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는 유일신의 행적이 아니다. 다수의 신에 관한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먼저는 나오는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는 지상을 정비하고 생명을 생산한 엘로힘의 여호와이고 다음은 혼의 아담을 창조한 얄다바오트 여호와이며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종교의 창시자 야훼 여호와이다.
창세기 1장에서 아브라함이 등장하기까지는 엘로힘과 그의 아버지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하다.
엘로힘은 물과 흙을 다스리는 신이며 야훼는 불과 바람을 다스리는 신이다.
얄다바오트가 혼의 여자를 간음하여 태어난 두 아들이 가장 낮은 보이는 물질의 세계로 보내진다. 두 아들이 지상을 다스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며 그곳이 혼의 인간의 감옥이다.
여기서 알아야 하는 사실은 창세기의 기록이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록한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관점이 야훼신의 입장에서 기록한 것임을 명심하라. 야훼 관점에서 기록한 구약의 성경이다.
그럼 엘로힘으로 어디로 사라졌는가?
엘로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종교기록에 없는 것이다. 그들이 섬기는 신은 야훼이기 때문이다.
야훼는 지금 인간들이 존재하는 육적인 공간과 영적인 공간을 정비하거나 생명을 생산하는 일에 참여하지 않았다. 창세기의 내용은 그가 듣고 본 일부를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도용했다.
마치 야훼가 천지를 창조한 유일신으로 위장하기 위해서이다.
실상은 엘호힘인 야훼의 형이 지상에 먼저 하강하여 지상을 정비하고 생명을 생산하고 모든 창조를 마친다.
왜 구약이 야훼 관점이 지배적인지 이유를 설명하겠다.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생뚱맞게 등장한다. 아담과 여자가 에덴에서 쫓겨나고 갑자기 글의 문맥과 맞지 않는 가인과 아벨이 등장한다.
인간들을 속이려는 의도로 가인과 아벨이라 불렀지만 그들이 엘호힘과 야훼이다.
야훼는 엘로힘의 동생이다. 장자의 권한을 빼앗는 차자의 정당성을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내용으로 형을 악의 근원으로 만들었다. 당연히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이 아니다.
앞으로 있을 야훼 자신의 죽음에 대한 모든 책임을 형에게 돌려 진실을 감추려는 의도이다.
가인과 아벨이 얄다바오트의 아들인 엘호힘과 야훼이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장자의 지분을 빼앗는 차자의 이야기가 그것을 반증한다.
엘로힘이 먼저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지상에 강림하여 그 세계 정비하고 여러 가지 생명을 생산하는 일에 몰두한다.
창조가 아닌 생산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이미 아버지로부터 만들어진 공간에 아들이 보내졌기 때문이다.
창세기 1장에 혼돈하고 공허한 공간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이 없고 어둡고 엉망진창인 공간에 부임한 엘로힘이다.
엘로힘이 등장하기 전에 이미 물이 존재하고 흙이 존재하는 곳이다. 생산을 위한 모든 재료는 있었다.
엘호힘은 혼돈된 공간에 보이는 빛을 만들고 공간을 분리하며 땅에서 식물이 생산되는 환경을 조성하고 많은 동물을 만들었다고 창세기에 기록되었다.
창세기의 창조 기록이 너무 단순하고 과학적이지 못한 이유는 야훼가 지상의 정비와 생산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로힘 형이 먼저 물과 흙에서 생명을 만들고 정비하는 작업을 끝내고 야훼가 등장한다.
만약 엘로힘이 창세기를 기록했다면 야훼의 역사 시발점인 아브라함의 기록처럼 세밀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을 것이다.
아마 공룡의 이야기와 대륙의 이동과 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포함되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시작인 유인원의 생산되고 진화에 관한 기록도 남았을지 모른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한 역사의 기록은 아주 세밀하고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아브라함 이전의 내용이 빈약하고 축소된 이유는 야훼 자신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야훼는 이스라엘 유목민의 신에 불과하다.
아브람 이전의 역사는 훨씬 길고 복잡한 이야기 많은데도 기록이 단순한 이유이다.
엘로힘은 물과 흙을 다스리는 신이고 야훼는 불과 바람을 다스리는 신이라 출애굽에서 신의 등장이 구름 바람 불로 표현된다. 노아 때는 물로 심판하고 소돔은 불과 유황으로 심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시 창세기 4장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4장은 구약에서 가장 중요하고 이스라엘의 존재 이유와 구세주의 등장의 많은 비밀이 숨겨져 있다.
가인은 자신의 노력으로 농사를 지어 자신의 아버지에게 땅의 소산을 드렸지만 아버지는 받지 않는다.
엘로힘 즉 가인은 오랜 시간동안 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지상을 정비하고 노력한 결과물을 아버지에게 드렸지만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다.
