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기본 지식.

9편 홍수에 죽은 이들. 진짜이야기

geun2 2023. 4. 20. 10:31

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https://cafe.daum.net/good-horse/

교회에서 숨긴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홍수심판 이야기를 해보자.

아브라함 이전 사람들의 나이를 보면 약 천년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혼의 인간이 얼마를 사는지 바벨탑 사건에서 가르쳐 주겠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야훼 여호와의 서막을 알리는 시작점이고 이전의 이야기는 엘로힘과 얄다바오트의 이야기이다.

 

물과 흙을 다스리는 엘로힘과 불과 바람을 다스리는 야훼를 볼 때 사람들이 지식이 없는 상태로 신을 부르는 것은 대부분이 엘로힘이다. 농사에 필요한 비옥한 대지와 물, 작물이 자라는 에너지를 부여하는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 엘로힘이다.

 

야훼는 달의 신으로 불과 바람을 다스리며 신의 노여움을 상징한다. 아브라함 이후에 소돔땅에서 벌어진 심판을 보라 불로 그들을 태워죽인다. 소돔과 고무라 이야기 편에 나온다.

 

창세기 6장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혼의 인간 종족은 다양하다. 영화에 언급되는 인간과 천사의 혼열 종족도 있다. 아담의 빛이 분산된 후손들은 생명의 씨앗을 품은 자녀로 천국의 아버지가 선택한 백성이다. 예수가 잃어버린 양이라 말한 존재들이다.

 

사람의 모양은 천국의 자녀 모습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존재로 아름답다. 요한계시록의 천사의 모습은 실제로 그려보면 괴물처럼 흉측하다. 눈이 몇 개고 머리가 몇 개라 나오는 데, 실상 얄다바오트가 부리는 천사들은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얄다바오트세계의 신들도 인간의 모습과 다르다. 오히려 동물과 흡사하고 인간의 모습과 섞여 아름답지 않다.

 

지금의 인류도 짐승의 육체에서 혼의 모양을 따라 진화했다. 짐승의 육체에 가두어진 혼의 지성이 과학과 문명을 발전시켰다. 육체의 모습도 혼의 모양으로 진화하고 있다.

육체가 아름답게 진화한 것은 혼의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얄다바오트 세계는 남성성만 있다고 이미 말했다. 천사들이 자기 후손을 생산하기 위해 사람의 여자를 닥치는 대로 간음하여 생산한 혼의 인간 때문에 비열한 운명이 시작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간보다 잔인한 존재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사탄이 지상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치밀하게 세워진 계획이다.

사탄의 생각이 인간의 교만으로 표출되고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과 자신이 신처럼 군림하려는 의도로 드러난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힘, 즉 계급사회이다.

 

신을 부정하고 자기 능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왕들이 등장한다. 왕권과 신권이 싸우는 것이 사탄과 야훼의 싸움이고, 예수 이후 벌어진 종교전쟁은 엘로힘 여호와와 야훼 여호와의 싸움이다.

인간이 자기 의지대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지상은 육을 지배하는 영들의 전쟁터이다.

 

홍수심판의 원인은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신의 명령을 어긴 천사들의 일탈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왕의 아들들이 마을로 내려가 이쁜 여자를 겁탈하니 왕이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불로 태워버리는 꼴이다.

 

홍수심판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는 빛과 정의, 선과는 멀리 있는 존재이다.

우리가 신을 사랑과 긍휼, 진리라 착각하는 이유는 예수가 그런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아버지를 여호와로 가르치는 교회 때문에 여호와도 선한 존재로 인식하는 오류가 벌어진 것이다.

 

혼의 인간 감옥으로 사용한 짐승의 육체에 천사들이 들어가길 원했다. 이를 본 여호와가 아담의 후손과 사탄을 죽이기로 한다.

 

창세기 6장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 구절은 웃음이 난다. 자신이 만든 창조물이 악하다고 한탄한다. 아담이 자신을 만들어 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닌데 신이 만들어 놓고 인간을 탓하는 모양이 역설적이다.

 

이 상황을 다시 설명하면 신이 아담의 후손이 발산하는 빛을 막을 수 없어 이들 모두를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노아는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라 한다. 칭찬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창세기는 종교의 아버지 야훼 여호와가 인간에게 전한 거짓 진리임을 명심해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판을 통해 노아 종족은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들만 죽임을 당하였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노아가 의인이어서 하나님이 죽이지 않았고 구원시켰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살아 남은 여호와의 혼의 인간은 신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아가 믿는 높은 하늘 아버지에게 자신들이 있음을 알리자고 시작한 일이 바벨탑 사건이다.

