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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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모르는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성경을 읽다 보면 이해 안 되는 사건이 많이 나온다. 선악과 사건이 그러한데 뱀이 창조되지 않았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야곱이 형의 장자권을 가져오는 사건도 그러하다.

이런 사건을 교회를 위한 믿음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많이 발생한다.

야곱이 형의 지분을 빼앗는 장면과 삼촌의 딸과 재산을 가져오는 장면을 보면 이런 일이 정당한지 의문이 든다.

 

성경에 깔린 영적인 사건을 이해하지 못하고 억지 해석을 하는 교회에 문제가 있다. 구약 성경은 여호와가 자기 백성을 위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문서라면, 4복음서는 예수가 자신이 아는 구원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울 서신은 사울의 입장을 대면하는 글이다.

 

저자의 의도를 모르거나 육신의 세계가 영적인 세계의 투영이란 사실을 모른 채 성경을 해석하면 문제가 발생하고, 이단 사이비 같은 종교가 생긴다.

 

구약의 창세기는 철저히 야훼 여호와의 입장을 대변하는 문서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삭으로부터 육적인 이스라엘 역사가 시작된다. 그의 집안은 영적인 얄다바오트의 가정의 축소판으로 이해하면 된다.

 

아브라함은 명목뿐인 조상이고 실제는 이삭이다.

이삭은 우두머리 통치자 얄다바오트.

에서는 엘로힘 여호와.

야곱은 야훼 여호와.

 

영적인 가정을 투영한 것이 이삭의 가족이다. 이것이 보이는 세상의 시작이다. 예수는 그들을 넘어선 자로 불완전한 율법을 완전케 한다는 말에서 이미 눈치를 채고 예수에게 줄을 서야했다. 여호와를 섬기며 예수의 이름을 팔아 죄를 지은 모두는 구원이 없다.

 

마태복음 5장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노동자의 사장과 상처받은 어린 성도의 목사와 거룩함으로 위장하고 뒤에서 죄를 지은 성직자들과 예수 이름으로 장사한 모든 사람은 지은 죄를 다 갚기 전에 예수 앞에 설 수 없다.

 

육신의 집을 넓히길 원한다면 그 집을 가득 채울 의의 행실도 함께해야 한다. 육신의 부귀영화는 죽음을 변론하지 못한다.

 

창세기 25장

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22.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그가 이르되 이럴 경우에는 내가 어찌할꼬 하고 가서 여호와께 묻자온대

23.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리브가의 태에서 싸우는 두 형제는 엘로힘 여호와와 야훼 여호와로 보면 된다. 동생이 섬김을 받는 것으로 예언되어 있다. 형의 발목을 잡은 아우이다.

 

두 명의 형제에서 두 민족을 만든다고 말하는 이유를 이젠 알아야 한다. 이것은 지상을 지배하는 두 신의 이야기다. 한 어미의 태에서 싸우는 두 형제의 모습은 지상의 이권을 차지하려는 엘로힘과 야훼의 싸움이다.

 

교회에서 야훼 여호와를 유일하고 절대적인 신으로 가르치지만, 실제 성경에는 형의 것을 빼앗으려는 동생의 치열한 몸부림이다.

회사의 경영권을 얻기 위해 주식을 사들이는 동생의 몸부림과 같다.

 

야훼 여호와는 지상을 장악하기 위해 아버지의 절대적인 힘이 필요하다. 아버지의 조력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땅에 강림하는 구세주가 어린아이일 때 제물로 바치는 약속을 한다. (신의 두 아들편 참조)

 

그 거래를 성사시키려고 야훼 여호와는 혼의 인간을 생산하고 이스라엘 육신의 몸에 불어 넣었다. 그들의 영토를 확장하고 율법으로 무장해 야훼 여호와의 이름만 부르게 하는 과정 중에 어떻게 야훼가 자신이 상속권을 빼앗아 왔는지 보여주는 장면이다.

 

이삭은 호적상, 차자로 아브라함의 장자는 이스마엘이다. 야훼 여호와가 아무리 노력해도 형을 이기는 일은 쉬운 것이 아니다. 엘로힘 여호와는 지상을 정비하고 생명을 생산한 절대적 권한을 가진 자이다.

 

야훼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이는 하늘의 것도, 땅의 것도, 바다의 것도 모양을 본떠 형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고 말한 이유이다. 보이는 모든 것이 형의 것으로 그것을 섬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야훼 여호와가 질투하는 대상이 엘로힘이다.

 

창세기 25장

29.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 에서가 들에서 돌아와서 심히 피곤하여

30.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피곤하니 그 붉은 것을 내가 먹게 하라 한지라 그러므로 에서의 별명은 에돔이더라

31.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32.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33.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

 

이젠 속임수로 형의 장자 명분을 빼앗는 장면이 연출된다. 야훼 여호와도 자기 맘대로 안되니 별일을 다 벌인다.

야훼 여호와는 집요하고 비열하며 양의 탈을 쓴 이리와 같다. 그의 입에 나오는 거룩한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예수의 등장으로 야훼 여호와는 권세를 잃고 쫓겨나지만, 아버지의 도움으로 부활하여 지상에 강림한다. (요한계시록) 그가 지금의 교회를 다스리는 하나님이다.

 

에서와 야곱의 사건을 단지 이스라엘의 외향적인 역사 기록으로 보고 지나치면 안 된다. 형의 지분을 빼앗으려는 야훼 여호와의 비열함을 봐야 한다.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닌 이삭이 이스마엘 장자의 자리를 찾기 위한 여정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창세기 1장에 등장하는 신은 엘로힘 여호와이고 야훼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불러 자신을 섬기도록 동요하는 신이다. 사람을 속이려고 그들을 가인과 아벨로 부른다.

가인은 아버지의 불경함에 머리를 들고 외치다 지상에 갇히는 신이 되었고 아벨은 아버지가 바라는 구세주를 죽여 아버지에게 바친다는 거래를 통해 지상에 내려왔다. 그가 지상에서 땅따먹기를 시작한 것이 유대인의 역사이다.

 

이 싸움이 확장되어 예수에게 쫓겨난 야훼의 자리를 예수가 떠나고 엘로힘이 차지한다. 엘로힘 여호와는 종교를 통해 구세주를 죽이고 승리한 사탄과 손을 잡아 여호와의 세계를 확장한다. 사울은 엘로힘이 세운 구세주로 할례를 통한 혈통의 민족이 아닌 믿음의 백성을 강조하며 전 세계에 여호와의 이름을 알리는 기초를 마련한다.

 

초대교회와 로마교회의 부정과 폐단이 생긴 이유가 그들이 섬기는 하나님이 엘로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제사와 문화에 태양신과 이방신을 섬기는 방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엘로힘이 아버지에게 쫓겨나 태양과 다양한 신의 형태로 지상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요한계시록에서 부활하는 하나님의 아들 야훼를 교회에서 예수로 가르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야훼 여호와는 자신에게 충성한 144,000명의 유대인의 혼을 부활시켜 개신교를 만들고 형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이미 야훼 여호와가 약속한 부활의 인구는 끝이 났다. 아직도 144,000명을 찾고 있는 종교는 거짓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다니엘을 통해 예언한 이스라엘의 마지막은 2023년이다. 마지막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수가 전한 진짜 복음이 선포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빼앗긴 천국 아버지의 이름을 찾는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다.

 

야훼 여호와는 1,000년 동안 자신과 부활한 이스라엘 백성이 재림의 역사를 막아 지상을 차지하자는 호언을 요한계시록을 통해 보이지만 여호와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의 계략은 이미 지상에 드러났고 재림의 역사는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태복음 24장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가복음 13장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예수의 가르침에 깨어 있지 못한 사람은 구세주의 강림을 알지 못한다. 아버지의 비밀이 선포되고 진리의 성령이 모든 것을 숨기지 않고 드러나게 할 것이다.

 

신의 두 아들의 싸움으로 시작한 성경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지 않은가?

 

다시 야곱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창세기 32장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야곱과 천사의 싸움. 야곱과 하나님의 싸움. 야곱과 하나님의 여행 등과 같이 표현되는 장면이다. 여기서 이스라엘의 이름과 실질적인 12 부족의 시작을 알리는 장소가 된다.

야곱이 이스라엘의 기초가 되는 12명의 아들을 낳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는 장면에서 야훼 여호와가 자신의 아버지 얄다바오트에게 거래를 성사시켰음을 알 수 있다. 창세기에 가인과 아벨이 드린 제물에 관한이야기다.

 

우리가 볼 수 없는 신들의 계획과 의도를 보이는 육신을 통해 이치를 파악하고 함정을 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이 살아 있는 동안 천국을 보거나 갈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죽음 상태에서 경험한 하늘은 얄다바오트가 만든 세계를 체험한 것이다. 요한계시록의 보석으로 치장된 천국 성전의 모양도 얄다바오트 세계의 일부이다.

 

예수가 말한 천국은 이 모든 세계를 넘어선 곳에 있으며 아무도 그곳을 보거나 아는 자가 없다. 다만 그 나라에서 내려온 유일한 구세주만이 아버지를 가르치고 그 나라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가 말한 천국은 견학하는 곳이 아니다.

 

영의 인간으로 회복된 영은 더이상 육신의 세계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곳은 어둠이고 거짓이기 때문이다. 무엇으로 설명할까. 알에서 깨어난 새는 다른 세계에 살아가게 된다. 물론 알과 새는 같은 공간에 머무르지만, 각자에게 주어진 세계는 다르다. 알은, 어두운 알 속이 전부이고 새는 날개를 달고 어디든 간다.

 

영적인 사건이 보이는 육신의 사건으로 투영되는 것이다.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시차가 많이 난다. 예수가 다시 오리라는 예언이 곧 이루어진다는 착각을 하지만 2,000년이 지나서 만약 온다면 기다리는 모든 사람은 죽고 사라져 억울한 생각이 들 것이다.

 

이 모든 오해는 육신을 기점으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이다. 육신은 100년의 세월을 살지만, 혼의 몸을 심판하고 소멸하는 기간은 훨씬 길다. 혼의 인간을 소멸하고 심판하기 위한 육신의 시간은 명분이 적다는 말이다. 즉 죄를 충분히 지어야 그들을 소멸시킬 명분이 만들어진다.

 

이런 규칙이 생긴 것은 홍수심판으로 혼의 인간들이 자신이 섬기는 신에 대한 불만을 재개한 것에 비롯된다. 바벨탑 사건은 혼의 인간이 심판의 불만을 품고 다른 신을 찾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의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명분이 필요했다. 그 일이 혼의 인간을 죽이거나 심판을 하여도 되는 근거, 그것이 율법에 상응하는 죄가 된다.

 

신이 지정한 명령을 어기는 횟수나 무게에 따라 너희를 심판할 것이니 이 말에 복종하라. 이것이 율법이다.

 

출애굽기 20장

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7.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야곱의 이야기를 잠시 두고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인간에게 선포한 야훼 여호와의 법은 인간을 살리는 법인지 인간을 죽이는 법인지 생각해보라.

 

크게 보면 신의 구속력을 높이고 이스라엘 민족의 결속을 강하게 하는 법이 전부이다.

 

만약 내가 신이라면 이런 법을 만들 것이다.

 

*육신의 집이나 땅을 많이 가진 자는 지상에 소망이 있는 자로 천국을 상속받기 어렵다. 공짜로 빌려주는 목적이 아니라면 두 집을 소유하지 말라.

 

*제도와 인간의 법이 약자의 생명과 권위를 해친다면 빛과 같은 속도로 고쳐가라. 그 대가를 받게 되리라.

 

*물질은 나누기 위해 벌고 공부는 세상을 이롭게 하도록 사용하라.

 

*신은 약하고 병들고 무지한 자에 있으니 그들을 강하게 하고 고치는 자에게 아버지 나라가 상속될 것이다.

 

*지상에 있는 뱀의 유혹을 조심하고 그들보다 명철하고 지식으로 무장하여 물질의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

 

*육신이 살아 있는 동안 영을 강하게 하고 각자가 성직자이고 구세주임을 잊지 말라.

 

*기쁘고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서 얼굴 보자.

 

야훼 여호와가 만든 율법이 인간의 발목을 잡는 죄가 된다. 이런 사실을 아는 예수가 우리에게 전한 말을 기억하라.

 

누가복음 5장

23.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24.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리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매

 

혼의 인간이 죄가 가득 차기까지 윤회를 거듭하는 이유이다. 여러 번 육신을 쓰고 태어난다는 사실이 놀라거나 좋아하는 사람은 무지하다. 육신이 지식 없이 의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구세주의 진짜 진리를 모르면 육신이 거듭하여 태어나는 것은 죄를 짓기 위함이다.

 

다시 태어난다는 가정하에 사람들과 인터뷰를 한다면, 그들 대답은 성공, , 권력, 유명세 등에 치우친다. 예수의 가르침으로 의를 이루고 희생하며 빛과 같이 살겠다는 사람이 있는지 묻고 싶다.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의 선택보다 더 풍요로운 물질을 추구하는 그 결심이 다음 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육신은 풍요롭지만, 혼의 몸은 더 많은 죄를 짓는 것이다.

 

영적인 세계의 하루가 육신으로 1,000년이 되기도 하고 10,000년이 되기도 한다. 영적인 세계는 시간의 개념이 없다. 빛과 충만이 존재할 뿐이다. 구세주가 빨리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말아라. 모두의 심판과 구원이 공평하게 이루어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때가 왔다. 살고자 하는 자들은 여러 생을 통해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라.

 

예수의 이름으로 돈을 벌고, 그 이름으로 정죄하고, 많은 이들로 영광을 받은 사람의 심판이 있으리라.

 

다시 야곱의 이야기다.

야곱이 하나님과의 거래를 완성하고 허벅다리를 다쳤다. 이는 자신이 무엇을 얻고, 대신 상처를 입었다는 뜻이다. 어둠과의 거래는 항상 조건이 따른다. 아벨이 드린 새끼 양은 구세주이며, 자기 목숨값이다.

 

장자 명분을 훔친 야곱이 여러 여자를 통해 번성을 시작하는 일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벌어진다. 그는 4명의 여자에게서 12명의 아들을 얻고 많은 제물을 삼촌을 속여 얻어 온다.

그런 야곱이 왜 형에게 돌아와 화해를 청하는가.

 

야곱이 형과 화해를 청한 것은 타향살이로 힘이 들거나 거처할 땅이 없어서가 아니다. 앞으로 벌어지는 애굽 집에 들어가기 위한 계략이다.

야곱의 화해는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이라 볼 수 없다. 형에게 맞아 죽을까 봐 무서워 머리를 숙이는 야곱의 모습에서 야훼 여호와의 계획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부강해지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사람의 머리 숫자이다. 일차적인 확장이 할례이고 두 번째가 애굽의 보호 아래 번성이다. 전쟁은 자식을 생산하는 일에 방해가 되고 많은 사람이 죽어난다.

쪽수를 늘려나가는 일에는 태평성대가 좋은데 아름다운 아내와 많은 재물을 가진 야곱은 다른 이의 표적이 된다.

 

애굽의 막강한 군사력과 함께 다양한 민족이 교류가 벌어지는 곳은 이스라엘 민족이 둥지를 틀기 적합한 곳이다.

 

출애굽에서 일어난 대표적인 재앙이 그들의 신을 제압하는 것이다.

나일강의 신, 땅의 신, 가축의 신, 태양신은 엘로힘 여호와의 상징이다. 물과 흙을 다스리고 태양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민족 단위로 성장한다.

 

애굽의 안전한 울타리를 기반으로 성장한 이스라엘 민족을 야훼가 모세를 통해 꺼내오기를 권유하는 장면이 출애굽기다.

 

약삭빠르게 입으로 거룩함을 말하는 야훼 여호와 율법의 구속에서 벗어나라.

 

이것을 끝으로 창세기는 끝난다. 창세기 정도만 알아도 이단이나 사이비에 빠지지 않는다.

 

여성을 차지하려는 교주는 어둠이다.

성적인 간음을 벗어나지 못하는 교주는 어둠이다.

자유를 억압하고 맹목성을 강요하는 교주는 어둠이다.

영생에 필요 없는 돈을 밝히는 교주는 어둠이다.

여호와를 섬기는 모두는 어둠이다.

 

오직 예수만이 생명이고 빛이다.

 

18편의 짧은 글만 읽어도 교회도, 목사도, 헌금도 필요 없는 스스로의 깨달음에 이르는 지식의 기초가 된다.

예수가 마르지 않는 샘물이라 말한 것이며, 이런 이해를 통해 요한복음, 마가복음을 읽어가면 눈과 귀가 열릴 것이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인터넷에 올린 나의 글들을 참고하라.

 

생명을 얻기를 바라는 사람은 요한복음서와 마가복음부터 읽고 그의 가르침에 집중하라.

