 어둠의 신들의 부산물과 쓰레기로 채워져 있는 곳이었다.
지상에 하강한 여호와가 보이는 물질의 세상을 정비하는 과정이 창세기 1장이다. 왜 정비라는 표현을 사용하냐며 보이는 지상은 이미 여호와의 아버지 얄다바오트로부터 만들어진 공간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엘로힘과 야훼의 아버지가 존재한다. 어둠의 통치자, 사탄의 우두머리, 무지한 자로 불리우는 얄다바오트는 우두머리 통치자이며 빛과 어둠이 혼돈된 악한 존재이다. 얄다바오트가 창조한 세계의 가장 낮은 곳이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다.
그 공간을 다스리는 자로 자신의 아들 두 명을 지상에 하강시킨다. 그들은 엘로힘과 야훼로 불리운다. 그 둘은 엄연히 다르고 강하다. 먼저 하강한 엘로힘은 물과 흙을 다스리는 신이며 야훼는 불과 바람을 다스리는 신이다.
창세기에 등장한 여호와는 3명의 신의 역할과 기록이며 아브라함 이후의 기록은 대부분 야훼신의 기록이다.
어둠의 세계를 창조한 우두머리 통치자 얄다바오트 여호와.
지상의 물질의 세계를 창조한 엘로힘 여호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종교의 세계를 창조한 야훼 여호와.
이렇게 3명의 신의 이야기다. 창세기의 신에 대한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여기서 여호와란 말은 이름을 생략하고 기록할 것이다.
요한복음 8장
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대답하되 우리가 음란한 데서 나지 아니하였고 아버지는 한 분뿐이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42.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43.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로다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위의 성경은 다양한 해석이 따르지만 예수는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의 아버지와 예수의 아버지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고 이스라엘의 아버지는 마귀라고 전했다. 살인자며 거짓말쟁이 구약의 여호와를 가리킨다.
엘로힘은 물과 흙의 신으로 두가지 요소로 지상에 생명을 생산한다. 지상의 세계를 정비하고 체계화하며 지구에서 생명을 생산한다. 물질의 지구는 어둠의 신들의 부산물과 같은 곳이다. 쓰레기장 같은 곳이다.
어떤 이는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쓰레기 장이란 말에 고개를 흔들지도 모르겠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인간들이 꺼리는 배설물과 해충, 썩어가는 곳에 있는 벌레를 보면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그 모든 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완전한 아름다움이나 빛의 창조물이라 표현하기 어렵다.
이 곳을 정비하고 생명을 생산한 신이 엘로힘이다. 우리는 통칭하여 여호와라 부른다.
엘로힘에 의해 생명을 생산한 지구는 진화와 변화를 거듭하고 각각 생산된 생명은 존재를 위한 진화를 겪거나 사라지고 새롭게 생산되면 지금의 지구를 만들었다.
이렇게 지구에서 생명이 생산되기 전에 먼저 아담에게 일어난 일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선악과 사건이다.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어서 따로 전하려고 한다.
선악과 사건은 육신의 세상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창세기는 혼의 인간과 얄다바오트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아담은 자신 속에 있는 생명의 빛으로 어둠의 신 얄다바오트에 대한 오류를 발견한다. 그 사건이 선악과를 먹는 사건 속에 감추어져 있다.
우두머리 통치자 얄다바오트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 쉽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아담과 여자는 특별했고 어둠을 분간하게 되었으며 신의 명령에서 멀어졌다.
만약 신의 명령을 어기는 일이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라면 이미 그 세계는 붕괴되고 사라졌을 것이다.
아담과 여자는 빛의 조력자를 통해 자신의 근원을 알게 되고 여호와의 명령으로부터 멀어진다.
선악과 사건으로 아담과 여자는 신이 존재하는 높은 처소에서 쫓겨난다. 이것이 에덴으로부터 추방을 당하는 사건이다.
아담과 여자는 영적인 가장 낮은 곳으로 쫓겨 났지만 아담 속에 있는 빛이 어둠의 세계의 빛이 되었고 얄다바오트는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아담을 죽이고자 하지만 그들은 이미 죽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아담과 여자의 빛을 가리기 위해 죽음의 옷인 육신을 입게 한다.