 

역사적인 기록이 아닌 영감이나 계시를 통해 전해지는 창세기나 요한계시록을 조심해야 한다.

여호와가 인간을 속이려고 거짓 진리로 포장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4장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예수가 거짓 진리에 귀가 멀고 눈이 멀어있는 여호와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천국의 자녀로 허락을 받은 소수만이 구원을 받는다.

모두를 위한 구세주, 모두의 하나님이라 가르치는 교회를 조심하라. 그들은 삯꾼 목자들이다.

 

홍수심판의 결말은 간단하다. 열받은 여호와가 혼의 인간과 천사, 즉 사탄을 쓸어 버리려고 심판을 단행했지만, 노아의 종족은 살아남고 자기 천사들만 죽었다는 말이다.

만약 홍수심판으로 노아 가족외 모두가 죽었다면 지금의 인류는 없다. 홍수는 아담의 후손의 아름다움에 빠진 천사를 심판하는 것으로 그 구간에 속한 부분적인 심판이다.

 

창세기 8장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 내용은 재밌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홍수심판이란 사건을 통해 살아남은 여호와의 백성들이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나를 죽일 수도 있구나.’

 

이미 언급한 대로 혼의 인간은 아담의 후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천사의 후손과 다양한 권세자가 이브를 간음하여 생산한 혼들도 있었다.

 

혼의 죽음은 육신의 죽음과 다르다. 한마디로 흩어진다는 표현이 맞다. 물을 땅에 쏟으면 스며들고 흩어지듯이 혼도 소멸하여 흩어진다. 바람에 날려버리는 가라지로 생각하면 된다.

 

마태복음 13장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여자에게 태어난 특별한 후손이 있다. 혼의 인간 중에 영생하는 존재로 흩어져 소멸하지 않는다. 이들은 마지막 날 영원한 불에 던진다. 영생의 에너지를 품은 얄다바오트의 아들 엘로힘과 야훼도 포함된다.

 

교회에서 말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은 천국의 아버지가 만든 곳이 아니다. 얄다바오트가 영생을 품은 빛의 자녀를 죽이지 못하므로 지하 감옥에 가두어 둔다. 예수가 죽어서 영들의 감옥에서 구출했다는 존재가 그들이다. 그리고 다시 부활시키는 이스라엘 백성(요한계시록)들이 여호와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그들이 받는 마지막 심판이 지옥불이다.

 

구약 성경에서 영생을 위한 천국이나 영원한 심판의 지옥에 관한 내용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예수가 등장하는 신약성경의 서두부터 구세주가 천국을 전하러 왔다며 회개를 촉구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예수가 혼의 인간이 영생하는 영의 인간이 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 시작은 아들과 아버지를 아는 지식에서 출발한다. 혼의 인간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혼을 영의 몸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육신은 죽고 혼의 몸은 얄다바오트의 천사들에게 끌려가 형벌을 받고 다시 윤회한다.

여러생을 거쳐 죄의 주머니를 가득 채운 혼의 인간은 소멸한다.

 

그러나 죽이지 못하는 영생을 하는 혼의 인간이 생겨난다. 이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4,000명이다. 야훼가 재림하는 구세주를 막기위한 계획으로 자신에게 충성한 이스라엘 민족의 소수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장면이 나온다. (요한계시록 편을 읽어보라. 매주 교회에 가서 생명없는 설교를 듣거나 헌금을 착취당하지 말고 읽고 배우고 지식의 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라.)

 

영생을 입은 몸이 신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보내지는 곳이 영원한 불지옥이다. 물론 신을 배반한 천사이자 뱀의 우두머리인 용과 사탄도 그곳으로 간다.

 

창세기 821절 내용은 여호와가 인간을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여호와가 빛의 자녀를 죽일 수 없고 오히려 만물과 자신의 백성만 죽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을 섬긴 백성들이 오히려 신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을 택한 것이 바벨탑이다.

 

창세기 9장은 인간에게 달콤한 사탕을 주는데 이것이 함정이다. 인간들에게 심판이 아닌 복을 주는 척하면서 인간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먼저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잘 먹고 잘살라고 한다.

 

너희에겐 영생은 없다. 다만 육신으로 누리는 모든 것에 취해서 진리를 찾지도 말고 빛을 돌아보지도 말아라.’

 

창세기 9장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이 구절을 그냥 주의 깊게 보지 않아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 내용은 이미 창세기 1장에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라. 1장에는 지상을 다스리는 자로 혼의 인간을 세웠다. 하지만 노아에게는 동물이 인간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너희가 군림한다고 했다. 인간이 동물을 죽이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창세기 내용은 시간순이나 과학적인 눈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야훼 여호와가 인간에게 전하는 의도를 간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는 여자가 따먹은 선악의 과실로 모든 인간이 원죄라는 족쇄에 사로잡혀 있고 그곳에서 해방시킨 분이 예수라 가르치지만, 아니다. 죄의 시작은 율법에서 시작된다. 여호와의 명령에 속한 사람에게 전하는 법령이다. 여호와의 주관권에 없는 사람은 율법과 죄에 무관하다.