 

 

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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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모르는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12편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이삭은 아브라함의 자식이 아니다. 여호와가 자식을 인신공양하라는 말이 과연 무엇을 위한 시험인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에 도덕적인 논쟁을 하는 것은 여기서는 무의미하다. 처음부터 이삭을 죽일 계획은 아니었다. 단지 시험의 도구로 제사를 드리게 한 것이다. 이삭을 가지기 위해 야훼 여호와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였고, 자신이 생산한 첫 육신의 인간이 아닌가. 아브라함 또한 이삭을 죽일 이유는 없다.

 

누구를 위한 시험인지 생각을 해보면 금방 답이 나온다. 늙은 아브라함을 위한 시험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순종의 아버지로 칭송받지만, 이삭이 자기 아들이 아닌 것을 모를 리 없다. 다만 이스마엘을 축복하는 신의 약속을 믿고 이삭을 자기 아들로 키운 것이다.

 

아브라함에겐 이삭을 바치는 시험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 아버지의 손에 죽을 수 있는 이삭의 입장은 어떤가?

 

창세기 21장

8.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

9.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10.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11.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그러나 여종의 아들도 네 씨니 내가 그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신지라

 

야훼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이 호적에 올라가는 아들이다. 생물학적인 아들인 이스마엘은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야훼 여호와는 너를 위해 그에게도 축복을 해 주겠다 하였다. 지금은 아브라함의 장자 이스마엘 후손이 유대인보다 더 많은 인구수를 포함하고 있다.

 

창세기 22장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 사건으로 아브라함은 그를 믿는 자들에게 칭송을 많이 받지만, 그에게 이건 어려운 일도 아니다. 신의 아들을 신이 달라는데 드리면 되는 일이 아닌가?

성경을 읽어 보면 일반적인 부모에게 보이는 고뇌나 번민이 없다. 신이 시키는 일을 로봇처럼 따라 하는 모습이다. 만약 아브라함을 높이기 위한 사건이라면 고민하는 아비의 모습이 보여야 하지 않았을까? 신에게 간절히 이 길을 피하게 해달라는 기도를 해야 했었다. 그러면 더 드라마틱하고 감동적인데 말이다.

 

소돔과 고모라 심판에서 아브라함이 신에게 한 간절한 기도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인간을 아끼는 마음이 아닌, 감각적으로 신에게 복종하는 모습이 사람의 입에 오르며 칭찬을 받을 일인지 묻고 싶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삭은 신이 선택한 다른 남자의 아들이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를 이해하면 모든 것이 이해된다.

 

어떻게 노년에 얻은 독자를 신이 명령한다고 거침없이 제물로 바칠 수 있는가? 그의 믿음과 순종을 교훈으로 가르치는 교회가 무지하다.

 

인간의 선택은 더 인간다울 때 아름답다. 악과 싸워 투쟁하는 선의 모습과 생명을 사랑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이 감동을 자아낸다. 무미건조한 복종은 호소력이 없다. 여호와의 불의와 악함을 포장하고 모든 것을 신에게 초점을 맞추어 억지로 성경을 해석하는 교회가 문제다.

 

왜 완전하지 못한 아담과 여자를 창조했는지 질문하는 자가 없다. 뱀을 창조한 의도를 묻는 자가 없으며 모든 일의 결론이 항상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말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가 없다.

 

왜 자신이 섬기는 하나님이 성경에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장면을 보고 자신의 아버지가 의붓아버지고 악하며 진실을 숨기는 자라 의심하는 일이 없는가?

의심하고 다시 성경을 들여다보라. 진실은 모두가 참이라고 말하는 것을 맹목적으로 믿는 곳에서 벗어날 때 드러난다.

 

출애굽기 20장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명기 27장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이삭의 재물은 아버지의 시험이 아닌 아들의 시험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이 자신의 아들이 아님을 모를 리 없다. 이스라엘 민족의 결속과 유지되는 힘은 가족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을 대신한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장자에서 시작한다.

 

창세기 22장

12.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늙은 아브라함에게 이제 신을 경외하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브라함이 여호와랑 보낸 시간이 얼마인데 지금 와서 감탄이라니 이상하지 않은가.

이삭이 진짜 야훼 여호와의 인간임을 선포하는 장면이다. 쉬운 말로 하면 엘로힘 여호와가 아브라함을 자기 것이라 주장했다면 이삭은 동생 야훼 것임을 확실히 한 것이다.

야훼 여호와가 고생해서 얻은 진짜 자신의 것인 이삭을 칭찬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신에게 순종하여 기쁜 날이 아니라 야훼 여호와가 이삭을 얻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춤을 추는 장면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이삭으로 시작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세상을 집어삼킬 야망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민수기 3장

1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2.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

13. 처음 태어난 자는 다 내 것임은 내가 애굽 땅에서 그 처음 태어난 자를 다 죽이던 날에 이스라엘의 처음 태어난 자는 사람이나 짐승을 다 거룩하게 구별하였음이니 그들은 내 것이 될 것임이니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가족의 결속력과 구별된 공동체는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유대인들은 아버지 아브라함, 아버지 이삭, 야곱이 자기 조상이라 말하며 족보를 외우는 것을 즐겨한다. 야훼 여호와는 내가 언제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라고 자주 말한다. 특히 출애굽 사건은 두고두고 우려먹는 레퍼토리다.

 

우리는 조상이 누구인지, 족보는 어떠한지는 역사 시험 때나 필요하지, 평소에는 누구의 후손이란 말을 하지 않는다. 물론 금수저인 사람들이 자기 부모 자랑질을 하는 것을 보았다. 유대인들이 조상을 기억하고 행적을 기억하는 일은 특별한 구속력을 가진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조상이 후손 육신으로 윤회를 한단 말이다.

 

유대인이 정체성을 잃지 않는, 사라지지 않은 이유이다. 수많은 전쟁과 나라를 잃고 떠돌아다닌 기간, 홀로코스트와 같은 대학살에도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가 혼의 인간의 윤회에 있다.

 

다음에 다시 설명하고 이 사건은 아버지를 하나님처럼 믿고 순종한 이삭의 승리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마태복음 10장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12장

49.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을 보라

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

 

예수는 이스라엘 신이 만든 가장 강한 결속력인 가정을 파괴하고 있다. 묶인 것을 풀지 않고는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구절을 다른 식으로 해석하는 자가 많지만, 실상은 매여 있는 여호와의 결박을 끊는 장면이다.

 

요한복음 1장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부모와 자식의 인연은 육신의 혈통이다. 내면의 혼의 몸이 보이는 육신의 부모일 리가 없다. 구원은 혼의 몸에서 일어나는 사건인데 육신의 정을 끊지 못한다면 평생 제사만 드리다 구원받지 못하고 끝날 것이다. 죽은 부모는 죽은 자들의 길을 갈 것이다. 살아 있는 자들은 자기 죽음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가족 부모 형제의 문제를 들고 교회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여호와의 종이다. 신 앞에서도 육신의 혈통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들이 죽어서 천국의 자녀로 살겠다는 말은 무지고 욕심이다.

 

육신은 율법의 구속을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이 예수의 형제요, 사랑하는 사람이라 입으로 말하지만 그들의 삶은 자녀 문제, 남편과 아내 문제, 부모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시작이 잘못되었으니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꼴이다.

 

예수가 여호와의 결박을 풀고 이미 새로운 것을 가르쳤다. 구원은 육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혈통에 있는 것이며 빛의 자녀는 구세주의 가르침에 순종해야 한다.

 

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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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모르는 이야기

 

야훼 여호와가 불로 심판한 소돔과 고모라의 이야기를 보자.

 

창세기 1장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 3장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에 세 명의 신이 등장한다. 자신들을 우리라 지칭하며 복수를 사용한다. 교회가 야훼 여호와가 유일신이라 가르치는 이유는 유대인의 하나님 야훼가 자신을 유일한 하나님이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훼 여호와가 만약 하나의 절대적인 신이라면 질투도 없어야 하고 이스라엘 외에 다른 민족도 없어야 하며 우상을 섬기지 말라고 명령하지 않아야 한다.

 

지상을 다스리도록 명령을 받은 두 명의 아들과 그의 아버지 이야기가 아브라함 이전의 기록이다.

엘로힘은 물과 흙을 다스리는 신이고 태양을 상징하는 신으로 이방의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태양신, 다산의 상징, 풍요의 신, 성에 관련한 신, 물의 신, 바다의 신 등 이미 지상을 엘로힘 하나님에 의해 완성이 끝난 후 후발대로 등장하는 신이 야훼이다.

 

야훼 여호와는 불과 바람을 다스리는 신으로 달을 상징하며 인간과 친밀하고 늘 인간의 주변을 맴돈다.

아브라함을 시작으로 야훼 여호와의 자신만을 위한 백성을 갖기를 소망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불과 바람의 신답게 불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한다.

 

구약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유대인이고 그 내용의 주체는 야훼 하나님이다. 야훼는 사람들을 속이려고 모든 신을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끊임없는 질투와 전쟁의 이면에는 야훼의 형 엘로힘이 존재한다.

 

유대인의 경전이 예수의 가르침 앞에 편집되는 순간, 야훼는 예수의 아버지로 등극한다. 예수의 날개에 여호와의 이름을 싣고 세상을 날아가 인간을 지배한다. 지금의 교회가 예수보다 여호와를 많이 닮은 이유이다.

 

그들의 교리는 선택받은 사람은 구원에 이른다. 그 선택은 교주나 목사가 하고 자신들의 교리를 따르는 사람을 지정한다. 물질은 신의 축복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목사나 교황은 신과 구세주 흉내를 내고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에게 구원의 미끼로 헌금을 강요한다. 이런 모습이 구약의 야훼 여호와다.

 

야훼 여호와는 사라를 미끼로 아브라함에게 재산을 축적케 하고 그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고, 형의 장자권을 빼앗은 야곱에게 축복을 한다. 롯은 딸과 교접하여 자식을 얻고 다윗은 다른 남자의 아내를 강간하고 많은 첩을 거느린다. 더 많은 추악하고 더러운 행위가 신의 이름으로 정당화되며, 신의 뜻이라는 교리로 믿는 자의 입에 자물쇠를 채운다.

 

이것이 여호와의 실상이다. 이 모든 것이 감추어진 이유가 구세주의 희생과 헌신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의 가르침을 여호와의 경전이 삼켰다.

 

야훼 여호와가 벌인 심판을 통해 신의 숨은 의도를 다시 보자.

 

창세기 13장

13.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소돔은 여호와를 섬기는 민족도 아닌데 여호와에게 죄를 지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내가 소돔이 몹시 거슬린다. 소돔에서 하는 행위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이 되거나 그들이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을 닮을까 두렵다. 빨리 이 민족을 없애 악의 씨앗을 제하여 버리자

 

소돔을 심판한 근거로 성적인 타락과 큰 죄를 말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냥 여호와가 때리면 맞아서 죽어야 한단 말인가. 정확한 죄목도 모른 채, 교회는 그들이 동성연애나 사치와 향락에 빠져서 심판받았다고 한다. 그 이유를 아브라함이 10명의 의인도 발견하지 못한 것에서 찾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의 성적인 도덕성을 한번 보자.

 

아브라함은 이복누이와 근친 결혼한다. 이삭은 호적상 조카인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하고 야곱은 외삼촌의 두 딸과 결혼한다. 야곱 아들, 르우벤은 아버지의 첩과 성관계를 하고 다윗의 아들, 아도니아는 아버지의 첩 10명을 능욕한다.

 

창세기 19장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

33. 그 밤에 그들이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버지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버지는 그 딸이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롯의 딸들은 아버지에게 술을 먹이고 성관계로 자식을 생산한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심판하는지 모르겠다.

 

출애굽기 22장

19.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짐승과 성관계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엄중히 경고하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목축을 위해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양과 염소와 교접을 했다는 말은 사실이다.

 

동성연애가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한 근거라고 주장하는 교회는 위에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도덕성을 해명해야 한다. 교회는 철저하게 동성연애를 금하고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한다.

교회가 말하는 동성연애에 관한 이야기는 정답일까?

 

야훼 여호와가 동성연애나 동물과의 교접, 자위를 싫어한 이유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세상을 주관해야 하는데, 번성이 안되는 성적인 관계를 하니 금한 것이다. 쪽수를 불려야 하는 야훼 입장에서 이런 것이 걸림돌이 되니 성결함으로 위장하여 금기시했다.

나에게 동성애에 관한 질문을 한다면, 그들의 행위가 죄가 되거나 구원받지 못한다는 말은 오답이라고 전하고 싶다.

 

육신의 몸에 같은 동성의 혼이 강림하는 경우도 있고 다른 성의 혼의 몸이 강림하기도 한다. 남자 몸에 남자의 혼이 들어오고 여자의 몸에 여자의 혼이 들어온다는 원칙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자신의 정체성은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고 구원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구세주를 따르는 것이다.

 

사랑하라. 그리고 더 많이 구세주를 사랑하고 너희 형제를 사랑하라. 영원한 사랑을 위한 길은 영생의 몸으로 거듭난 자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육신의 사랑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이다. 영의 인간으로 어떤 배우자를 만날지는 나도 모른다.

 

소돔이 다른 도시보다 화려하고 발전한 이유는 따로 있다. 동성연애로 그들 모두를 모함하지 말아라.

 

사람이 많은 곳에 도둑도 있고 간음하는 자도 있고 선을 행하는 자도 있으며 자신을 희생하여 세상을 구하는 사람도 있다. 도시 하나를 동성연애 소굴로 만들어 여호와 심판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마태복음 10장

1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예수가 소돔과 고모라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했는지 복음서를 찾아보라. 그 도시가 죄를 지어 심판을 받았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다만 야훼 여호와의 심판보다 구세주의 심판이 훨씬 더 무섭고 엄격함을 경고하고 있다.

 

여호와를 섬기며 예수의 이름을 팔아 부를 축적하고 어린 백성의 섬김을 받고 외식한 모든 자들, 그들의 행위가 심판을 받는 날이 왔다. 거짓은 드러나고 진실은 선포되리라.

 

왜 여호와가 소돔을 심판했는지 진실에 가까이 가보자. 홍수심판에서 살아남은 혼의 인간 무리는 두 부류다. 하나는 노아의 말을 듣고 심판을 피한 사람들과 심판에 살아남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 빛의 자녀와 여호와의 자녀로 나누어진다. 여호와의 자녀들이 벌인 일이 바벨탑 사건이다.

 

홍수로 살아남은 사람이 노아의 가족으로 가르치는 교회를 조심하라. 이 사건은 육신의 인간이 아닌 영적인 세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육신이 8명이 살아남았다면 지금의 인류를 형성하지 못한다.

 

신이 화를 내고 인간과 대화를 하는 장면이 육신의 사건으로 가르치는 일이 미친 짓이다. 그럼 지금도 여호와가 우리에게 많은 메시지를 보여야 한다. 교인들은 천재지변이나 사건, 사고로 신이 응답한다고 말하지만, 구약의 여호와의 메시지가 늘 정확하고 명료했는데, 왜 지금은 그 답이 자연현상을 통해 보여 준단 말인가. 신이 오래 참아 잠이 들었나, 아님 고통으로 술에 취해 있는가?

 

다시 심판으로 돌아가서, 홍수로 살아남은 영적인 빛의 자녀들은 과연 어디에서 살았을까?

노아의 후손이라 말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한 명에 불과하다. 그럼 다른 무리는 어떤 육신을 입고 도시나 민족을 이루며 살았을 것이다. 여호와의 눈을 피해 다른 지역 육신의 몸을 입고 도시를 건설하고 문명을 이루고 존재했다.

 

요한복음 4장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왜 구원의 예수가 유대인의 사람으로 와야 하는지 의문을 품은 적은 없는가?

누구는 예수가 흑인이나 부처의 제자로 억지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말 그대로 억지다. 부처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이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빛은 같은 빛으로 어둠은 어둠으로 구별한다. (부처의 가르침과 예수의 가르침의 비교는 다음에.)

 

이 뜻은 구세주가 유대인의 육체를 입고 태어난다는 말과 동시에 생명의 씨앗을 품은 아담의 후손들이 유대인 속에 있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안에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 구세주의 말에서 빛의 자녀들이 유대인의 육체를 입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5장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예수가 찾아야 하는 잃어버린 하나의 양이 이스라엘 민족 안에 있다는 말이다.

 

홍수심판으로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이 모여 살아간 곳이 소돔과 고모라 땅이다. 빛의 자녀들이 있는 도시와 나라는 빛이 나고 화려하다는 말과 같이 우수한 문명이 형성된다.

세계가 쳐다보는 대한민국이 될거라는 예언이다. 새로운 문명의 르네상스 부활이 한국에서 시작된다. 부활은 동시에 죽음을 상징한다. 예수의 이름을 팔아 죄를 지은 모든 가톨릭과 교회부터 심판 해야 한다.

 

야훼 여호와가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태운 이유는 혼의 인간의 육체를 죽여 다시 이스라엘의 육신의 몸으로 윤회시키는 작업을 한 것이다. 아담과 노아 후손인 혼의 인간들을 유대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 이스라엘 육체가 그들의 울타리가 되고 감옥이 되었다.

 

이해하기 쉬운 말로 육신의 감옥에 있는 노아의 후손들을 다른 교도소로 이송하는 작업이다.