창세기 3장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혼의 인간이 죽음의 옷인 육신의 감옥에서 갇혀 살아가는 시작이 인간 문명의 시작이다.
아담과 여자가 어둠의 세계에 가장 낮은 곳으로 쫓겨나고 결국에는 육신의 감옥에 혼이 감금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미 엘로힘으로 정비된 지구는 많은 생명이 있었고 그 중에 어떤 동물의 옷을 입었다.
아담이 어떤 동물의 옷을 입었는지 모른다. 다만 혼의 인간을 품은 동물은 혼의 지성으로 문명을 이루고 혼의 모습을 닮은 외모로 진화하게 된다.
그때부터 영생하는 인류와 동물로 구분 되어진다. 지구에 인간이 먼저 존재하게 된 것이 아니다.
창세기에 동물과 식물이 먼저 자리를 잡고 그것을 다스리는 존재로 아담에게 축복을 준 이야기를 기억하라.
동물은 영혼이 없다. 반려동물이 가족이고 사랑이지만 그들과 같이 천국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물은 영혼이 없어 죽음이 끝이다. 살아 있는 동안 행복하길 바란다.
혼의 몸이 들어온 동물은 다르게 진화하고 발전한다. 인류 시작의 겉모습이 동물을 닮은 이유가 그러하다. 처음은 동물의 몸을 입고 인류는 시작하지만 영혼을 가진 인류는 다르게 진화하고 엄청난 문명과 발전을 이룬다.
만약 교회에서 가르치는 태초의 인간이 아담이면 그들이 스스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인간이 육신과 영혼으로 존재하며 육신은 죽고 영혼은 천국에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는 어떻게 설명 할것인가? 아담이 육신의 인간으로 태초에 태어났다면 영혼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아담은 육신의 인간이 아니다. 영적인 혼의 인간이며 정확한 육신의 기록은 아브라함부터이다. 이스라엘 조상인 그로부터 육신에 관한 기록이다.
산발적으로 발생한 인류는 문명은 아담 하나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지상에 쫓겨나거나 스스로 하강한 혼의 인간이 아담과 여자만이 아니다.
창세기 6장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지상에 스스로 선택하여 하강한 하나님의 아들도 있었다. 그들이 천사라고 불리우고 사탄이라 불리우는 영적인 존재들이다.
천사와 사탄의 구분은 천사는 여호와의 명령에 복종하는 존재이고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면 사탄이라 불리운다.
그대들이 생각하는 선과 악의 경계가 아니다. 물론 빛과 어둠도 아니다. 지상의 여호와의 신을 명령을 듣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욥기편을 읽어보라.
여호와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위치를 떠나 스스로가 육의 무덤에 하강한 영적인 존재들이 있었다.
천사는 남성성을 가진 영적인 존재로 자신의 능력으로 창조물을 만들 수 없었다. 그들은 신의 명령에 따라 일하는 하인과 같은 존재이다. 그들은 신을 섬기고 신의 명령을 수행하며 노예로 살아간다. 그런 천사들이 자신의 존재물을 만들길 원했고 그 방법이 여자 혼의 인간에게서 생산하는 것이다.
인간 여자의 몸을 통해 후손을 생산하는 방법이 유일했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여자를 강간했다는 말이 홍수 심판에 기록되어있다. 천사나 사탄에 관한 이야기는 인류의 기원편에 나온다
지구에서 산발적으로 인류문명이 형성된 이유를 이해하라. 혼의 인간이 동물을 육체를 입고 지상에 살아간 것이 아담과 여자만이 아니다. 사탄과 또 다른 혼의 인간들이 있다. 우리가 아담과 여자가 유일한 인류라면 가인이 결혼한 여자가 누구인지 논쟁을 벌이지만 그것은 교회에서 잘못 가르쳐 생긴 오해이다.
아담과 여자 외에도 지상에 하강하거나 쫓겨난 혼의 인간은 많았다. 동물의 몸을 입고 육체가 된 하나님의 아들들이 존재했다.
과학자들이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옳다. 지구는 생명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진화를 거듭했고 그 지구로 쫓겨난 혼의 인간을 품은 동물이 후발대로 정착하여 살아간다.