 

창세기 9장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창세기 1장에 인간에게 허락된 먹을거리는 식물뿐이다. 그러나 홍수 이후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한다. 엘로힘 여호와는 홍수로 자신이 원하는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대신할 새로운 전략을 내세웠다. 이것이 살아있는 자들을 죽이는 싸움이다.

동물을 죽여도 좋다고 말하고 죽인 대가를 받겠다는 말에서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원죄에 빠진다. 인간이 인간을 살인하는 시작이 동물을 죽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살인은 동물을 살생하는 육식의 인간이 벌이는 일이다. 채식주의자가 살인을 안 한다는 말이 아니라 초식동물의 싸움과 육식동물의 싸움을 비교하면 된다.

 

인간의 손에 동물의 피를 묻히고 확장해 자신의 종족을 죽이는 담대함을 키워가는 장면이다. 그것에 대한 결론으로 사람을 죽이는 자는 벌이 따라온다.

 

고기를 익혀 먹으면 된다고 말하는 종교집단도 있지만 죽이는 살생은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특히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그 사람도 피를 흘린다고 선포한 명령에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한국에서 구세주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유를 물었다.

 

사람의 피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타 민족을 학살한 피 값을 갚아야 하고 민족이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이 더디게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구원을 위해 성경을 읽고 교회를 다니지만, 성경을 임의로 해석하거나 자신의 편의대로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개인의 죄와 민족의 죄를 회개와 반성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 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위 구절이 엘로힘 여호와가 인간에게 준 첫 번째 율법이고 강한 구속력을 가지는 법이다. 결국 인간은 이 법으로 멸망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영적인 세계에서 죄의 무게를 쌓아가는 과정이면 마지막 날에 세상을 깨우치는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예수의 구원은 요한복음을 참조하라.

 

죽고 죽이는 일이 신의 손이 아니라 너희 안에서 일어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모세가 출애굽을 할 때 일어난 살인 사건이 다른 시간대 벌어진 홀로코스트로 연결된다.

 

출애굽기 3장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애굽기 11장

5.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6.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할 때 애굽가정의 동물과 모든 장자를 죽인다. 야훼 여호와의 잔인하고 비열한 장면을 기억하라. 전쟁에 무관한 아이들을 죽이고 그 집안 보석을 훔쳐 달아나라고 명령한다.

 

자식의 죽음으로 비통한 주인 집에서 금과 은, 의복을 훔쳤다. 슬픔에 고통받는 상주의 부의금을 탈취하는 비열함과 같다. 아니 더 나쁘다. 돈으로 영화나 문학사를 조작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들에게 긍휼은 없다. 돈이면 모든 것이 숨겨질 거라고 착각하는 유대인과 같다.

 

세상이 돈의 지배에 있다고 착각하는 인생들도 죽음 뒤에 어둠의 통치자를 만날 것이다. 그들의 말로 그들을 심판하리라.

애굽에서 벌어진 집단 살인에 대한 대가로 일어난 사건이 유대인의 학살인 홀로코스트다.

 

누구는 예수를 죽인 피의 값을 받은 것이라 말하지만 천국의 아버지가 아들의 복수를 위해 피를 손에 묻힌다는 주장이 어처구니없다. 구세주는 유대인을 심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믿고 아는 대로 심판을 받을 뿐이다.

 

그럼 채식이 옳은가 육식이 옳은가 논쟁을 한다면 예수가 오기전에 했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살생하는 사건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며 살인의 피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지 깊은 성찰이 필요했다.

 

예수가 이 법을 한마디로 정리를 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하나 형제를 저주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심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형제는 구원을 받을 빛의 자녀들, 육신의 형제나 이웃이 아님)

 

육식은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경계를 허물고 넘어오라. 그러나 그 대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 숨어 있다.

 

엘로힘 여호와가 다시는 인간을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언약의 표시로 무지개를 둔다.

 

무지개.

하늘을 쳐다보면 아름다운 물방울이 형형색색 빛나고 있다. 이것이 약속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가?

아름답게 보이는 화려한 색채가 허상이란 말이다.

 

꿈을 좇아 쉼 없이 달리고 오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고 화려한 삶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린 현실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린 죽는다. 무지개를 쫓아다니면 어떤 결과가 올지 생각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