 

요한복음 10장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이 가르침은 많은 의미가 있다. 요한복음을 참조하라.

문을 통해 참 목자가 왔고 그가 자신의 양들을 불러 찾아가고 있다. 유대인의 육신에 갇혀있는 빛의 자녀를 찾아서 자신을 따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상은 신랑을 기다린 신부도 50%만 들어가고 임금의 혼인 잔치에 선택을 받은 사람들도 그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오랜 기다림 속에 빛이 어둠에 동요되어 빛을 잃어버린 것이다.

 

마태복음 25장

13.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때를 알지 못하느니라

 

구세주는 그들에게 깨어 있으라 명령했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어둠에 있지 않아 보고 듣는 일이 가능하다. 지금 쓰고 있는 18편의 이야기만 읽어도 수천년의 비밀과 예수를 보고 듣는 귀와 눈이 열린다.

 

18편의 글이 모든 사람의 등불이다. 이 지식만으로 다시 예수의 가르침을 읽으면 자신에게 솟아 나는 샘물을 맛보게 될 것이다. 가르치는 자가 없어도 스스로가 깨달음이 이르는 일이 생긴다.

 

거짓말인지 시험해보라. 이 글을 읽고 요한복음 마가복음 마태복음 순으로 다시 읽어라.

 

요한계시록 11장

8. 그들의 시체가 큰 성 길에 있으리니 그 성은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그들의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영적인 소돔이 의미하는 것이 구세주의 죽음이다. 이 말은 빛의 자녀들이 그곳에서 죽었다는 말이다. 소돔과 애굽, 겟세마네 동산은 빛과 어둠의 치열한 전쟁터라고 보면 된다. 살인의 현장이며 증거 인멸을 시도한 장소이다. 여호와의 범죄 사실이 감추어진 장소이다.

 

롯이 소돔 땅으로 이주하면서 빛의 자녀들의 은둔 장소가 여호와에게 발각되었다. 여호와가 어떻게 모를 수 있냐고 비웃을지 모르지만, 육체에 숨어 있는 혼의 인간을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의 행실의 열매로 유추하거나 구세주의 계시로 구별한다.

 

육신은 신이 빛의 자녀를 심판하는 감옥이지만 구원을 위한 우리에겐 진리를 깨우치는 탈출의 시간이다. 육신을 가진 동안 길을 찾지 못하면 죽은 혼의 몸은 어둠의 통치자에게 끌려가거나 믿지 않는 사람은 지상을 떠돌아다닌다. 영적인 세계는 더 복잡하고 다양하다.

 

이것으로 소돔 심판을 마친다.

 

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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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모른는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할례

 

창세기 17장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6.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7.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8.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9.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11.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할례는 이스라엘 후손까지 축복받는 하나님과 언약이며, 선택받은 민족을 구별하는 도구로 자랑을 한다.

성기의 표피를 자르는 일이 얼마나 아팠을까? 예민하고 피가 모이는 부분을 잘랐으니 며칠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냥 누워만 있어야 했다. 그냥 귀의 끝을 자르거나 머리카락을 잘랐으면 어땠을까 묻고 싶다. 농담.

 

! 명심! 명심해야 하는 것은 성경을 통해 신의 의도를 모르면 인간은 함정에 빠지고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가 선행을 하고 진리를 전해도 자신 손으로 구세주를 죽인 이스라엘이 아닌가.

 

지금 만약 예수가 육체로 재림해도 교회는 자신의 것을 지키기 위해 이단이나 사이비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할 것이다.

 

남자의 생식 표피를 자르는 할례는 야훼 여호와가 이스라엘 민족을 확장하려는 의도이다.

즉 가족이나 부락 단위의 숫자를 100, 1,000, 10,000, 100,000, 600,000명으로 확장하는 일이다.

 

야훼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크게 번성하는 일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는 일, 민족에서 왕이 나오는 일, 가나안 온 땅을 다스리는 힘은 사람의 숫자에서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의 숫자를 확장하는 작업으로 할례가 시작된다.

 

12. 너희의 대대로 모든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또는 너희 자손이 아니라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막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13.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14.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포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할례를 받지 않으면 큰일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라도 생식기에 표시만 남기면 다 야훼 백성이라 침을 바르는 장면이다.

 

야훼 여호와의 체면에, 다른 사람도 필요하니까 받아주자고 말 못하고, 엄격한 구별을 통해 믿음을 보겠다는 엄포처럼 보이는 속임수다.

이것은 야곱이 삼촌 라반의 양을 빼앗아오는 장면에서 볼 수 있다. 그 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만약 여호와가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을 만들었다면 모든 것이 여호와의 것인데 굳이 자신의 것을 표시할 필요가 없다.

 

이미 이야기했듯이 지상의 지분은 엘로힘 여호와가 가지고 있다. 이것을 빼앗으려는 야훼의 수작이다. 동생이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삼촌의 재물을 훔치는 야곱의 모습이 야훼 여호와의 투영이다.

 

야훼 여호와는 아브라함과 사라를 유혹하는데 성공하지만 그들만으로 인구확장이 너무 느리고 근친의 유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지상은 엘로힘 여호와가 만든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브라함의 무리에게 새로운 피를 수혈했다. 그리고 엘로힘을 향하여 야훼는 자신의 명령을 지킨 자들을 가진다는 선포를 한다. 그 선포가 할례다. 할례는 순수한 유대인의 의식만도 아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확장하려는 의도가 분명하다.

 

혈통을 중시하는 순수한 유대민족으로 보이지만 개뿔 같은 소리다.

 

미국계 유대인을 찾아보라. 엄청나다.

스티븐 스필버그,

앨런 그린스펀,

스티브 발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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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 중에 유대인 출신을 검색해보라. 상상 이상이다. 그리고 영적인 세계에서 이스라엘 혼이 어떤 육신을 입고 어디에서 살아가는지 알지도 못한다.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도 조상이 유대인이란 말이 있다.

 

야훼 여호와를 섬기고 할례를 하며 유월절 절기를 기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그들은 물질을 지배하고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끼친다.

 

출애굽기 1장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머리 숫자를 불리는 정점을 찍는 시기가 애굽에서 지낸 400년 동안이다. 그곳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머릿수는 엄청나게 늘어난다. 유대인의 성장이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자들이 이상하다.

 

할례는 이스라엘 민족의 확장을 의미하고 동시에 구속의 의미를 가진다.. 야훼 여호와가 형의 물건을 훔쳐 가는데 엘로힘 여호와는 왜 저항하지 못했을까?

야훼 뒤에 있는 아버지의 영향과 야훼가 벌이는 일의 의미를 안다면 의문이 풀린다. 할례의 시작은 아버지가 칼을 들어 아들의 생식기 표피를 자르는 것이다. 주인이 종의 생식기를 자른다. 나중에는 전문가에게 맡겨 지지만 시작은 아버지의 손에 아들의 피를 묻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구약 성경에 성결과 순수와 정직함이란 단어에 속지 말아야 한다. 할례로 구별되는 자는 오직 남자들이며, 여자의 언급은 항상 제외된다. 여호와의 명령에 굴복하는 여자가 없기를 바란다.

 

할례는 이스라엘 민족의 확장과 구속이며 사울이 생식기를 자르는 할례를 폐하는 것도 종교적인 확장에 있다.

이스라엘의 법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르게 해석되는 이유는 사울의 하나님은 야훼가 쫓겨난 자리를 차지한 엘로힘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엘로힘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지배하는 종교적인 힘을 알았다. 여호와의 종교를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고자 시도한다. 가톨릭의 문화가 태양신과 이방신이 가진 다양한 관습을 담고 있는 이유이다. 엘로힘은 지상을 다스리는 여러 형태의 신으로 사울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다.

 

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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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교회가 많은 이유.

 

유대인을 존재케 하는 힘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신의 능력과 우수한 율법이나 교리가 아닌 돈이라고 생각한다.

 

창세기 12장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15. 바로의 고관들도 그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하므로 그 여인을 바로의 궁으로 이끌어들인지라

16.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

 

아브라함의 재산이 모이는 시작점이 사라를 탐내는 남자로부터 들어 온다. 과정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에 교회가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하다.

 

마태복음 19장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예수는 육신의 물질은 구원에 걸림이 되고 구세주를 따르는 방해물이 된다는 말을 자주 했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도록 엄격히 경계했다.

 

창세기 15장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야곱의 가족이 애굽의 울타리에서 세를 불리는 400년 동안, 애굽이 이스라엘 민족을 괴롭혔다는 말은 여호와의 거짓말이다. 야훼 여호와는 야곱의 후손 70명을 보호하려고 애굽의 울타리를 선택했다.

 

전쟁과 굶주림 같은 많은 변수를 피하고 안전하게 생육, 번성하는 기간이 애굽 생활이다. 시간이 지나서 그들이 민족 단위로 성장하니 애굽은 위협을 느끼고 그들을 견제하는 장면이 출애굽기에 등장한다. 400년 동안 노예로 힘들고 괴로운 삶을 살았다는 주장은 억지이다.

 

성경의 내용은 야훼 여호와는 400년 동안 애굽의 울타리에서 성장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 장자를 죽이고 주인의 물건을 훔쳐서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온다는 약속을 한다.

주인의 재물을 삼키는 자, 주인의 이권을 자신의 것으로 훔치는 자, 이들이 유대인이다.

 

창세기 20장

14. 아비멜렉이 양과 소와 종들을 이끌어 아브라함에게 주고 그의 아내 사라도 그에게 돌려보내고

15.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내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네가 보기에 좋은 대로 거주하라 하고

16. 사라에게 이르되 내가 은 천 개를 네 오라비에게 주어서 그것으로 너와 함께 한 여러 사람 앞에서 네 수치를 가리게 하였노니 네 일이 다 해결되었느니라

 

아브라함이 누이 사라를 통해 얻은 제물은 상당하다. 부인을 팔아 돈을 얻는 것이 정당한지 묻는다면, 여호와를 알지 못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야훼 여호와는 원래 그런 신이다.

 

예수를 생각하면 사랑과 긍휼, 자비가 떠오른다. 여호와는 다르다. 그는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며 비열하고 사악하다. 형의 것을 빼앗고 자신이 유일한 하나님이라고 거짓 진리를 전하는 자다.

 

야훼 여호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돈의 축복을 약속하고 그 약속은 지켰다. 지상에 살아가는 사람에게 강력한 힘이 돈이라 생각한다. 물질은 인간의 눈을 어둡게 하는 함정이다. 살아있는 동안 먹고 마시기에 충분한 돈이 있다면 감사한 일이지만, 은행과 부동산과 주식과 차명계좌로 숨기고 깔고 앉은 부자의 돈은 그들의 죽음 앞에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많은 돈을 벌기 위한 과정의 악한 행위의 값을 혼의 몸이 다 받아야 한다. 사장은 직원들이 회사에서 저지른 죄를 1/n로 나누어 받는다. 주인이 가장 많은 돈을 벌고 그 돈에 있는 죄도 같이 따라온다.

집 크기와 혼의 구원은 반비례한다. 육신의 집이 크고 화려할수록 그 집을 채우는 의롭고 선한 행위가 따라오지 않는다면 결단코 부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예수는 부자가 구원받기 어렵다고 말했지만, 그 당시의 부자와 지금 부자는 돈의 규모가 상상도 못하게 다르다. 돈은 누군가의 피와 땀이 따라붙는다. 그 돈을 세상을 이롭게 사용하지 않고 자신의 곡간을 채우는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잠언 10장

15.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이스라엘 조상 아브라함은 마누라를 팔아서 재물을 가졌다. 가나안에 살고 있는 족속을 죽여서 재물을 빼앗았다. 초상이 난 애굽 가정에서 재물을 훔쳤다. 역사적으로 유대인은 항상 보석과 돈이 따라다녔다. 세계적인 경기 불황에도 돈을 벌고, 유가가 폭락하거나 나라를 빼앗기고 도망을 다녀도 돈을 번다.

 

유대인 중에 많은 부자 있다. 세계를 움직이는 돈을 가진 엄청난 부자이다. 돈은 여호와가 자신에게 충성하는 대가로 유대인에게 준 축복이다.

 

마태복음 6장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율법이 예수의 가르침과 상충하는 대표적인 문제가 돈이다.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다. 돈의 주인과 생명의 주인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의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보다 여호와의 가르침을 중히 여긴다. 그래서 부자 교회가 많고 성직자 자리도 돈 때문에 세습한다.

 

마태복음 21장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마가복음 10장

25.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물질은 여호와의 축복이요.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이다.

부자는 여러 생을 통해 물질을 삶에 가장 1순위를 두고 산 사람이다. 그들은 이미 돈에 관한 경험이 많은 자들이다. 돈은 많은 부귀영화 주지만 돈에는 눈물과 피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지은 죄가 넘쳐난다.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

 

유대인이 나라를 잃고 세상에 흩어졌다. 그들이 단지 몸만 지역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홀로코스트와 전쟁으로 죽은 혼의 몸은 전 세계로 흩어졌다. 그렇게 새로운 몸을 입고 태어난 유대인의 혼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그들의 국적이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러시아인, 우크라이나인, 미국인 등등이지만 혼의 몸은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들이 은밀히 물질과 경제를 지배한다. 한국 사람이지만 혼이 일본인인 경우도 있다. 일본에서 죽은 사람이 다시 한국 사람 육체를 입은 경우이다. (인간의 구원에서 윤회를 설명한다.)

 

돈을 지배하는 종족은 돈에 눈이 멀어 진리를 찾지 못하고 길을 잃고 헤메인다.

 

불의한 돈은 구원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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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숨긴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신이 계획을 세우고 명령하지만 인간의 의지가 더 강해 명령을 회피하거나 계획이 어긋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인간의 의지가 신의 계획을 무너뜨리기도 한다는 말인데, 이런 사건이 종종 구약 성경에도 일어난다. 야훼 여호와는 하갈이 아브라함의 여자가 될지 몰랐다. 사라의 의지가 하갈을 통해 아브라함 후손을 생산하는 일에 힘을 실었다. 이스마엘 후손이 유대인보다 더 많다.

 

사람들은 기적이 신이 인간에게 주는 축복이라 믿지만, 사실은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낸 변수다.

인간의 지성이 여호와의 경지에 다다르거나 닿을 때 생긴다. 질병에 관한 의학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개발이 그러하다. 언젠가는 영적인 세계를 발견하고 영생을 찾는 인간이 생겨날 것이다.

 

육신을 통해 영적인 일은 철저히 숨기려고 여호와는 노력했다. 인간들이 육신을 통해 먹고 마시는 즐거움에 빠져 반복하는 삶이 인간이 지상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방식이다. 구약 성경에 육신의 몸이 죽은 후 영생을 얻는 방법이 무엇인지 언급하는 장면이 있는지 보라.

 

오직 예수만이 처음부터 죽을 때까지 천국과 영생을 위한 길을 가르쳤다. 예수는 지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영생을 위한 길을 찾아야 한다고 외쳤다. 교회는 잘못된 방식으로 영생의 길을 막고 열쇠를 감추고 있다. 하지만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진실을 대면한 사람들은 길을 찾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런 사건이 벌어지는 때가 인간이 여호와의 신에게 도전하는 마지막 일이 될 것이다. 육신의 감옥에서 탈출하는 방법을 찾게 된다는 말이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발전해도 인간을 따라올 수 없는 이유는 혼의 몸이 기계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지금까지의 인간이 만든 계급사회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일을 할 것이다.

암기를 잘해 얻어지는 판사, 변호사, 의사 등, 흔히 공부 잘하고 머리 좋은 사람들이 누리는 모든 것이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것이며 반면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성인 영혼이 필요한 직업은 남을 것이다.

 

인간의 의지로 돌아가서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의지로 생긴 변수를 해결하는 신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혼의 감옥인 육신의 시간은 지식이 없는 사람에겐 죄를 짓는 시간이고, 지식을 얻은 사람에게는 진리를 찾고 천국의 아버지를 발견하는 시간이다. 그러나 여호와에게는 인간을 죽이지도 살리지도 못하는 기간이다. 육신을 다 죽여도 혼의 인간을 소멸시키지 못한다면 다시 혼의 몸을 가둘 감옥을 찾게 된다. 혼의 인간을 소멸하기에는 명분이 없다. (율법이 있기전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신에게 의문을 품게 된다. 과연 여호와는 공의로운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보라. 하갈을 사라에게 굴복시키고, 모세를 자신의 명령에 굴복시켰다. 출애굽에서 애굽의 장자를 죽여 바로왕을 굴복시키고 여호와를 불신한 이스라엘 민족에게 불뱀을 보내 굴복시키면서 위태위태하게 이스라엘 역사가 흘러왔다. 두들겨 패고 머리채를 잡고 끌고 가는 모양이다. 이것만 봐도 야훼 여호와의 권위가 낮음을 알 수 있다.

 

인간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는 신도 막지 못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아담이 얄다바오트의 권세자를 넘어설 거란 구세주의 말이 옳음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인간이 진실을 대면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구세주가 인간에게 회복할 시간을 주었다.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는 기간이다. 예수는 천국의 씨앗을 뿌리고 간다고 말했고 그 기간이 몇 년이나 한세대정도면 재림할 거라 사람들이 착각을 했다.