야훼 즉 아벨은 자신이 키운 양의 첫 새끼를 아버지에게 드리니 그의 재물은 받는 것을 보고 가인이 분하게 생각했다.
이것을 성경대로 해석하면 아담의 두 아들이 드린 재물을 여호와는 생명있는 것은 받고 식물은 안받은 이상한 하나님이다. 채식주의자들은 여호와를 싫어하겠다. 농담.
아벨이 드린 첫 새끼라는 개념이 이해되는가?
새끼는 어미가 있어야 하는데 그 어미도 새끼로 시작한다.
아벨이 드린 새끼 양은 어느 기준에서 첫 번째 새끼인가?
모든 양들의 첫 새끼는 무엇인가?
아벨의 양은 어디서 왔는가?
어디를 기준으로 첫 번째 새끼를 말하는지 논쟁거리가 된다
첫 번째 낳은 양의 새끼
어린양. (구약과 요한계시록에 주로 등장)
첫 번째 기준이 있다. 예를 들어 유월절에 처음 난 새끼. 결혼 후 처음 얻은 새끼. 여행에서 처음 얻은 새끼와 같은 기준이 있어야 한다.
어린양도 제사를 드릴 때 사용되는 것이다. ( 이스라엘의 제사는 따로 이야기한다)
이 단어에서 떠오르는 게 없는가?
구약에서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첫 번째 낳은 어린양이 의미하는 것은 구세주이다.
첫 번째 낳은 어린양.
아벨은 후발대로 지상에 강림한다. 형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정비를 마친 이후 등장한 아벨은 그의 지분이 땅에 없음을 알고 자신도 지상에서 무엇인가 얻기를 원했다. 아니 어쩌면 형의 것을 모두 차지할려는 사악한 마음이 있었는지 모른다.
아벨은 자신의 지분을 얻기 위한 술책으로 아버지에게 거래를 한다. 자신이 지상에 강림할 구세주를 잡아 당신에게 바칠 것이니 자신에게 힘과 능력을 달라고 했으며 형이 가진 모든 것을 자신이 가지기를 바랬다.
얄다바오트가 지상에 두 아들을 보낸 이유가 두 아들이 분가하여 잘 먹고 잘 살라고 보낸 것이 아니다. 혼의 아담과 그 후손을 감시하고 빛이 하강을 막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이곳에 보낸 것이다.
가인은 자신에게 맡겨진 공간을 아름답게 정비하고 생명을 생산하는 일에 노력했지만 아버지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것이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에서 일어난 일과 같은 모양이다. 차자 야곱이 장자인 형의 상속권을 훔치는 일이다.
영적 세계에서 벌어진 일이 육적 세계로 투영되는 경우는 많다.
아벨은 아버지가 원하는 일과 자신의 지분을 거래를 한 것이다.
빛의 하강은 어둠의 세계의 파괴를 의미하는 것임을 첫 번째 빛의 하강으로 경험한 어둠의 신들이 아닌가!
혼의 아담을 구출하기 위해 또다시 빛이 내려올 것을 직감한 얄다바오트는, 아벨의 거래를 수락한다.
여호와 하나님에게 드릴 첫 번째 어린 양이란 표현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이러하다.
인간에게 오는 첫 번째 구세주가 성장하기 전에 어린 아이를 잡아서 얄다바오트에게 바치겠습니다.
헤롯이 예수가 태어남을 알고 두 살 아래 아이를 다 죽인 사건을 기억하는가! 잔혹하고 무서운 계약이다.
가인의 분노를 알아보자. 가인은 자신의 아버지의 결정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았다. 물론 아벨도 알았을지도 모른다. 구세주를 잡는 미끼로 둘째 아들을 사용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고 분노한 것이다.
구세주의 피를 손에 묻힌 존재는 누구도 살아남지 못한다. 요한계시록의 어린 양에 속지 말라. 그 어린양은 예수가 아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다룬다)
구세주의 죽음이 예언이라면 야훼의 죽음도 예언이다.
구세주를 죽이는 그도 죽는다는 사실을 가인도 아벨도 얄다바오트도 알았을 것이다. 가인은 아버지가 동생의 무모한 거래를 수락한 사실과 동생의 집착에 분노하며 아버지를 떠난다.
지상을 떠돌던 가인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을 계속 따라오길 바란다.
요한복음에 세상의 임금을 쫓아내신 예수와 예수가 떠나고 다시 세상의 임금이 온다는 예언을 요한복음 편에서 깊이 있게 설명할 것이다.
창세기에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으로 기록되었다. 실상은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제물로 사용하여 죽게 만든 일이다. 이 모든 것을 감추고 가인의 잘못으로 돌려 인간을 속이는 이야기가 창세기 4장이다.
