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듣지 못하는 깊은 창세기 내용은 다음카페 요기에.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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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죄사함이 아니다. 1 대속물은 없다

 

* 유대교가 죄를 없애는 방법

 

야훼를 섬기는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죄를 신의 뜻을 어긴 행위로 규정하며, 죄의 고백과 용서, 속죄 의식이 체계적으로 발전해 왔다. 물론 기독교도 이에 포함되지만, 여기서는 구약 성경을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유대교에서는 개인이 죄를 지었을 때, 사람을 대신하여 동물의 피를 바치는 방식으로 죄사함을 받는다.

대표적인 제사의 예는 다음과 같다.

 

1. 속죄제 – 부지중에(실수로) 하나님이 금하신 계명을 어겼거나, 개인 또는 공동체가 죄를 깨달았을 때 드리는 제사. 죄인은 흠 없는 소, 양, 염소 또는 비둘기 등을 성소로 가져와 제물로 삼는다. 제물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린다.

 

2. 속건제 – 하나님께 바쳐진 성물에 대해 부지중에 범죄하였거나, 이웃에게 피해를 주었을 때 드리는 제사. 주로 흠 없는 숫양을 제물로 바치며,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린다. 이웃에게는 피해에 대한 배상과 함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갚는다.

 

3. 속죄일 제사 – 1년에 한 번, 이스라엘 온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드리는 특별한 제사. 대제사장이 자기 자신과 백성을 위해 수송아지와 숫염소를 속죄제물로 바친다. 지성소에 들어가 피를 뿌려 성소와 백성을 정결하게 한다.

 

죄인이 제물을 성소로 가져오면, 제물의 머리에 안수하여 죄를 전가시키고, 직접 제물을 잡아 피를 흘린다. 제사장은 그 피를 제단에 뿌리거나 제물의 일부를 불에 태운다.

 

동물의 희생을 통해 죄를 씻거나 신의 진노를 달래려는 제사는 고대 세계 여러 종교와 민족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유대교처럼 죄를 동물에게 전가하여 대신 죽게 함으로 죄를 용서받는다는 대속 개념이 명확하고, 제사 규정이 체계적으로 기록되고 발전된 종교는 유대교가 유일하다.

 

히브리서 9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21.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언약 체결과 성소 정결에서 피의 사용은 필수적 요소로 강조된다. 특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는 단언은, 율법 체계 안에서 죄 사함이 반드시 피의 수반을 필요로 했음을 명확히 규정한다. 이 구절은 죄의 정결뿐 아니라 언약적 질서의 유지를 위해서도 피가 핵심 매개로 작용했음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구약 종교 체계 전반에 걸쳐 피가 지닌 정결의 효력과 근본적 원리를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글쓴이가 보기엔 야훼는 이상한 신이다.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는 단 한 번 자기 몸을 제물로 드려 죄를 제거하기 위해 '세상 끝'에 나타났다. 대제사장은 해마다 제사를 반복하지만, 예수는 단번에 자기 자신을 드려 인류의 죄를 영원히 없앤 것이다. 결국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반복이 필요 없는 완전하고 최종적인 희생이라는 뜻이라고 전한다. 히브리서 저자도 이 정도면 아는 게 없네.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예수를 대속제물로 묘사하는 구절은 사울과 그 계열의 복음서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예수는 스스로 죄를 대신지는 대속제물이 아니다. 이러한 식의 기록은 결국 예수는 잘 죽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만든다. .

 

예수의 십자가가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한 대속물이라고 착각하게 된 이유는, 예수가 살아 있을 때 죄사함을 받으라고 직접 말했기 때문이며, 유대 종교가 오랫동안 죄의 구속에 침몰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누구에게 죄 사함을 선언했는지 살펴보자.

대표적인 장면은, 예수가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하자 중풍병자가 일어난 사건이다.

또 누가복음 7장에는 향유를 부은 여인이 죄인으로 묘사되며, 예수가 그녀의 죄를 사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실제 죄인이 아니며 누가복음 저자가 그녀를 의도적으로 비하하며 서술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 기록은 제외해야 한다.

이제 남은 이야기인 간음한 여인의 사례를 살펴보자.