 

구원과 심판의 대중성과 일반성을 고려할 때 시간은 지극히 중요하다. 모든 혼의 인간이 윤회를 거듭하는 시간과 어둠의 신들이 만든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최소한의 시간이 1000년이다. 예수는 인간에게 2000년이란 방대한 기간을 허락했다. 지금 인간을 보라. 과연 그들이 천국의 자녀로 합당한가?

 

결국 인간의 의지가 신의 의도를 넘어서지 못했다.

열매 맺은 알곡은 아버지의 창고로, 가라지는 불에 태우리라.

 

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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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숨긴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야훼 여호와의 계승자인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아버지이다. 유대인은 자기 조상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교회는 아담과 노아, 태초의 하나님을 가르치지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다르다.

 

야훼 여호와는 지상에서 뜻을 이룰 자기 백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미 지상은 엘로힘 여호와의 권세로 가득 덥혀 있었다. 야훼가 자기 백성을 만들기 위해 엘로힘 지분을 빼앗기 시작한다. 그 시작점이 무리에서 떨어진 아브라함을 유혹하는 일이다.

 

창세기 11장

31.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인 그의 손자 롯과 그의 며느리 아브람의 아내 사래를 데리고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가 무리를 떠난 이유가 나와 있지 않다. 야훼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불러 역사를 시작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사라가 필요했다. 야훼 여호와가 유일신이고 모든 것이 야훼 것이라면 이런 작업이 이상하다. 야훼가 자신의 것을 만들고 지키려는 노력에서 이것을 증명한다.

성경을 단지 육신의 사건으로만 바라보면 내용이 어려워지고 신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다.

 

야훼 여호와의 뜻을 이루어줄 혼의 인간과 육신의 백성이 필요했다. 하나의 민족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혼의 몸이 있어야 하고 혼을 담을 육신이 필요하다. 야훼 여호와의 후손을 생산할 태를 아브라함의 사촌 누이 사라로 정했다. 사라는 남자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아름다운 처녀였다.

 

창세기 12장

14. 아브람이 애굽에 이르렀을 때에 애굽 사람들이 그 여인이 심히 아리따움을 보았고

 

사라의 혼은 아름답고 육신도 매우 아름다운 모양이다. 사라를 팔아 한몫 챙기는 아브라함을 보면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은 과정이 어떠하든 물질 축복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라는 오랫동안 아이를 생산하지 못한다. 그녀가 남자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여호와가 태를 닫아 아이를 생산하지 못한 것이다. 먼저 사라의 혼으로 야훼 여호와의 영적인 백성을 만들기 위한 자기복제를 먼저 시작했다.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여자는 하갈을 남편의 침실로 들인다.

 

창세기 17장

19.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아브라함이 친아들을 얻고도 야훼의 계승자가 되지 못한 것은 아브라함의 아들이 아닌 사라의 아들이 필요했다. 육신이 남자의 혈통을 따라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생긴 오류이다. 영적인 세계(천국이 아닌 얄다바오트의 세계)는 남성성으로 지배되고 있다. 여성은 오직 혼의 인간뿐이라 홍수 심판때도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여자를 간음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의 여자는 혼의 인간을 생산하는 도구로 창세기 하와는 모든 산자의 어미로 불렀다. 모든 혼의 어미가 하와이다. 육신은 짐승의 육체를 입은 것을 기억하라

 

장자 이스마엘이 있음에도 야훼 여호와는 사라에게서 난 이삭을 아브라함의 계승자로 지목했다. 야훼 여호와는 혈통을 중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순수 혈통이라 보기 어려운 점이 많다. 가나안 땅은 아브라함이 정착하기 전 많은 부족과 무리가 살고 있었다.

 

야훼 여호와가 혈통을 중시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그가 지상의 이권을 가진 계승자가 아님을 엿볼 수 있다. 만약 자신이 적통 왕자라면 굳이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지상의 이권은 형 엘로힘에게 있었고 그는 다양한 신의 형태로 인간을 지배했다. 형의 것이 야훼 여호와에게 잠식당했다고 보면 된다. 출애굽에서 설명한다.

 

창세기 18장

1.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2.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그가 그들을 보자 곧 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3.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야훼 여호와가 사라의 혼을 통해 자기복제로 혼의 인간을 생산하지만 문제는 혼을 담을 육신은 그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자기복제도 불가능하며 근친은 치명적인 오류가 생긴다. 근친상간으로 일어나는 많은 유전병을 생각해보라. 근친의 결과로 종족이 사라지거나 질병과 장애를 안고 산다.

( 야훼의 자기복제는 다른 의미가 있다. 모든 걸 설명하면 이해가 어려워 이렇게 넘어간다.)

 

사라에게 태어날 이삭을 통해 영원한 언약을 세운다는 약속과 함께 성경의 다음 장에 낯선 세 남자가 아브라함을 방문한다. 그들이 다음 해에 아이가 출산할 것을 장담한다.

이삭의 아버지는 이 세 명의 남자 중에 있다.

 

이삭의 아버지는 호적상으로는 아브라함이지만 유전적으로 다른 남자의 아들이다. 이스라엘 육신의 조상은 야훼가 지목한 천사라고 말하는 남자이다.

이후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어디서 여자를 취하는지 보면 답이 나온다.

 

창세기 24장

15. 말을 마치기도 전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이삭은 아버지의 친척 리브가를 아내로 맞이한다. 이삭과 야곱에 이르기까지 이방의 여인이 아닌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여자를 취한다. 그리고 요셉으로부터 남자 중심의 사회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다.

 

창세기 28장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브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가족 간의 결혼으로 잘못 알고 있지만 이삭이 이방인의 아들이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리고 야훼 여호와가 노아의 전승으로 보이는 아브라함의 씨로 자기 백성을 만들 리 없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유전적 아들이 아니다. 호적상의 아들이다.

 

마태복음 5장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가 음욕을 품은 것만으로 간음했다고 말한 이유는 혼의 인간 복제가 정신적 간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이 성적인 생각을 안 하는 것은 어렵다. 음란한 생각과 자극은 혼을 더럽히거나 그런 혼의 지배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을 죄라고 생각한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도 있지만 이 글을 읽거나 참 예수를 아는 사람은 혼의 간음이나 자기복제를 당하지 않는다.

 

진리를 알면 자유롭다는 말은 정신적인 혼돈뿐만 아니라 혼의 몸도 다른 영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사실에 놀라워해야 한다.

하지만 음란물을 통해 자신의 혼을 황폐하게 만들지 말아야 한다. 진리를 아는 사람이 욕망에 사로잡혀 혼을 성적인 배설물로 만들지 않을 거라 믿는다. 결혼이나 성관계는 서로의 합의로 알아서 하면 된다. 그것에 관해 묻지 마라. 구세주는 육신을 구원하는 자가 아니다.

 

결혼을 질문하고 배우자나 재산 분배, 자녀의 진로를 질문하는 어리석은 예수의 제자는 없어야 한다. 육신으로 하는 모든 근심은 하루 꿈에 불과하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의 자식을 임신한 하갈에게 사라에게 복종하면 너로 말미암아 후손이 번성할 거란 약속을 한다.

임신한 하갈을 학대하는 것을 볼 때 실세는 사라였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라. 과연 유대인의 혼의 몸이 야훼 여호와의 후손인지?

혼의 세계는 알려진 바 없고 복잡하다. 야훼의 복사본이 아닐 가능성을 두고 성경을 읽어보라. 그럼 답을 찾게 된다.

 

인간 이스라엘의 시작은 아버지를 알 수 없는 이삭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가나안의 민족과 뒤섞여 순수한 혈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한 가족에서 순수한 민족과 여러 왕이 나왔다는 발상이 이상하다.

 

교회는 악한 야훼 여호와를 변호하는 변론자처럼 보인다. 억지 해석으로 야훼를 거룩하고 의로운 존재로 만들고 있지만 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신의 오류를 막을 수 없다.

 

소돔과 고무라의 심판.

롯과 딸의 부정.

다윗의 실책.

출애굽에서 여호와의 결정은 기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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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숨긴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 전에 성경에 대해 조금 언급하려고 한다.
성경이 누구에 의해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사람들이 교회의 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의 무오류적 절대성과 영원성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22장

18.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19.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은 여러편의 글이 모여 만들어졌다. 내용의 마지막 부분의 핵심이 성경에 다른 것을 첨가하면 죽는다이다.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 절대성은 우리가 성경의 내용을 부정하거나 권위를 침범하지 못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들의 해석은 정당하다고 가르친다.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쓴 것도 아니고 예수의 계시도 아니다. 여호와의 계시로 야훼 하나님과 새 이스라엘의 부활을 담고 있다. (요한계시록 참조.)

 

예수의 가르침은 왜 비슷한 시기와 비슷한 내용을 적은 제자들의 글만 모여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공생애 이전 예수의 행적과 부활 후 제자들에게 가르친 복음, 여제자가 쓴 글도 많은데 같은 내용의 4편만 넣어놓았다.

 

창세기에 천국의 빛이 하강한 짧은 시간과 예수가 지상에 있던 시간을 제외하고 세상은 어둠이 아닌 적이 없었다. 의롭고 착한 사람들이 있지만 결국 힘을 가진 욕망의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했다.

 

종교가 인간의 욕망과 상관없이 순수한 적이 있었는가?

 

예수만이 생명을 위한 절대적인 선이다. 그가 빛으로 천국 아버지에 대해 가르쳤다. 하물며 예수 제자와 사울 사이에도 인간의 욕망이 개입되어있었다.

 

그렇다면 인간을 위한 열정으로 성경은 편집되었을까?

편집자들이 구원을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성경을 편집했다는 생각은 무지다.

 

예수에 관한 기록이 넘쳐났다. 물론 거짓말과 과장된 이야기가 돌아다녔을 수 있다. 그렇지만 사람이 어떻게 예수가 전한 진리에 참과 거짓을 구분한단 말인가. 성자라 불리는 가톨릭의 성직자들이 과연 선의 결정체인지 묻고 싶다.

 

마가복음 2장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하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말하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느니라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요한복음 16장

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

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예수가 떠나면 빛과 생명의 양식은 사라진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는 그날까지 굶어야 한다는 말이다. 누가 예수의 자리를 대신해 진리를 전할 수 있는가베드로, 사울, 어거스틴어림도 없는 소리다.

 

마태복음 24장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자신을 구세주나 하나님이라 말하는 자들은 모두 가짜다. 예수는 육신을 입고 다시 지상에 재림하지 않는다. 예수가 전한 가르침이 마지막 날에 그들을 심판한다. 모든 사람은 가라지와 알곡으로 나눠지고 각자가 살아온 행위의 값으로 심판을 받는다. 알곡으로 만들어졌으면 아버지 곡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로 태우거나 흩어진다.

 

구약의 여호와를 유일한 하나님으로 믿는 모든 종교는 여호와의 사람들이다. 가톨릭도 교회도 여호와의 사람들이다.

 

내 말에 반박해보라. 그대들이 여호와의 사람들인가? 예수의 사람들인가?

 

요한복음 15장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당신이 어떤 열매로 구세주를 맞이하고 있는지 보라

너희는 서로 사랑하는가?

섬김을 받지 않고 섬기는 자인가?

어린아이같이 되었는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리고 있는가?

육신이 아닌 영을 살리기 위해 아들과 아버지의 지식으로 충만한가?

진리를 알고 깨우쳤는가?

 

예수가 전한 가르침은 무시한 채, 사울 서신에 기초하여 믿으면 천국에 가고 가르친 적은 없는가?

교회를 다니면 천국에 가고 헌금 많이 하면 더 큰 상을 받는다고 가르친 적은 없는가?

예수의 이름을 정치, , 권력을 떠나 순수한 구원만을 위해 사용한 적은 언제인가?

 

예수가 없는 시기에 편찬된 성경이 의도가 없이 편찬되었다고 믿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성경책을 들어보라.

 

전반부는 이스라엘 역사가 두껍게 자리를 차지하고 후반부는 사울의 서신으로 예수의 가르침에 숨을 조여온다. 예수의 공생애 이전 기록도 없고 부활 후 제자들에게 전한 가르침은 찾아볼 수도 없다. 특히 여제자들이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편집에 제외된 가르침은 사람들이 금서로 분류하고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예수의 어린 시절 이야기와 제자들에게 따로 전한 가르침, 가장 중요한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남긴 천국에 관한 모든 이야기는 지금의 성경에는 없다.

 

성경은 여호와가 의도를 가지고 자기 사람을 통해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복음서도 같은 시기에 예수의 행적을 기록한 것이 전부이다.

누가 책을 이런 식으로 편집하는가?

 

기승전결도 없이 비슷한 내용을 다른 글쓴이가 기록한 것을 묶어 놓았다. 옷장을 열어보니 비슷한 종류의 옷만 가득하다.

트레닝 복도 필요하고 캐주얼 복도 필요한 것인데, 상점마다 정장만 팔라고 강요하는 꼴이다.

 

교회가 지정한 성경을 제외한 다른 기록은 외경이나 금서로 분류하여 불태웠다. 그 기록을 보는 사람을 죽인 사건에서 성경을 만든 편집자의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믿기 어렵다. 예수에 관한 다른 기록을 보는 것만으로 그들을 죽인 의도를 생각해보라.

 

이젠 읽어야 한다. 외경도 읽고 금서로 분류된 예수의 기록도 보라. 하물며 예수를 비난하거나 부처의 제자라고 주장하는 책을 보아도 좋다. 다양한 지식 속에서 가장 좋은 진주를 발견하면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사야 한다. 가장 좋은 물고기는 바구니에 담아 집에 가져와야 한다.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하는 자는 구원에 이를 것이다.

진흙 속에서 가장 빛나는 예수를 만날 것이다.

 

지금 교회도 자신들이 해석하는 부분과 다른 내용의 책을 읽기를 금하고 있다. 성경의 저자도 아닌 교회는 자신들의 해석을 강요하지 마라. 각자가 성경을 읽고 깨달은 대로 구원에 이른다. 집단의 지성이 목사의 지성을 넘어선다. 목사의 얕은 지식으로 구원을 강요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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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숨긴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심판이 벌어졌을 때 실제로 죽은 혼의 인간은 여호와의 후손들이다. 노아의 가족과 아담의 후손을 헤치지 못하도록 돕는 존재가 있었다.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들이 심판때에 노아의 무리가 살아남은 것을 보고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들은 모두 살아남았을까?’
‘우리가 섬기는 신이 언제 우리를 다시 죽일까?’

 

창세기 11장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살아남은 혼의 인간들이 노아의 무리가 살아남은 이유가 특별한 신의 보호 아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여호와를 넘어서 더 높은 하늘까지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자 했다. 그리하여 천국의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보존 받고 싶었다. 이것이 바벨탑을 쌓은 이유이다.

 

사다리를 만들어 하늘에 올라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 속의 뱀과 홍수, 바벨탑을 우리가 아는 뱀과 홍수, 건물로 가르치기 때문에 구세주와 멀어지는 것이다.

여호와가 인간의 언어를 달리했다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인간의 지성이 영생을 위한 일을 도모했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밖에서 정치와 종교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말을 자주 한다.

정치는 육신의 삶과 깊은 관계가 있고 종교는 구원과 깊은 연관성이 있는데 중요한 말을 밖에서 하지 말라고 한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야 한다. 왕과 신에게 우둔한 백성들은 도전하지 말라는 뜻이다.

 

앉으면 정치 이야기를 하고 둘이 모이면 종교 이야기를 해야 한다. 드라마나 영화보다 정치 종교에 관한 토론의 장이 많이 열려야 한다.

언제까지 소수 사람에게 정신적 지배를 받을 것인가?

다수는 왜 당하고만 있는지 고민을 해보라.

 

천국의 아버지는 다수의 눈물에 긍휼을 베푸는 분이 아니다. 스스로 찾고 구하는 자에게 문을 열어주신다.

 

국가는 국회의원 손에, 종교는 교황이나 목사에게 맡겨진 환경에서 다수가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은 예수의 가르침과 거꾸로 가고 있다. 교회의 숫자가 늘어나도 총으로 죽거나 다치는 사람은 더 많아졌다. 빈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인종차별은 여전하다.

과거에는 풀을 먹고 싸웠고 지금은 밥과 치킨을 먹고 싸운다면 나중에는 한우 고기나 스테이크를 먹고 싸우게 될 것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선한 예수 제자의 투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늘 자기 삶에 도움이 되는 많은 이야기를 서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홍수 이야기를 해보자. 심판으로 살아남은 혼의 인간들이 모이고 자신들이 믿는 신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였다. 그 결과 새로운 길에 도달한다. 여호와가 다시는 홍수로 지상을 멸하지 않는다 약속하고 그 증거로 무지개를 보였다. 하지만 홍수로 살아남은 그들은

가장 높은 꼭대기 하늘 아버지에게 가자. 그리고 우리 이름을 그에게 고하고 우리도 구원받을 수 있도록 이름을 알리자.’ 하였다.