이스라엘 경전을 보면 장자는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차자는 그것을 빼앗기 위한 술책이 나오는 이유가 그러하다. 실상은 형인 엘로힘의 지분이 전부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상을 지배하는 힘이 강했다. 그는 지상의 창조주와 마찬가지다. 동생이 형의 것을 빼앗는 과정의 이야기가 거짓 진리로 창세기에 숨겨져 있다.
아벨은 지상에 자신을 섬기는 백성을 모으고 그들이 살아가는 처소를 허락받는 일이 그렇게 이루어진다.
만약 아벨인 야훼가 창조주고 유일신이라면 자신의 백성에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할 필요도 없고 자신을 섬기는 백성들의 살아갈 거처를 전쟁으로 빼앗아야 하는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
지상의 지분은 엘로힘과 다른 여러 신들의 것이기 때문에,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을 모방하거나 다른 민족의 행위를 따르는 것을 싫어 했다. 지분이 없는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땅과 물질을 주기 위해 끊임없이 타민족에게 전쟁을 하게 하였고 그래서 그 전쟁의 역사가 지금까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출애굽기 20장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지상의 모든 것이 엘로힘의 창조물인 것임을 알기에 야훼는 자기 백성들이 그 형상 있는 모든 존재를 섬기는 것을 싫어했다.
자기가 택한 백성이 엘로힘이 만든 것을 좋아하면 야훼는 질투가 나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말이다. 야훼는 인류가 섬기는 농사와 관련된 풍요의 신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다와 흙에서 생산되는 수확물이 엘로힘의 것이기 때문이다.
야훼는 지상에서 아버지의 권능에 힘을 입고 자신의 왕국을 건립하는 첫 단추로 아브람을 부른다.
창세기 12장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노아의 후손 중 (정확히 노아의 후손인지 모른다) 데라의 가족들이 무리를 이탈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고 있었다. 그들이 왜 무리를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아브람을 불러 유혹한다.
무리를 떠난 어린 짐승을 사냥하는 포식자같은 모양이다.
야훼는 길거리에서 흔히 포교 활동을 하는 종교단체처럼 아브람에게 접근하여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버리고 신이 명령하는 곳으로 가면 엄청난 복을 받게 될거란 말로 야훼 하나님을 섬기도록 유혹한다.
구약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을 아브라함의 후손, 야곱의 후손, 이삭의 후손이라 말하는 이유가 이스라엘의 종교 역사는 아브람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아담의 하나님, 노아의 하나님을 섬긴다는 말을 하지 않는 이유이다.
지상의 주권을 위임받은 야훼가 자신을 섬기는 백성을 만드는 이유는 오직 구세주를 잡기 위한 도구로 쓰기 위해서이다.
(유대인들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란다. 그들은 자신이 섬기는 여호와의 구원을 받고 예수를 아는 사람은 예수가 허락한 구원에 이룰 것이다.)
야훼는 인간에게 영광을 받기 위해 백성을 택한 것이 아니다. 아브람에게 개인과 가정과 민족적인 창대한 축복을 허락한 이면의 계획이 있지 않겠는가!
야훼는 어린 양을 잡아줄 육신의 인간이 필요했다.
이스라엘 사람은 빛과 어둠이 혼동된 민족으로 아주 오묘하다. 구세주가 이스라엘을 통해 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나중에 설명하겠다.
이스라엘은 아담의 후손이 입고 있는 육신이면서 야훼의 후손이 입고 있는 육신이기도 하다.
다시 설명하는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브람의 노정을 따라 성경을 읽다 보면 야훼가 택한 사람이 아브람인지 사라인지 의문이 든다. 신들의 여자 쟁탈전이란 앞의 표현처럼 사라를 차지하려는 사람이 여러 등장하고 사라가 임신하는 순간을 읽어보면 이삭은 아브람의 아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읽어보라, 그리고 난 유대인과 논쟁을 원하지 않는다. 유대인은 여호와가 약속한 구원을 이루길 바란다.)
빛의 권능을 품은 혼의 인간을 통치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얄다바오트 세계의 권능자들도 아담이 자신들을 능가한 존재가 될 것을 알았는데 얄다바오트가 생산한 엘로힘과 야훼가 인간을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야훼는 그런 이유로 인간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금과 은과 구리 철과 금속 같은 선물로 그들을 노예 상태로 만들었다. 물질을 대표하는 돈은 인간을 구속하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야훼 주권 안에서 인간들이 진리를 찾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있다. 물질의 힘은 강하다. 교회도 물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부자가 천국을 가지 못하는 이유가 돈과 같은 물질을 지배하는 것이 어둠의 신이다.
유대인이 부자가 많은 이유도 그들이 야훼로부터 엄청난 물질의 축복을 받은 댓가로 그들은 구세주를 멀리하고 예수를 부정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데 왜 교회는 아직도 유대인의 하나님을 섬기는지 알 수가 없다.
창세기 3장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지상의 신으로부터 인간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다음 편에 이야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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