영생할 수 있는 동물과 영생하지 못하는 동물이 같이 존재하게 된다.
혼의 인간을 품은 육체는 인류 문명을 형성하고 지금의 우리의 모습이다.
여호와의 주관권에서 육체가 유용한 이유는 혼의 인간이 육체를 입고 사는 동안 그들은 진실을 아는 것을 멈춘다. 눈에 보이는 육신의 화려함과 자극으로 정신을 잃고 만다. 육신의 욕구와 쾌락에 심취하여 죽음이후의 삶을 준비하지 못한다.
거듭나지 못한 혼의 몸은 죄의 무게로 심판을 받고 소멸시킬 수 있다. 이미 영의 인간으로 거듭난 인간은 지하 어두운 감옥에 가두어 둔다. 그러나 대부분 혼의 인간은 심판의 대상이다.
가끔 구약의 성경에도 생명을 얻는 인간들이 있다. 아브라함과 같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한 혼의 인간은 생명을 얻고 여호와의 세계에 존재한다.
요한계시록에 이스라엘 백성이 생명의 샘에서 샘물을 먹는다는 표현처럼 여호와로 생명을 얻는 자들은 있지만 그 생명은 영원하지 못한다.
어둠의 세계에 천국의 아버지의 뜻이 전해지고 어둠의 신이 심판받는 것이 정해져 있다. 지상의 신들이 심판을 받을 때 구약에서 생명을 얻은 그들도 같이 영원한 불에 던져진다. 그런 이유로 여호와 신은 인간에게 영생을 주지 못한다.
보통의 혼의 인간은 죄가 가득 차면 소멸을 하지만 여호와에게 생명을 얻은 영들은 죽음이 없으므로 영원한 불에 던져진다.
여기서 알아야 하는 것이 여호와를 섬기고 얻은 생명은 마지막에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그대들은 생명의 영으로 거듭나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길 원한다.
삶의 목적이 육신의 성공과 부귀영화에 미쳐있으면 진리를 알지 못하고 죄의 감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돈과 명예 권력에 모든 정성을 쏟아 살아가지만 그 모든 사람은 죽고 심판에 이른다.
죽음 앞에 자신을 변호해줄 것은 어떤 것도 없다.
죽음 앞에 가져 갈 수 있는 어떤 것도 없다.
죽음 앞에 동행해줄 누구도 없다.
죽음을 온전히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운명이다. 살아서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혼의 인간은 사망이다
왜 구세주가 혼의 인간이 아닌 육신의 인간으로 하강했는지 이유를 설명하겠다.
육신은 감옥이다. 혼의 인간이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은 간수들이 눈을 피할 수 있다.
이 비유를 설명하자면, 죄수들이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지내는 교도소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죄수가 교도소를 벗어나면 손과 발이 결박되고 총을 든 감시자가 따른다. 오히려 더 구속이 강해진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은 사탄의 결박과 죄의 결박에서 잠시는 자유롭다. 죄를 지은 혼의 인간은 천사나 사탄에게 넘겨져 합당한 심판을 받는다.
모든 혼들이 그 심판을 피해 지상의 인간으로 윤회하길 바라는 것이 그런 이유이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동안은 영혼에게 유용한 시간이다. 자신의 구원을 준비하는 기간이며 영생에 이르는 방법을 찾는 시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문화와 흐름이 돈과 유명세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다.
육신으로 죄를 짓지 않고 여호와의 율법을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율법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신이 준 명령이 아니다.
신이란 존재는 인간을 감시하는 울타리이며 혼의 인간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동안 인간은 죄를 더 많이 짓게 된다. 여호와에게 벗어나지 못하면 율법의 구속을 피할 수 없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육신의 욕망과 사악함을 벗어나는 방법은 진리로 자신을 회복시키는 방법뿐이다.
죽은 자의 삶이 살아서 육신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못한 경우가 많다. 그런 이유로 육신을 입고 살아 있는 동안 어둠의 심판을 피하는 방법과 그들의 대적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살아서 죽음을 준비하지 못하면 심판에 이른다. 육신을 가진 동안 진리를 찾는 자가 되길 바란다.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어떻게 생명의 영으로 거듭나는지 다음 편을 통해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