 

바벨탑은 깊은 사색을 통해 지식의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그 일은 진리, 빛 그리고 모든 생명의 근원을 발견하는 것이다. 여호와는 인간들이 참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그들의 사고와 생각을 흩어버렸다.

 

이 사건으로 지역마다 내려오는 천지창조 신화와 큰 홍수 사건을 하나쯤 가지고 있다. 그런 이유로 구약성경이 다른 신화를 바탕으로 편집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하나의 생각과 하나의 뜻으로 뭉치면 신을 능가하는 일이 벌어진다. 깊은 사색을 하는 혼의 인간들을 흩어 놓아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후 인간의 지성은 다른 곳으로 흘러간다. 문명과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한다. 달나라를 가고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여 사람을 대신한다. 도시관에 지성을 자랑하는 책이 넘쳐나는데 종교는 상식에 범주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믿으면 천국을 간다는 억지 주장으로 교인을 유혹한다. 종교만 상식의 바닥을 치고 있다.

 

바벨탑 사건은 영생을 위해 신을 찾아 나선 혼의 인간 여정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말이다.

 

 

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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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숨긴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홍수심판 이야기를 해보자.

아브라함 이전 사람들의 나이를 보면 약 천년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혼의 인간이 얼마를 사는지 바벨탑 사건에서 가르쳐 주겠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야훼 여호와의 서막을 알리는 시작점이고 이전의 이야기는 엘로힘과 얄다바오트의 이야기이다.

 

물과 흙을 다스리는 엘로힘과 불과 바람을 다스리는 야훼를 볼 때 사람들이 지식이 없는 상태로 신을 부르는 것은 대부분이 엘로힘이다. 농사에 필요한 비옥한 대지와 물, 작물이 자라는 에너지를 부여하는 태양을 상징하는 신이 엘로힘이다.

 

야훼는 달의 신으로 불과 바람을 다스리며 신의 노여움을 상징한다. 아브라함 이후에 소돔땅에서 벌어진 심판을 보라 불로 그들을 태워죽인다. 소돔과 고무라 이야기 편에 나온다.

 

창세기 6장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혼의 인간 종족은 다양하다. 영화에 언급되는 인간과 천사의 혼열 종족도 있다. 아담의 빛이 분산된 후손들은 생명의 씨앗을 품은 자녀로 천국의 아버지가 선택한 백성이다. 예수가 잃어버린 양이라 말한 존재들이다.

 

사람의 모양은 천국의 자녀 모습을 모방하여 만들어진 존재로 아름답다. 요한계시록의 천사의 모습은 실제로 그려보면 괴물처럼 흉측하다. 눈이 몇 개고 머리가 몇 개라 나오는 데, 실상 얄다바오트가 부리는 천사들은 아름답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얄다바오트세계의 신들도 인간의 모습과 다르다. 오히려 동물과 흡사하고 인간의 모습과 섞여 아름답지 않다.

 

지금의 인류도 짐승의 육체에서 혼의 모양을 따라 진화했다. 짐승의 육체에 가두어진 혼의 지성이 과학과 문명을 발전시켰다. 육체의 모습도 혼의 모양으로 진화하고 있다.

육체가 아름답게 진화한 것은 혼의 몸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얄다바오트 세계는 남성성만 있다고 이미 말했다. 천사들이 자기 후손을 생산하기 위해 사람의 여자를 닥치는 대로 간음하여 생산한 혼의 인간 때문에 비열한 운명이 시작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인간보다 잔인한 존재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사탄이 지상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치밀하게 세워진 계획이다.

사탄의 생각이 인간의 교만으로 표출되고 신을 부정하는 무신론과 자신이 신처럼 군림하려는 의도로 드러난다.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려는 힘, 즉 계급사회이다.

 

신을 부정하고 자기 능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려는 왕들이 등장한다. 왕권과 신권이 싸우는 것이 사탄과 야훼의 싸움이고, 예수 이후 벌어진 종교전쟁은 엘로힘 여호와와 야훼 여호와의 싸움이다.

인간이 자기 의지대로 산다고 생각하지만 지상은 육을 지배하는 영들의 전쟁터이다.

 

홍수심판의 원인은 사람의 잘못이 아니다. 신의 명령을 어긴 천사들의 일탈에서 비롯된 사건이다. 왕의 아들들이 마을로 내려가 이쁜 여자를 겁탈하니 왕이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을 불로 태워버리는 꼴이다.

 

홍수심판에서 볼 수 있듯이 여호와는 빛과 정의, 선과는 멀리 있는 존재이다.

우리가 신을 사랑과 긍휼, 진리라 착각하는 이유는 예수가 그런 분이기 때문이다. 예수의 아버지를 여호와로 가르치는 교회 때문에 여호와도 선한 존재로 인식하는 오류가 벌어진 것이다.

 

혼의 인간 감옥으로 사용한 짐승의 육체에 천사들이 들어가길 원했다. 이를 본 여호와가 아담의 후손과 사탄을 죽이기로 한다.

 

창세기 6장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 구절은 웃음이 난다. 자신이 만든 창조물이 악하다고 한탄한다. 아담이 자신을 만들어 달라고 사정한 것도 아닌데 신이 만들어 놓고 인간을 탓하는 모양이 역설적이다.

 

이 상황을 다시 설명하면 신이 아담의 후손이 발산하는 빛을 막을 수 없어 이들 모두를 없애는 것이 좋겠다고 말하고 있다.

 

노아는 의인이고 완전한 사람이라 한다. 칭찬하는 장면처럼 보이지만 창세기는 종교의 아버지 야훼 여호와가 인간에게 전한 거짓 진리임을 명심해라. 결론부터 말하자면 심판을 통해 노아 종족은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들만 죽임을 당하였다. 이것을 역설적으로 노아가 의인이어서 하나님이 죽이지 않았고 구원시켰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살아 남은 여호와의 혼의 인간은 신이 자신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아가 믿는 높은 하늘 아버지에게 자신들이 있음을 알리자고 시작한 일이 바벨탑 사건이다.

 

역사적인 기록이 아닌 영감이나 계시를 통해 전해지는 창세기나 요한계시록을 조심해야 한다.

여호와가 인간을 속이려고 거짓 진리로 포장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4장

11.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12. 이는 그들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고

 

예수가 거짓 진리에 귀가 멀고 눈이 멀어있는 여호와의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천국의 자녀로 허락을 받은 소수만이 구원을 받는다.

모두를 위한 구세주, 모두의 하나님이라 가르치는 교회를 조심하라. 그들은 삯꾼 목자들이다.

 

홍수심판의 결말은 간단하다. 열받은 여호와가 혼의 인간과 천사, 즉 사탄을 쓸어 버리려고 심판을 단행했지만, 노아의 종족은 살아남고 자기 천사들만 죽었다는 말이다.

만약 홍수심판으로 노아 가족외 모두가 죽었다면 지금의 인류는 없다. 홍수는 아담의 후손의 아름다움에 빠진 천사를 심판하는 것으로 그 구간에 속한 부분적인 심판이다.

 

창세기 8장

20.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 내용은 재밌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

홍수심판이란 사건을 통해 살아남은 여호와의 백성들이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아버지가 나를 죽일 수도 있구나.’

 

이미 언급한 대로 혼의 인간은 아담의 후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천사의 후손과 다양한 권세자가 이브를 간음하여 생산한 혼들도 있었다.

 

혼의 죽음은 육신의 죽음과 다르다. 한마디로 흩어진다는 표현이 맞다. 물을 땅에 쏟으면 스며들고 흩어지듯이 혼도 소멸하여 흩어진다. 바람에 날려버리는 가라지로 생각하면 된다.

 

마태복음 13장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여자에게 태어난 특별한 후손이 있다. 혼의 인간 중에 영생하는 존재로 흩어져 소멸하지 않는다. 이들은 마지막 날 영원한 불에 던진다. 영생의 에너지를 품은 얄다바오트의 아들 엘로힘과 야훼도 포함된다.

 

교회에서 말하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은 천국의 아버지가 만든 곳이 아니다. 얄다바오트가 영생을 품은 빛의 자녀를 죽이지 못하므로 지하 감옥에 가두어 둔다. 예수가 죽어서 영들의 감옥에서 구출했다는 존재가 그들이다. 그리고 다시 부활시키는 이스라엘 백성(요한계시록)들이 여호와에게 충성하지 않으면 그들이 받는 마지막 심판이 지옥불이다.

 

구약 성경에서 영생을 위한 천국이나 영원한 심판의 지옥에 관한 내용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예수가 등장하는 신약성경의 서두부터 구세주가 천국을 전하러 왔다며 회개를 촉구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예수가 혼의 인간이 영생하는 영의 인간이 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 시작은 아들과 아버지를 아는 지식에서 출발한다. 혼의 인간은 육신이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혼을 영의 몸으로 회복시켜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육신은 죽고 혼의 몸은 얄다바오트의 천사들에게 끌려가 형벌을 받고 다시 윤회한다.

여러생을 거쳐 죄의 주머니를 가득 채운 혼의 인간은 소멸한다.

 

그러나 죽이지 못하는 영생을 하는 혼의 인간이 생겨난다. 이들이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144,000명이다. 야훼가 재림하는 구세주를 막기위한 계획으로 자신에게 충성한 이스라엘 민족의 소수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는 장면이 나온다. (요한계시록 편을 읽어보라. 매주 교회에 가서 생명없는 설교를 듣거나 헌금을 착취당하지 말고 읽고 배우고 지식의 산에 올라 세상을 내려다보라.)

 

영생을 입은 몸이 신에게 충성을 다하지 않으면 보내지는 곳이 영원한 불지옥이다. 물론 신을 배반한 천사이자 뱀의 우두머리인 용과 사탄도 그곳으로 간다.

 

창세기 821절 내용은 여호와가 인간을 심판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여호와가 빛의 자녀를 죽일 수 없고 오히려 만물과 자신의 백성만 죽었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을 섬긴 백성들이 오히려 신의 손에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을 택한 것이 바벨탑이다.

 

창세기 9장은 인간에게 달콤한 사탕을 주는데 이것이 함정이다. 인간들에게 심판이 아닌 복을 주는 척하면서 인간을 통제하려는 의도가 포함되어 있다. 먼저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 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잘 먹고 잘살라고 한다.

 

너희에겐 영생은 없다. 다만 육신으로 누리는 모든 것에 취해서 진리를 찾지도 말고 빛을 돌아보지도 말아라.’

 

창세기 9장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이 구절을 그냥 주의 깊게 보지 않아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이 내용은 이미 창세기 1장에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라. 1장에는 지상을 다스리는 자로 혼의 인간을 세웠다. 하지만 노아에게는 동물이 인간을 두려워하는 존재로 너희가 군림한다고 했다. 인간이 동물을 죽이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창세기 내용은 시간순이나 과학적인 눈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야훼 여호와가 인간에게 전하는 의도를 간파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는 여자가 따먹은 선악의 과실로 모든 인간이 원죄라는 족쇄에 사로잡혀 있고 그곳에서 해방시킨 분이 예수라 가르치지만, 아니다. 죄의 시작은 율법에서 시작된다. 여호와의 명령에 속한 사람에게 전하는 법령이다. 여호와의 주관권에 없는 사람은 율법과 죄에 무관하다.

 

창세기 9장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창세기 1장에 인간에게 허락된 먹을거리는 식물뿐이다. 그러나 홍수 이후 인간에게 육식을 허락한다. 엘로힘 여호와는 홍수로 자신이 원하는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대신할 새로운 전략을 내세웠다. 이것이 살아있는 자들을 죽이는 싸움이다.

동물을 죽여도 좋다고 말하고 죽인 대가를 받겠다는 말에서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원죄에 빠진다. 인간이 인간을 살인하는 시작이 동물을 죽이는 일에서 시작된다. 살인은 동물을 살생하는 육식의 인간이 벌이는 일이다. 채식주의자가 살인을 안 한다는 말이 아니라 초식동물의 싸움과 육식동물의 싸움을 비교하면 된다.

 

인간의 손에 동물의 피를 묻히고 확장해 자신의 종족을 죽이는 담대함을 키워가는 장면이다. 그것에 대한 결론으로 사람을 죽이는 자는 벌이 따라온다.

 

고기를 익혀 먹으면 된다고 말하는 종교집단도 있지만 죽이는 살생은 결국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특히 사람을 죽이는 자는 반드시 그 사람도 피를 흘린다고 선포한 명령에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

 

한국에서 구세주의 가르침을 전하는 이유를 물었다.

 

사람의 피 값을 지불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타 민족을 학살한 피 값을 갚아야 하고 민족이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이 더디게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구원을 위해 성경을 읽고 교회를 다니지만, 성경을 임의로 해석하거나 자신의 편의대로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개인의 죄와 민족의 죄를 회개와 반성으로 머리를 숙이지 않는 자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위 구절이 엘로힘 여호와가 인간에게 준 첫 번째 율법이고 강한 구속력을 가지는 법이다. 결국 인간은 이 법으로 멸망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이유는 영적인 세계에서 죄의 무게를 쌓아가는 과정이면 마지막 날에 세상을 깨우치는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

 

예수의 구원은 요한복음을 참조하라.

 

죽고 죽이는 일이 신의 손이 아니라 너희 안에서 일어날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모세가 출애굽을 할 때 일어난 살인 사건이 다른 시간대 벌어진 홀로코스트로 연결된다.

 

출애굽기 3장

21.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지라 너희가 나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22. 여인들은 모두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거류하는 여인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의 자녀를 꾸미라 너희는 애굽 사람들의 물품을 취하리라

 

출애굽기 11장

5.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6.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할 때 애굽가정의 동물과 모든 장자를 죽인다. 야훼 여호와의 잔인하고 비열한 장면을 기억하라. 전쟁에 무관한 아이들을 죽이고 그 집안 보석을 훔쳐 달아나라고 명령한다.

 

자식의 죽음으로 비통한 주인 집에서 금과 은, 의복을 훔쳤다. 슬픔에 고통받는 상주의 부의금을 탈취하는 비열함과 같다. 아니 더 나쁘다. 돈으로 영화나 문학사를 조작하고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그들에게 긍휼은 없다. 돈이면 모든 것이 숨겨질 거라고 착각하는 유대인과 같다.

 

세상이 돈의 지배에 있다고 착각하는 인생들도 죽음 뒤에 어둠의 통치자를 만날 것이다. 그들의 말로 그들을 심판하리라.

애굽에서 벌어진 집단 살인에 대한 대가로 일어난 사건이 유대인의 학살인 홀로코스트다.

 

누구는 예수를 죽인 피의 값을 받은 것이라 말하지만 천국의 아버지가 아들의 복수를 위해 피를 손에 묻힌다는 주장이 어처구니없다. 구세주는 유대인을 심판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믿고 아는 대로 심판을 받을 뿐이다.

 

그럼 채식이 옳은가 육식이 옳은가 논쟁을 한다면 예수가 오기전에 했어야 한다. 인간이 인간을 살생하는 사건이 어디서 비롯된 것이며 살인의 피하는 인간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지 깊은 성찰이 필요했다.

 

예수가 이 법을 한마디로 정리를 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못하나 형제를 저주하고 미워하는 것으로 심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형제는 구원을 받을 빛의 자녀들, 육신의 형제나 이웃이 아님)

 

육식은 달콤함을 맛보기 위해 경계를 허물고 넘어오라. 그러나 그 대가는 반드시 지불해야 한다.’는 말이 숨어 있다.

 

엘로힘 여호와가 다시는 인간을 물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언약의 표시로 무지개를 둔다.

 

무지개.

하늘을 쳐다보면 아름다운 물방울이 형형색색 빛나고 있다. 이것이 약속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는가?

아름답게 보이는 화려한 색채가 허상이란 말이다.

 

꿈을 좇아 쉼 없이 달리고 오지 않는 미래를 바라보고 화려한 삶을 꿈꾸는 모든 사람에게 묻는다.

 

당신은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린 현실에 존재한다. 그리고 우린 죽는다. 무지개를 쫓아다니면 어떤 결과가 올지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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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https://cafe.daum.net/good-horse/

교회에서 숨긴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얄다바오트의 아들에 대해 알아보자.

어둠의 세계에는 여성성이 없이 자식을 생산하지 못한다. 다만 창조를 통해 신들이 필요한 것을 만들 뿐이다. 그렇다면 우두머리 통치자의 아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얄다바오트는 자신이 아담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여자를 간음한다. 아담의 여자를 가장 먼저 간음한 존재가 우두머리 통치자 얄다바오트다.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아담이나 다른 남자에게 먼저 놀아나게 버려둘 악한 왕은 없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여자가 생산한 두 아들을 아담의 자식으로 속이기 위해, 가인과 아벨로 불렀다. 그러나 실상 그들은 얄다바오트의 두 아들인 엘로힘과 야훼이다.

 

엘로힘은 물과 흙을 다스리는 신이고 야훼는 불과 바람을 다스리는 신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불과 바람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이다.

 

가인과 아벨을 교회에서는 아담의 아들로 가르치지만, 빛의 아담이 생산한 아들들이 서로 싸우고 신의 명령을 거역하고 살인을 하는 자녀로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혼의 인간은 육신처럼 아이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복제라고 이해하면 된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은 아주 중요하다. 얄다바오트가 자신의 아들을 지상을 다스리는 신으로 하강시킨 이유는 아담의 후손을 감시하고 그들이 빛으로 영생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아담이 영생하는 천국의 자녀가 된다는 의미는 그를 돕는 조력자가 나타났다는 말이고, 그 조력자는 곧 천국의 아들이다. 아들의 강림은 얄다바오트의 파멸을 의미하는 것으로 얄다바오트는 그를 절대적으로 막아야 했었다.

 

 

마태복음 15장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구세주가 나타났다는 말을 기억하라. 인류 전체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가 강림한 것이 아니다. 예수는 인간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이 말은 혼의 몸이 육신 속에 숨어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추고 있지만, 그 속을 보시는 분이 구세주이다.

 

참 목자를 따르는 양이란 표현과 선택받은 자, 그리고 알곡과 가라지 같은 많은 가르침에서 예수는 자신이 특정한 누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아담의 후손으로 아버지에게 선택을 입은 자들이다. 그러나 신랑을 맞이해야 하는 신부들도 50%만 혼인 잔치에 들어간 것을 볼 때 아담의 후손들도 긴 시간동안 자신의 기원을 잊어먹은 사람이 많았다.

 

마태복음 18장

12.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13.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딱 이 구절이 예수가 지상에 온 이유를 설명하는 말이다.

99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해 구세주는 예수라는 육신을 쓰고 지상에 강림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신약 성경 핵심이다.

 

모든 인류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자신 속에 겨자씨만큼의 빛이 있어야 가능성이 있다. 믿고 기다린 신부도 반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다. 예수는 그들에게 깨어 있으라 명했다. 진리에 깨어 있지 않고 이스라엘처럼 눈이 멀고 귀를 닫아 버린다면 혼은 소멸하거나 영원한 불로 떨어진다.

 

깨어 있다는 것은 구세주가 언제 어떻게 오는지 아는 것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선과 악을 구별하고 거짓과 진리를 깨우치고 빛으로 나아와야 한다. 때가 이르렀다.

 

예수가 육신의 인간으로 나타났는지 알아야 한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시간이 자유의 시간이다. 이 말은 감옥의 죄인들이 감옥을 벗어나면 수갑과 포승줄에 묶여 간수의 감시를 받으며 이동을 한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는 좁고 제한적인 행동이지만 그래도 자유롭다.

 

혼의 인간이 육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동안 진리를 찾아 감옥을 탈출하는 것이 구원이다. 영의 세계(얄다바오트의 세계)에는 진리가 없다. 오직 보이는 육신의 세계에서 전해진다. 만약 영적 세계에 구세주가 나타난다면 얄다바오트의 세계가 파멸을 맞게 된다. 구원에 관한 이야기는 길어 요한복음을 참조하길 바란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는 말에서 이미 구세주의 강림은 예언되어 있었다. 얄다바오트가 천국 아버지의 계획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할지 모르지만 이미 첫 번째 빛의 하강이 있는 순간 모든 것을 원 상태로 돌려 놓으려는 신의 계획을 알았다. 여기서 신은 천국의 아버지이다.

 

그러므로, 얄다바오트가 자신의 세계가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 일을 하기 위해 지상으로 자신의 아들을 인간의 감옥을 다스리는 신으로 보냈다.

엘로힘 여호와는 혼돈과 깊은 어둠이 있는 세계를 정비하고 생명을 생산하고 자신의 창조물을 사랑했다.

창세기 1장에는 무엇을 만들고 나면 하나님이 보시기 좋았더라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엘로힘 여호와가 자신의 창조물을 기뻐하는 장면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지상에 보낸 이유가 땅의 주인이 오거나 상속자가 오면 때려 죽여서라도 땅을 빼앗기지 말라고 보냈는데, 아들이 그 땅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꾸미는 일에 몰두하고 있으니 한심하게 느낀 것이다.

 

창세기 4장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얄다바오트는 세월이 지나 지상을 다스리는 야훼 여호와를 보낸다. 가인은 자신이 생산한 농작물을 자신의 아버지에게 드려도 기뻐하지 않았다. 가인은 자신의 땅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꾸미고 그 결과물을 아버지에게 자랑하지만, 아버지는 그 일을 기뻐하지 않은 것이다.

 

후발대로 지상에 강림한 야훼 여호와는 이미 형이 모든 것을 이룬 곳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세상은 엘로힘이 불의하고 야훼가 정의라 부르지만, 실상은 다르다.

 

구세주가 정의란, 자신은 하기를 꺼리는 일을 누군가가 꼭 해주길 바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야훼 여호와는 아버지가 손에 묻히기 싫어하는 일을 함으로 자신의 입지를 넓히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계획은 구세주를 죽이는 일이다.

 

아벨이 드린, 양의 새끼라고 하면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지 않는가?

어린양은 구세주를 비유하는 말로 구약 성경에 자주 인용된다.

아벨은 지상에서 형을 이기는 권세를 얻기 위해 아버지의 힘을 빌리고, 대신 자신은 구세주가 어린아이일 때 죽여 당신에게 바친다는 약속을 한다.

 

아벨이 여호와에게 드린 어린 새끼 양은 구세주를 의미하는 것이다.

 

가인은 동생의 손에 피를 묻히는 비정한 아버지를 참을 수 없었다. 여기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으로 나오지만 이것은 아버지의 비정함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이다.

이것이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거짓 진리로, 진실을 대면한 인간들이 신을 떠나고 진리를 찾아 영생에 이르지 못하게 하려는 속임수다.

 

예수가 진리를 알면 너희는 자유롭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말로 하면 세상에 진리가 아닌 가짜가 판을 치고 있다는 말이다. 사람들이 율법에 사로잡혀 죄인이 되고 여호와에게 구원을 구걸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요한복음 5장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언제 낫게 될지 모르는 치료의 희망이 구원의 족쇄가 된다. 38년 동안 교회를 다니고 가끔씩 전해 듣는 간증으로 자신에게도 구원이 올거라는 막연한 믿음으로 교회를 벗어나지 못한다.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니다. 먼저 들어가기 위해 싸우고 시기하는 무리 중에서 병을 고치지 못한 그를 예수가 고쳐준다

 

마태복음 11장.

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누구나 와도 좋다고 허락하지만, 임금의 혼인잔치를 외면하는 손님처럼 모두가 육신의 일에 빠져 있다.

시간은 흐르고 모두가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 앞에 긍휼을 입을 자는 없다. 살아서 죽음을 준비하는 자가 되어라.

 

가인이 아버지를 멀리한 이유는 구세주를 죽이는 선택을 하는 아벨도 죽는다는 사실이다. 어둠은 빛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안다. 구세주를 죽이는 댓가로 자신도 죽는다는 사실을 아벨은 몰랐을까?

 

인간이 저지른 죄악의 끝에 영원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기는 것과 같다. 아벨은 자신 앞에 보이는 세상의 권세를 잡기 위한 거래를 제안했고 아버지는 그것을 기뻐했다.

 

세상에서 생명을 해치고 악행을 저지른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부자는 결코 구원을 받지 못한다. 섬김을 받고 사람들의 칭송을 받는 자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

 

부자들이 과학의 힘으로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고 달나라를 관광하겠지만, 그들이 실수를 하는 것이 있다. 인간의 뛰어난 머리와 직관력으로 내세에 관한 연구가 발전하여, 그 세계가 존재하며 영생을 위한 혼의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될 때, 그들은 통탄의 눈물을 흘리게 되리라.

자신이 누린 부귀영화가 오히려 혼의 몸에 독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자는 천국을 갈 수 없다 참조)

 

아벨의 거래는 이미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시작한 일로 결국 아벨은 죽음을 맞이한다.

요한계시록은 예수의 예언이 아니다. 구세주를 가장한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임을 명심하라. 구약 예언의 내용과 상당히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것은 요한과 예수의 이름을 팔아 거짓 진리를 전하는 여호와의 계략이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죽음을 맞이한 어린 양은 예수가 아닌 아벨을 의미한다. 야훼 여호와를 부활시켜 다시 지상을 장악하려는 얄다바오트의 계획이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요한계시록 참조)

 

마태복음 2장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야훼 여호와는 어린 구세주를 죽이는 일을 벌이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신약 성경을 읽다 보면 구약의 예언을 이루었다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사람들이 예수가 구약의 계승자로 생각하는 이유이다.

 

구약에 있는 많은 예언은 야훼 여호와가 구세주를 잡기 위해 길목을 지키는 사자와 같다. 더 잔인하고 비정한 것은 아비를 잡기 위해 아들을 그 길에 묶어두는 것이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라. 아담의 후손인 빛의 자녀들은 이스라엘 민족 육체에 가두어 두었다. 당연히 야훼 여호와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권한으로 그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구약의 예언을 보면 아이러니하게 두 가지 상징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구세주가 죽어서 모든 것이 끝나거나 아니면 성공해 세상을 뒤집어 놓는 일을 기록하고 있다. 어린 구세주가 죽는다는 말과 구세주가 해와 달과 별을 굴복시킨다는 두 가지 예언이 복합적으로 나오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천국 아버지가 모든 것을 근본으로 돌려 놓으려는 계획에 맞서는 얄다바오트의 의지가 예언에 투영되었기 때문이다. , 얄다바오트가 벌인 일에 대한 응당한 댓가를 받는다는 계시를 어둠이 얄다바오트인 나도 그냥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라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빛의 하강으로 해를 상징하는 엘로힘, 달을 상징하는 야훼, 별을 상징하는 사탄과 많은 권세자를 발 아래두고 굴복시킨다는 말에, 야훼 여호와는 나는 구세주가 자라기 전 어린아이일 때 모든 것을 처리할 것이다라는 말로 응수를 한다.

 

, 야훼는 너희가 구출하려는 양을 내 울타리에 가두어 둘 것이며 끊임없이 율법으로 죄의 족쇄를 채우고, 기다리는 자들이 구세주를 분별하지 못하게 거짓 진리로 그들의 눈과 귀를 어둡게 할거다.’라고 한다. ‘만약 그럼에도 빛의 하강이 있다면 내가 만든 길로 와야만 한다. 나는 모든 길을 막고 한 개의 길을 열어 너를 기다릴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 중에 다윗의 열통을 따라 베들레햄이라 지역에 처녀인 여자가 낳은 첫 번째 아들로 태어나라.’

 

야훼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 가정의 첫 번째 아들, 그 예수에게 구원을 받아야 하는 소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물은 질문이 이러하다.

고향이 어디고

너거 아버지 모하시노

어느 학교 나왔노

 

잘못된 종교적 인식관은 자신의 손으로 구세주를 죽이는 일로 벌어졌다. 예언에 관한 이야기는 요한계시록 편을 읽어보라.

 

요한복음 12장

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예수와 야훼 여호와의 싸움에서 당연히 예수가 이긴다. 야훼 여호와는 모든 권세를 잃고 지상에서 쫓겨난다.

심판을 받은 세상의 임금은 당연히 야훼 여호와다.

 

마태복음 12장

26. 만일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쟁하는 것이니 그리하고야 어떻게 그의 나라가 서겠느냐

27. 또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의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그들이 너희의 재판관이 되리라

28.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29.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 세간을 강탈하겠느냐 결박한 후에야 그 집을 강탈하리라

30.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가 행하는 일을 보고 귀신이나 사탄이라 말하지만, 예수가 이스라엘 집의 힘있는 모두를 이기고 왔다고 말했다. 여기서 잘못 이해하면 안되는 것이 이스라엘의 권세를 무너뜨렸다는 말이지 지상의 모든 신과 사탄을 물리쳤다는 말이 아니다. 당연히 야훼에게 굴복하지 않은 엘로힘과 다른 지역의 사탄들은 예수의 심판의 대상이 아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왔지, 구세주가 세상을 멸망시키러 온 것이 아니다.

 

지구의 멸망과 종말론에 심취한 종교인들에게 예언과 지구의 끝에 대해 다시 설명할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30.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예수가 신랑이 있는 동안은 금식을 하지 않고 울지도 않지만, 신랑을 잃어버리면 비극이 생긴다고 가르쳤다. 예수의 혼인잔치가 끝나고 다시 오는 이 세상의 임금은 누구인지 생각을 해보라. 바로 엘로힘 여호와이다. 야훼 여호와가 쫓겨나고 예수가 떠난 자리에 사도바울 세워 여호와 이름을 전 세계로 확장한 자가 엘로힘 여호와이다. 지금의 가톨릭의 아버지가 엘로힘 여호와고 다시는 부활한 야훼 여호와가 개신교를 부활시킨다.

 

가톨릭의 미사나 문화를 보면 이방신에게 하는 형식이 많이 묻어나는 이유와 그들이 여성성인 마리아를 섬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의 아버지가 엘로힘 하나님이다.

 

구교와 신교가 죽도록 싸운 이유를 이해하겠는가? ( 신들의 전쟁 참조)

결국의 집안의 왕자들이 왕권을 놓고 벌이는 종교전쟁이었다.

 

다시 두 아들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아벨은 가인이 죽인 것이 아니다.

얄다바오트는 아들이 구세주를 죽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호기롭게 말하는 아벨의 말에 기뻐했다. 그것을 얄다바오트가 몰랐을까?

그때로부터 엘로힘은 아버지를 떠나 지상에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가인은 인간의 과학과 문화와 예술과 경제를 지배하는 신이 된다. 그 모든 것을 지배하기 위해 잔인하고 독해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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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숨긴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뱀과 인간의 공존에서 치명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지상의 후발대로 출발한 야훼 여호와는 자신의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힘에 버거웠다. 인간은 신에게 굴복하는 동시에 머리를 쳐들어 반기를 표하기도 한다. 언제나 신과 인간의 줄다리기는 끊이질 않았다.

 

야훼 여호와는 형이 만든 지구에서 자신을 믿고 섬기는 사람이 필요했다. 그 주요 이유는 야훼 여호와가 육신을 통해 강림하는 구세주를 막을 육신의 백성들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여자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다고 말하는 것은 여자의 후손 중에 뱀을 잡는 구세주가 등장한다는 예언이다.

 

야훼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을 일으킨 이유는 그들을 구세주를 잡는 울타리로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아래 가인과 아벨에서 설명한다. 구세주를 죽일 도구로 육신의 민족이 필요했고, 무리를 떠난 아브라함에게 야훼 여호와 자신이 많은 축복을 준다는 조건으로 그가 개종하길 촉구하고 있다.

 

창세기 12장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형의 물건을 훔쳐 자신의 이름을 적은 꼴이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시조다. 그러나 아브라함 가족을 보호하기엔 그들의 쪽수와 힘이 부족했다. 언제 다른 부족의 침입을 받아 몰살될지 몰랐다. 그들을 보호해줄 튼튼한 울타리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애굽 바로왕이다. 아브라함 후손의 숫자가 많아져 민족을 이루기까지 강한 애굽의 품에서 오랜 시간 동안 생활을 한다.

 

야훼 여호와가 아브라함 후손이 민족단위로 성장하여 애굽 둥지를 떠나 자신이 명령한 거처로 옮길 것을 권했지만 그들은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등장하는 모세의 지팡이를 기억하는가?

 

출애굽기 4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민수기 21

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이스라엘 백성을 훈육하고 벌을 주는 도구로 사탄을 이용한다. 쉽게 말해 조직 폭력배를 끌어들여 자식을 훈계하는 아버지라 이해하면 된다. 광야에서 불뱀이 나타나는 이유가 그러하다. 야훼 여호와가 지상으로 쫓겨난 사탄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는 장면이다.

 

욥기서 1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

 

아브라함 이후의 여호와 하나님은 전부 야훼 여호와를 말하는 것이다.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 민족 행적을 기록한 것으로 야훼가 그들을 통치한다. 사탄이 야훼 여호와를 대면해 버르장머리 없이 말하는 이유가 그들이 사이 이미 거래가 있었다.

 

창세기에 아담과 여자, 뱀은 지상으로 쫓겨나 흙을 먹고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가 되었는데 갑자기 여호와를 대면하는 장면에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교인들이 문제다.

 

요한계시록 12

7.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8.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그들이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뱀이 야훼 여호와로 날개를 달고 용과 같은 권세를 갖게 된다. 모든 거래는 주고받는 것이 있다. 지상에 쫓겨난 사탄이 경계를 넘어 인간과 신의 경지를 넘나들었다.

 

야훼 여호와가 사탄과 손을 잡는 순간 뱀은 용이 되고 힘을 얻은 용을 자신을 심판하고 쫓아낸 얄다바오트 세계에 도전하는 것이 요한계시록에 나온다. 물론 성공하지는 못한다. (뱀이 용으로 강략한 힘을 얻는 결정적인 사건이 십자가이다.)

 

사탄은 우리 곁에 있으며, 사탄의 후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주 똑똑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귀신이나 엑소시즘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물질을 장악하고 제도와 권력을 가지고 지상에 군림하는 힘 있는 사람 중에 사탄의 후손이 있다.

 

사탄은 신권과 겨루는 왕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종교에 도전하는 무신론으로 나타난다. 사탄이 바라는 가장 큰 소망은 지상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회복될 때 사탄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뱀처럼 지혜롭기를 바란다는 예수의 말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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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기 전 알아야 하는 성경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얄다바오트의 세계에 존재하는 신의 똘마니가 혼의 인간 아름다움에 빠진다.

창세기의 뱀의 등장은 과히 신의 경계를 허물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 만큼 창조주의 모순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창세기 3장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가장 간교한 것이 뱀이라면 보다 덜 간교한 것이 있다는 말인가?

사악하고 간교한 범위에 있는 창조물이 얼마나 더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을 쳐다보면 선과 악의 경계를 따라 즐비하게 줄을 서는 모습이 상상된다.

 

신의 명령을 어기는 뱀.

뱀의 유혹에 넘어가는 신의 창조물.

신을 피해 도망치는 그들을 보면서 구약의 신이 예수의 아버지이고 천국의 주인이라 가르치는 교회에 웃음이 나온다.

 

창세기의 신들은 혼돈이고 어둠이고 무지하다.

예수가 배우라고 말한 아버지가 아니다.

 

뱀이 동물의 뱀이 아닌 사실은 알고 있다고 믿는다. 뱀은 얄다바오트의 천사다.

천사는 여자에게 무슨 비밀을 말했을까?

무엇이 선악을 아는 이야기가 되었을까?

 

지금의 모든 교회가 눈이 멀어있고 선악의 진실에 눈을 감았다.

선은 천국의 아버지 그리고 구세주를 의미하는 것이다. 악은 어둠의 창조주 얄다바오트 즉 그의 아들 여호와를 의미한다.

여호와는 예수의 아버지가 아니며 천국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빛은 구세주, 어둠은 여호와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온다.

 

뱀은 여자를 유혹하기 위해 성욕을 불어 넣고 자기 후손을 생산하길 원했다. 여자를 유혹하는 첫 번째 사건이 아버지와 멀어지게 하는 것이었다. 여자가 아버지의 그늘에 있으면 새끼 사슴을 사냥하는 사자는 불편하기 그지없다. 무리를 떠난 새끼 사슴은 사자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만약 자기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며 불의한 일을 저지르는 범죄자란 사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리고 친부모가 인격과 덕망을 겸비한 사회의 유명인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떤 선택하게 될지 고민이 필요 없다.

 

창세기 3장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이 구절은 신비롭고 아름답다. 교회는 뱀이 여자를 꼬시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고 말하지만 진실을 말한 것이다. 진리를 알게 되면 자유를 찾아 길을 떠나는 나그네가 되고 진실을 대면한 그는 눈물로 구세주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혼의 인간은 여호와 하나님처럼 영생하는 존재가 아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었다. 아름답고 귀엽고 총명한 아이는 창조주를 기쁘게 할 과시용 장난감에 불과했다. 어둠의 신들이 천국 자녀의 모양을 따라 창조물을 만든 이유를 생각해보라. 좋은 것을 생산해 자기 세계를 빛나게 하려는 의도라고 착각하지 마라. 자기 창조물보다 뛰어난 것을 보았을 때 자신들의 능력도 그의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다는 교만에서 시작된 것이다.

 

전리품으로 삼고자 얄다바오트의 천사와 신들이 여자를 간음해 혼의 인간을 생산한 이유다. 자신들이 천국의 아버지만큼 뛰어나다고 착각한 오만에서 시작된 일이다. 결국 아담은 깨어나지 않았고 빛의 권능을 불어 넣었을 때 아담은 움직였다.

 

뱀은 여자에게 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영생을 선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아담과 여자는 진실을 대면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피해 숨게 된다. 천국에서 내려온 조력자는 지식의 샘을 열어 깊은 사색으로 아담의 눈을 열게 한다.

 

깊이 조용히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소리를 지르며 기도하거나 눈물로 찬양을 하는 것은 혼의 몸에 도움이 안된다. 만약 이것이 혼을 깨우는 도구라면 교회마다 예수를 닮은 사람으로 넘쳐나야 한다.

 

창세기 3장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유일신의 사상은 거짓 진리이다.

 

처음부터 아담과 여자를 영생하는 존재로 만들었다면 호적을 파거나 그 둘의 영적 힘을 찾아와야 한다. 아담과 여자가 영생하는 길을 찾을까 봐 두려워한다는 사실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란 뜻이고 또한 영생하는 방법도 있다는 말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혼의 인간들이 영생의 길로 들어서지 못하도록 길을 막고 불과 칼로 길을 지키고 있다.

 

요한복음 1장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혼의 몸이 영원히 사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영생을 주는 144,000에 들어가서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육신의 예수는 없다. 그가 남긴 영생에 이르는 가르침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에게 영생하는 새로운 길을 가르치고 마르지 않는 샘물을 준 사람이 예수이다.

내가 살리고자 하는 것은 영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 갈 사람이 없다

 

천국의 아버지에게 가는 방법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닌 예수가 가르쳐준 대로 사는 것이다.

 

뱀은 혼의 인간 감옥인 지상으로 쫓겨났고 지상에서 인간과 뱀의 공존이 이루어진 시기가 인류의 시작과 같이한다.

뱀은 영적인 존재다. 그들은 영생하는 창조물이란 사실을 기억하라. 여자를 통해 복사한 혼의 몸은 각자의 때에 따라 심판을 받고 흩어져 버린다. 물론 혼의 심판은 오랜 시간을 거쳐야 한다. 윤회를 다음에 설명해주겠다.

 

창세기 3장

14.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교회는 이 구절을 보이는 대로 가르치고 과학자들은 비웃는다. 성경은 과학책도 문학책도 아니다. 여호와가 자신을 목적을 실현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우리가 아는 뱀은 늘 기어 다녔다. 도마뱀과 같이 다리가 있는 것도 있지만 여기서 다리가 있냐 없냐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죄를 지은 천사는 사탄이라 불리고 그들을 뱀으로 비유했다. 그들은 가장 낮은 계급으로 강등되고 머리를 들지 못한다는 말이다. 사극에 계급이 낮거나 죄인들이 머리를 들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된다.

 

가장 낮은 계급에서 오직 먹는 것은 흙이란 사실은 사탄의 영광은 보이는 세계에서 얻는다는 말이며 다시 풀어서 설명하면 사탄이 육신을 주관하고 인간이 은밀하고 뜨거운 불에 사로잡혀 죽음을 준비하지 못 한 채 오직 사탄의 전유물인 돈과 욕망을 숭배하는 것이다.

 

예수가 뱀처럼 지혜롭기를 바란다는 말을 기억하라.

 

뱀을 사악한 괴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사탄은 인간의 악한 욕구를 충족하는 길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자, 다른 인간을 지배하려는 사람이 여기에 속한다. 자신의 영적인 지위가 낮기 때문에 육신의 세계에서 돈과 권력으로 사람들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모든 노력이 사탄으로 나온 것이다.

 

예수는 섬기는 자가 구원을 받는다고 말했다.

 

인간의 죽음 앞에 돈도 권력도 아름다웠든 육체도 계급도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한다.

인간의 영광은 연기처럼 흩어져 버리고 사막의 신기루 같은 허상이다.

 

뱀은 흙에서 난 짐승의 육체를 따라 만들어진 보이는 물질의 세계에서 얻는 영광이 전부라는 말이다. 이런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려는 구세주를 죽인다.

 

야훼 여호와가 쫓겨난 자리에서 예수를 죽이는 자는 사탄의 아들 인간 이스라엘이다.

 

다음은 뱀과 손을 잡은 여호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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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기 전 알아야 하는 성경 이야기.

 

1편 부터 보시라.

 

신의 기원에서 알게 되겠지만 시작은 천국 아버지 나라의 완성이다. 그다음 그의 아들의 세계가 만들어지는 과정의 오류로 얄다바오트가 생산된다. 얄다바오트가 자신의 거처를 떠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한다.

 

얄다바오트의 세계에 하강한 빛의 모습을 따라 혼의 인간 아담을 만들었다. 그리고 아담과 여자가 범죄한 사실을 알고 그들을 쓰레기장 같은 곳으로 쫓아버린다.

아담과 여자가 있는 세계를 다스리는 존재로 엘호힘 여호와를 보낸다. 그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영적 육적 세계를 완성한다.

 

어둠 속에서도 아담과 여자는 빛나고 아름다웠다. 얄다바오트는 아담과 여자가 진리를 찾지 못하도록 망각의 물을 마시게 하고 그들을 육신 옷인 짐승의 육체에 혼의 인간을 가둔다.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저주다.”

 

육신의 아담과 여자 이야기를 해보자.

 

창세기 3장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엘호힘 여호와가 만든 짐승의 몸을 혼의 인간 감옥으로 사용한다. 이것이 인류의 시작이다. 혼의 몸은 짐승의 몸에 갇혀 자신의 기원을 잊어버린 채 먹고 마시고 땅에 충만하라는 여호와의 저주와 같은 축복에 따라 물질을 가장 우선에 두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혼의 몸이 들어간 짐승의 육체는 처음에는 같은 종족이 같은 지역에 모여 살게 된다. 각자 독특한 문화와 그들만의 신을 섬기며 짐승의 몸은 혼의 모습을 따라 진화한다.

사람은 속사람인 혼의 인간으로 닮아가고 동물은 생존을 위한 진화를 한다.

지금 모습이 동물과 다른 이유가 혼의 인간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적인 능력과 사고는 탁월하게 진화한다.

 

천국의 존재는 아름답고 뛰어나다. 여기서 뛰어나다는 것은 지식이나 머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소통의 능력이 탁월하고 극적으로 선하고 외모도 아름답다는 뜻이다.

 

홍수심판이 지구 전체를 심판하는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홍수심판은 물로 세상을 덮은 사건이 아니다. 지역마다 홍수로 세상을 덮었다는 설화 하나쯤은 있지만 혼의 인간을 물로 죽이는 것은 아니다.

 

아담과 여자의 후손들이 모여 있는 곳에 얄다바오트의 천사들이 스스로 육체의 감옥을 자청하여 하강을 시도한 사건이 홍수심판의 원인이다.

사람 여자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천사들이 자신의 후손을 여자로 생산하고자 감옥이라도 좋으니 자신들은 지구로 내려가겠다고 도망쳐 온 사건이다. 그들이 육체가 되었다고 기록한다.

 

교회에서 인간의 역사가 기원전 약 4000년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지다. 창세기의 하루하루가 우리 시간 24시간이 아니다. 사람도 동물의 육체에서 오랜 시간 진화를 거쳐 지금의 인류가 되었다.

 

영원한 세상에 시간은 없다. 성장도 없다. 다만 충만이 있을뿐이다.

구세주의 강림이 이스라엘시간으로 몇 천년이고 구세주의 재림 약 2000년이라 예언한 것은 혼의 생이 수레바퀴처럼 한번 돌아가는 기간이다.

천년은 혼의 생의 수레바퀴이지 육신의 시간으로 해석하지 마라.

 

아담과 여자가 심판을 받고 기억을 상실한 체 짐승의 육체를 입고 살아가는 것이 인류의 시작이다.

 

다음은 뱀에 관한 더 깊은 이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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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사이비를 피하는 방법.

1편 부터 보시라.

 

아담과 여자가 처음 만들어진 혼의 인간이며 아담의 생명 빛이 분산된 아담의 후손들이 있다.

혼의 인간 종족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첫 번째 아담과 여자의 후손이 있다.

 

혼의 세계는 육신의 생산처럼 육체적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복사한다는 말로 표현한다. 성장을 통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지식으로 채워진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빈 항아리를 물로 채우고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형태라면 이해될지 모르겠다.

 

두 번째 혼의 인간 여자를 간음한 신의 후손이 있다.

 

아름다운 여자를 가장 먼저 간음한 존재를 알아야 한다. 천사들이 여자를 꼬이는 장면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이미 신들이 여자를 간음하고 혼의 인간을 생산하는 모습을 본 것이다. 처음으로 여자로 자기 복제를 시작한 존재가 우두머리 통치자 얄다바오트다.

 

얄댜바오트의 세계는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없다. 많은 남성성의 동물들이 인간 여자의 아름다움에 빠져 자신들의 후손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정답이다.

신들이 간음하고 생산된 존재들은 일반적인 혼의 인간과 달랐다. 왕의 아들 왕자란 말이다.

 

세 번째 혼의 인간을 천사가 강간하여 생산한 혼의 인간이다.

 

창세기 6장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얄다바오트의 천사들이 사람의 여자를 닥치는 대로 간음하기 위해 스스로가 육신의 옷을 입었다는 구절이다.

이 부분은 홍수심판때 다시 설명한다.

 

창세기 3장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여자가 혼의 인간 근원이며 뿌리다. 각각 아버지가 다를 뿐 모든 혼의 인간 엄마는 하와이다.

이렇게 다양한 혼의 인간이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인류이다.

 

혼의 종족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야훼 여호와는 육신의 혈통을 중시 여겼지만, 예수는 구원이 육신의 혈통을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지금의 혼의 인간이 각각 아버지의 본연의 모습은 사라지고 복잡해진 이유는 육신이 죽으면 혼의 인간은 다시 윤회를 거쳐 지역과 시대를 건너뛰는 복사에 복사를 거듭했다.

 

혼의 인간이 무한정 윤회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기한과 때가 있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고 각자가 빛과 어둠의 경계 어디쯤 존재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인간은 육신의 몸과 혼의 몸으로 존재하고 혼의 몸이 영의 몸으로 회복된 사람은 저절로 천국의 아버지 나라에 간다. 헌금이나 기도나 구제를 통해 혼이 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교회를 다녀도 악한 사람이 많은 이유이다. 혼의 몸이 영의 인간으로 변화를 입으면 가장 먼저 평안을 얻게 된다.

 

구세주를 만나면 듣게 되는 두 가지 질문이다.

“ 평안하냐 ”

“ 충만하냐 ”

 

혼의 몸은 오직 예수의 가르침으로 변화를 입는다. 구약성경 가르침과 사울의 서신으로는 절대 영생이 얻어지지 않는다. (요한복음 참조)

 

네 번째가 얄다바오트가 강간하여 생산한 두 아들.

 

아브라함 이전의 이야기는 시간의 순서에 따라 기록된 것도 아니고 과학적인 근거를 통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야훼 여호와가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자신의 이야기처럼 조작한 것이다.

 

중인이 족보를 사고 양반이 되듯이 서자가 적통자로 역사를 왜곡하듯 야훼는 형과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신의 의도에 맞게 편집했다. 그런 이유로 다른 지역에 창세기의 신화와 같은 기록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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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기 전 알아야 하는 성경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뱀은 얄다바오트가 창조한 천사로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일을 한다. 얄다바오트의 세계는 여러 신들과 천사로 이루어져 있다. 12세계를 다스리는 신과 각각의 세계가 존재하도록 일하는 천사들이 있다.

 

얄다바오트와 신들은 자신의 세계를 다스리고 다양한 창조물을 생산한다. 그들이 얄다바오트에게 복종하는 이유는 빛의 권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동물의 모습이 이런 신들의 외모에 기반하고 있다. 여러 신화에 등장하는 신의 모습이 동물처럼 그려진 이유이다.

 

어둠의 신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창조하지만 천사들은 자신을 닮은 존재를 생산하거나 창조하지 못한다. 뱀이 여자에게 나타난 이유이다. 홍수심판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의 아름다움에 빠졌다는 말처럼 아담과 여자는 빛나고 아름다웠다.

 

유다서 1장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예수가 가르친 복음 외에 인용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 굳이 이해를 돕자면 위와 같다.

 

천사들도 자신의 고유한 영력과 창조물을 가지길 원했지만 그들의 능력으로 불가능하여 자신의 후손을 생산하는 도구로 여자를 선택했다. 아담과 여자가 신과 거리가 멀어지는 그 순간 뱀이 등장한다.

 

뱀이 신의 명령을 어기고 여자에게 나타난 사건에서 얄다바오트의 모순이 보인다.

완전하지 못한 창조물, 사악하고 유혹하는 혀, 거짓으로 인간을 꼬이는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 왔겠는가?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다. 이것이 천사들의 반란이고 그들을 사탄이라 부르며 지상에 혼의 인간과 같이 살아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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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기 전 알아야 하는 성경 이야기.

 

 

1편부터 보시라.

 

창세기의 엘호힘과 야훼의 아버지 얄다바오트가 창조한 혼의 인간에 대해서 알아보자.

 

인간의 창조는 교회에서 배운 것과 다르다. 교회에서는 흙에서 만들어져 신이 생기를 불어 만들었다고 가르친다.

아브라함 이전에 등장하는 인간을 육신의 인간으로 가르치면 안 된다. 그들은 혼의 인간이고 영적인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뱀이 여자를 꼬이는 것, 신이 아담과 대면하는 것, 낙원에서 쫓아내 모든 세상을 물로 심판하는 사건은 육신의 일이 아니다.

 

얄다바오트가 자신의 기원을 무시하고 빛을 떠나 자신을 위한 세계를 만들었다. 물론 천국 아버지의 빛이 도달하지 않는 곳이 있다는 말이 아니다. 빛을 등지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쁜 짓을 했다는 말로 설명하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예수가 죽던 날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을 기억하는가? 얄다바오트가 창조물을 속이기 위해 덮은 비진리의 장막이 벗겨졌다는 말이다. (예수편에 다시 설명함)

 

얄다바오트는 그리스도 세계의 오류다. 신의 기원에서 설명하였지만, 천국 아버지가 오류가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얄다바오트가 창조된 곳은 아들의 세계로 그의 세계가 완성되는 과정에 생긴 오류다.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 구세주가 등장한다.

 

얄다바오트가 훔친 천국의 권능을 찾기 위해 빛이 어둠의 세계에 하강하는데 그것이 첫 번째 구세주의 등장이다. 빛이 어둠에 나타났을 때 그 세계가 존속하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고 위태로웠다. 빛은 빠르게 그곳을 떠났고 다시 그곳은 고요해졌다.

 

하강한 빛으로 지진이 났다는 말이 아니다. 천국 인간의 모습을 본 어둠들이 그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두려워하며 자신들이 섬기는 우두머리 통치자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는 말이다. 얄다바오트가 말한 자신의 완전함과 유일신에 대한 오류가 어둠에 펴졌다.

 

교회는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어졌다고 말하는데 그 말을 잘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혼의 인간 창조는 어둠의 통치자들이 자신의 창조물에게 자신들도 빛과 같은 존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 시작한 일이다.

 

전시용품.

 

어둠의 신들이 모여 빛의 아들을 모방하여 새로운 창조물을 만들고 자신의 섬기는 자로 발아래 두기 위해 혼의 인간을 만든다. 그가 태초의 혼의 인간 아담이다.

 

그러나 문제가 발생한다. 어둠의 신이 빛의 아들 모양을 보았을 뿐이지 그가 어떤 존재인지 알 리가 없다. 아담은 겉모양은 천국 자녀의 모습이다. 하지만 내면은 자신들이 가진 특성인 질투, 고뇌, 불화, 냉혹, 애통, 쾌락, 욕망, 분노, 비통, 공포와 두려움, 아첨, 수치, 그리고 수많은 악으로 채워졌다.

 

오랜 시간 동안 아담은 깨어나지 않았다.

 

창세기 2장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얄다바오트는 자신이 훔친 빛의 권능을 아담에게 불어 넣었다. 그리고 아담이 움직였고 어둠의 신들이 아담의 아름다움에 기뻐했다.

그가 태초의 혼의 인간 아담이다.

 

교회는 영혼이 하나님의 아버지로부터 지어졌고 영혼은 선한데 육신이 욕망을 이기지 못해 죄를 짓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이다. 본능대로 살아가고 육신을 조정하여 욕망의 불에 자신을 던지도록 하는 것이 혼이다.

 

아담은 영의 능력을 품은 혼의 인간이다. 쉽게 말해 천국 자녀의 모습은 닮았지만 속은 어둠의 사악한 것으로 가득 차 있고 겨자씨 같은 생명의 빛을 품은 존재란 뜻이다.

어둠의 신들이 하강한 빛의 외모만 흉내 내 만들고 내면까지 천국의 자녀로 만들 수 없었기에 그들이 가진 사악한 욕망을 채웠다.

 

아담은 얄다바오트가 불어넣은 천국의 빛이 들어간 태초의 인간으로 거짓에서 깨어나 인간을 구원할 열쇠가 된다. 아담 속에 있는 빛이 혼의 몸을 덮는 순간 영으로 거듭나 영생하는 천국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태초의 아담이 갈등하는 당신의 모습과 같다. 가장 낮은 바닥에 감춰진 빛이 혼의 몸을 채워 욕망의 불에서 벗어나길 원한다면 이 글을 끝까지 따라오길 바란다.

 

내면의 사악함과 끊임없이 싸우는 인간이 존재하며 끝없이 악을 저지르는 인간, 선을 위해 자신의 많은 것을 포기하는 인간 등 다양한 모습이 세상을 살아간다.

 

아담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아담은 빛나고 아름답고 선했다. 아담의 안에 있는 빛이 생명의 근원과 진리를 찾도록 성령이 천사를 보낸다. 그러나 아담은 깨어나지 못하고 다시 잠이 든다.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어둠이 아담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의 눈을 어둡게 하려는 의도로 여자를 만든다. 나쁜 부모가 아버지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자녀에게 게임과 돈을 왕창주어 다른 생각을 못하게 한다면 이해가 될지 모르겠다.

 

여기서 알아야 하는 것은 얄다바오트 세계는 여성성이 없다. 남성성을 가진 얄다바오트가 자신의 배우자 없이 창조를 시작했기 때문에 창조물이 불완전하며 아름답지 않다. 그들이 만든 여자는 아담을 돕기 위해 천국에서 하강한 천사의 외모를 따라 만든다.

 

어둠은 천사가 아담에게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아담이 그녀를 좋아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녀의 형상을 옆에 두어 아담이 다른 곳에 한눈팔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여자를 짓는다.

 

성령이 보낸 권능자도 천사라 부르지만 얄다바오트의 세계에 신의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들도 천사라 부른다.

 

얄다바오트의 계획은 여자를 만들어 아담이 여자에게 빠져서 자신의 기원이나 빛의 하나님을 찾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무지한 신의 실수였다.

 

창세기 2장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25.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는 말처럼 아담은 여자와 하나되어 아버지 얄다바오트와 멀어진다.

 

아직은 혼의 인간 아담이다. 육체의 아담 이야기는 한참 뒤에 있다.

 

다음은 뱀의 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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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과 사이비에 빠지기 전 알아야 하는 성경 이야기. 신을 믿든지 안 믿든지 상식으로 읽어도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몇 분을 투자해 예수를 만나면 기분이 째질 것이다.

 

1편 창세기에 등장하는 세 명의 신.

 

구약 성경은 이야기가 길고 방대하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 이유로 성경 해석을 목사나 가르치는 사람에게 의존한다.

새해가 되면 성경을 읽고자 결심하는 교인이 많지만, 계획대로 안되는 경우가 많다.

 

내세를 믿고 영혼의 구원을 바라는 사람들이 길을 안내하는 지침서라 믿는 구약 성경에서 오히려 길을 잃기에 십상이다. 그런 이유로 성경 해석이 다양해지고 여러 종교단체가 난립한다. 구원이란 족쇄를 씌우고 성적 착취와 물질적인 헌금을 강요한다.

 

구원이 그들의 성경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님에도 자신이 믿는 교리를 진리라 주장한다.

다양한 해석과 믿음 속에서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내가 믿고 알고 있는 것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고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고민의 끝에 사후의 세계를 발견하거나 온전한 진리를 깨달은 사람은 구세주를 만날 것이다. 그는 생명의 구원자 예수이다.

 

영생의 길을 찾을 때까지 두드리고 구하는 일을 쉬지 말아라. 육신의 시간은 흐르고 모두가 죽으며 영혼은 그 행위대로 판결받는다.

죽는 날까지 진리를 찾기 위한 일을 멈추지 말아라.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이 거짓일 때도 많다.

 

예수도 다수의 사람 중에 유일한 하나였다.

 

성경을 읽거나 예수를 알기 바라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지식의 산을 등반하는 일을 돕고자 한다.

이단과 사이비로 자신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아라. 이 글을 꼭 읽기를 바란다.

 

신의 등장

 

창세기로 시작한 성경은 요한계시록이란 모호한 글을 담고 끝이 난다. 가장 중요한 성경은 예수가 남긴 가르침이고 나머지는 예수를 이해하는 첨부 자료에 불과하다.

 

구약의 내용 중에 창세기만 이해해도 천국의 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된다.

 

창세기에서 알아야 하는 중요한 내용은 신이 어떤 의도로 세상을 창조했으며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와 인간이 영생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찾기는 쉽지 않다. 세상을 창조한 내용은 몇 장에 불과하고 인간의 존재 의미도 간략히 언급된다. 창세기를 채우는 이야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행적이다.

 

창세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이스라엘 4명의 조상의 행적은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적혀있는데 어찌 홍수 심판과 아담과 여자의 탄생, 그리고 천지창조의 긴 여정은 짧게 언급한 것일까?’

너무 짧아 해석에 혼돈을 줄 만큼이다.

 

이 모든 이야기를 풀어보자.

 

창세기 1장.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창세기에 등장하는 핵심적인 신은 3명이다. 당연히 유일신 사상은 거짓이며 교회의 오류이다. 성경도 신을복수로 말하고 있으며 창세기에 등장하는 신 이외에 다양한 신들이 존재한다. (다른 신의 이야기는 다음에)

 

이스라엘 유목민의 역사인 창세기와 비슷한 이야기가 다른 지역에도 있는 이유이다. 성경학자들이 창세기의 이야기는 여러 신화를 짜깁기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신이 존재한다면 구약성경을 지금까지 전한 의도가 있을 것이다.

당연히 신은 존재하고 지금부터 그 신의 의도를 알아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계뿐만 아니라 여러 신이 다스리는 영적인 세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혼의 인간 아담과 여자를 창조한 얄다바오트가 있다.

 

얄다바오트는 우두머리 통치자로 천국에서 빛을 훔쳐 천국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든다.

예수가 가르친 천국은 얄다바오트의 세계를 넘어선 곳이며 완전한 빛과 선의 세계이다. (신의 기원편을 참조)

 

얄다바오트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창조한 창조주이다. 빛이 어둠과 혼돈되어 희미해진 존재가 되었다.

그는 어둠이며 사악함의 근원이고 자신의 기원을 무시한 오만한 신이다. 영들은 그를 사악한 눈먼자라 부른다.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엘로힘 여호와와 야훼 여호와의 아버지이다

 

얄다바오트는 정의와 불의의 혼합이다. 자신의 기원을 무시한 이유로 자신 속에 있는 권능은 빛을 잃고 어둠에 빠진다. 그가 어둠이란 사실은 창조물 뱀을 통해 알 수 있다. 뱀의 아버지이며 사탄 본성의 근원이다. 악의 원뿌리가 세상을 창조한 얄다바오트이다.

 

그가 만약 완전한 선이고 절대적인 빛이라면 창조물에서 사악함이 나올 수 없다. 뱀은 사악함을 지닌 얄다바오트 세계의 천사로 신의 명령을 거역한 영적인 존재이다.

 

얄다바오트가 악의 뿌리라 불리는 이유는 뱀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뱀이 신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었던 것은 얄다바오트가 천국을 떠나 존재할 수 있다는 오만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가 눈먼자로 불리는 이유는 자신의 기원을 무시하고 스스로 유일한 신이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성경에 여호와가 자신 외에는 신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그의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교만이며 무지이다.

 

요한복음 1장에 세상은 어둠이고 그리스도가 빛이라 증언한 것을 기억하라.

 

사람의 본성에 선과 악이 공존하고 늘 빛은 어둠을 피해 낮은 곳에 존재한다. 세상에 악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이유이다. 빛은 어둠의 권세보다 힘이 약하다. 그러나 예수가 살아있는 동안 강하게 빛난다.

 

창세기 1장에 말하는 태초는 인간세계의 태초를 말하는 것으로 신의 기원은 따로 배우길 바란다.

얄다바오트는 자신의 장자 엘로힘을 보이는 물질세계 가장 낮은 곳, 즉 인간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 보낸다. (보이는 세계가 있으면 인간이 보지 못하는 세계가 있고 낮은 곳이 있으면 높은 세계가 있다)

 

엘로힘 하나님과 야훼 하나님은 각각 다른 존재이고 한 아버지에게서 나온다.

 

보이는 물질세계의 가장 낮은 곳(우리가 보고 살아가는 곳, 앞으로 지상이라 표기한다)으로 불리는 지상에 엘로힘 여호와을 보낸 이유가 지상은 인간의 감옥으로 그들을 다스리게기 위함이다. 아담과 여자가 신을 피하고 신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아 그들을 멀리 쫓아버린 곳이 인간이 살아가는 지상이다.

 

태초로 창조된 아담과 여자는 육신이 아니다. 혼의 인간이고 어떤 과정을 통해 신과 같이 영생에 이르는 존재가 된다. 혼의 인간과 영의 인간은 다르다.

 

인간은 육체와 지적인 사고를 하는 아름다운 혼의 몸을 가지고 있다. 혼의 인간은 깊은 생각과 통찰로 진리를 깨우친다.

 

요한복음 3장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예수가 영으로 거듭나라고 가르친 말은 혼의 몸이 영생하는 몸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알에서 새끼가 태어나고 나무에서 열매를 따는 일과 같이 혼의 몸이 영의 몸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바람에 흩어지는 가라지가 아닌 아버지 곡간에 드려지는 알곡이 된다.

 

구약성경은 혼의 이야기와 육신의 이스라엘 이야기로 이루어 졌으면 영과 천국은 예수가 가르쳤다.

교회가 영혼으로 잘못 가르쳐 사람들이 육신과 영혼이 존재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영생하지 못하는 혼의 몸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기원 편을 참조)

 

창세기 1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엘로힘 여호와가 지상에 부임했을 때의 상황을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라 표현했다. 엘로힘 여호와는 물 위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말한다.

 

지상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공간으로 존재하며 이곳은 얄다바오트가 자신의 세계를 만드는 과정 중에 발생한 불량품을 버리는 쓰레기장이다. 엉망진창이며 빛과 희망이 없고 아주 깊은 어둠만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이곳을 엘로힘 여호와가 새롭게 정비하고 많은 생명을 생산하는 과정의 이야기가 1장에 가득 채워진다. 엘호힘 여호와는 물과 흙을 다스리는 신으로 물에서 생명을 일으킨다. 나는 그가 세상을 창조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유는 이미 재료가 충분히 있는 곳에서 능력을 발휘한 위대한 생산자이다.

 

지상에 많은 동물의 모습은 얄다바오트의 신과 창조물의 형상에서 비롯되었다. 눈에 보기에 아름답지 않은 생물이 있는 것은 이곳이 쓰레기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만약 완전한 천국의 아버지가 지상을 창조했다면 더럽고 보기 싫은 벌레나 쥐, 뱀등 흉한 것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엘로힘 여호와는 보이지 않는 세계와 눈에 보이는 세계를 새롭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세상을 기뻐한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엘로힘 하나님의 생산물이다.

 

신명기 4장.

17.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18.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후발대로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신 야훼 여호와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땅과 바다와 하늘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였다. 자세히 보라 질투하는 하나님으로 보이지 않는가? 형이 만든 세상을 질투하고 미워하는 동생의 모습이다.

야훼 여호와가 형이 가진 막강한 지배력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모습이다. 이는 장자의 자리를 탐내는 차자의 모습으로 이스라엘 역사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럼 형이 만든 부족함이 없는 세상에 야훼 여호와는 왜 보내졌을까? 야훼 여호와의 등장이 신들 전쟁의 서막이며 우리가 지금까지 이해하지 못하는 종교전쟁의 이유다. 이스라엘의 끊임없는 전쟁과 예수가 죽고 일어난 종교전쟁의 내막이 형제의 난이다. (신의 전쟁 펀 참조)

 

얄다바오트의 둘째 아들 야훼 여호와가 지상에 보내진 이유는 구세주의 강림과 관계가 있다.

태양신이라 불리며 지상을 지배하는 다양한 신들의 기원인 엘로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야훼 하나님은 다르다.

 

야훼 여호와는 종교 즉 인간과 연관된 것을 지배하는 신으로 후발대로 지상에 강림한다. 구약성경에 아브라함 이후의 내용이 다양하고 섬세한 이유가 야훼 여호와가 아브라함을 통해 종교의 역사를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 기록의 주체가 야훼 여호와다.

아브라함 이전에 등장하는 신은 야훼 여호와가 아니다. 듣고 본 내용을 자신을 섬기는 백성에게 자신의 이야기처럼 늘어놓고 있다. 그런 이유로 긴 여정의 시간이 체계적이지 않다. 복잡하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역사 속에 족보와 명분이 없는 왕이 나타나면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을 영웅으로 기록하여 사람들을 혼돈에 빠뜨리는 것과 같다.

야훼 여호와는 거짓 진리로 인간을 속이기 위해 아버지와 형 그리고 자신을 하나의 이름 여호와 하나님이라 불렀다.

 

야훼 여호와가 자신이 유일한 하나님이라 가르치는 것은 유일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이고 질투하는 하나님이라 말하는 순간 질투의 대상인 다른 신이 있음을 실토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믿는 여호와가 유일한 하나님이라면 이스라엘 민족이 세상을 장악하지 못했을 이유가 없다. 왜 많은 전쟁에서 패배를 맛보았는지 설명이 필요하고 신과 인간의 갈등이 오랜 시간 지속된 이유를 말해야 한다.

 

유목민 이스라엘 하나님은 여러 신들 중 하나이며 절대적이지도 못하고 선하지도 않다.

뱀의 현란한 혀로 꼬이지만, 진리의 사람은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다음 편은 아담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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