 

요한복음 8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는 간음한 여인을 정죄하지 않는다. 그녀를 비난하거나 처벌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따라서 예수가 그녀의 죄를 사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녀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말하지만, 결국 여인은 돌아가 같은 행위를 했다고 주께 들었다.

 

교회는 예수의 십자가가 인간의 죄를 위한 대속물이며, 그가 흘린 피가 제단에 뿌려진 동물의 피를 대신한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 죄란 없다.

 

천국의 아버지가 바라보는 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천국은 살인, 도둑질, 성폭행, 모함, 폭력과 같은 행위적 범죄가 없는 곳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이것이 죄이니 너는 지옥에 간다고 판단할 기준 자체가 없다.

예를 들어 길을 다니는 수컷 고양이가 글쓴이의 손에서 밥을 받아먹는 암컷 고양이 세 마리와 교미해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그 수컷 고양이를 죄 고양이로 몰아 죽이진 않는다. 그저 이놈을 잡아 중성화 수술을 시켜야 하나 고민할 뿐이다.

 

천국의 아버지가 죄의 기준을 통해 인간을 평가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 죄의 기원.

 

그렇다면, 죄는 어디서 시작되었을까.

 

로마서 5

13.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지상을 창조한 엘로힘과 종교의 하나님 야훼가 기준을 정하기 전에는 죄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창세기에 따르면 홍수가 끝난 뒤 가장 먼저 선포된 법은 피를 흘리면 그 피를 돌려받는다는 것이었다.

엘로힘은 인간에게 육식을 허용하며 살인하는 존재가 되도록 유도했다. 살인한 자는 흘린 피에 대한 값을 반드시 치르게 된다고 말했다.

 

야훼는 십계명으로 시작되는 율법을 선포하며 이러한 기준에 맞지 않는 행동을 죄라고 불렀다.

구약성경에서 라는 단어는 아담과 여자의 배신 장면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가인에게 여호와가 처음으로 이 단어를 사용한다. 히브리어 원어 חַטָּאת(ḥaṭṭā’t, 하타트)와 그 동사형 חָטָא(ḥāṭā’, 하타)빗나가다”, “과녁을 놓치다”, “실수하다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고 perplexity.ai는 전한다. , 얄다바오트에게 가인은 빗나간 화살과 같고, 가인은 자기 행위가 실수로 인식된 것이다.

 

죄는 지상을 다스리는 엘로힘과 야훼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먼저 엘로힘이 설정한 죄의 구속을 피하는 방법을, 야훼는 자기 백성에게 전한다. 그것이 바로 대속물 개념이며, 동물의 피를 대신 흘리게 하는 방식은 일종의 잔꾀에 해당한다. 이로 우리는 동물의 피를 흘리는 것이 인간에게 죄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 실제로 예수도 먹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지 못한다고 말했다. 결국 야훼는 엘로힘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자기 백성에게 가르쳐 그들을 자신의 구속력 아래 두고자 했다.

 

예수 이전에 등장한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외쳤다. 이는 야훼의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을 선언한 것으로, 자유인으로 인도할 구세주를 맞이하기 위해 신부가 단장하는 준비와 같다. 물론 이런 상징적 의미를 요한이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수는 이러한 상황을 울타리 안에 있는 양의 비유로 설명했다. 지상은 곧 혼의 감옥이다.

 

구원의 대상이 육이 아닌 혼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죄사함이라는 단어는 의미를 잃게 된다. 혼의 몸이 간음이나 도둑질을 저지를 수는 없으며, 그런 행위는 모두 육체의 작용일 뿐이다. 혼은 지식을 통해 자신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탈출을 원한다면 목자가 이끄는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주인이 자기 양을 찾으러 왔는데, 그 누가 토를 달수 있단 말인가.

 

예수에게 죄사함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다만 유대 율법에 사로잡힌 이스라엘 백성에게 충격을 주고, 그로 인해 깨달음을 유도하려는 표현일 뿐이다. 이는 곧 야훼의 신보다 더 높은 권위가 지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리는 선언이었다.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죄사함의 방법을 알리는 방식으로, 그들이 다시 이스라엘 민족으로 윤회했다. 이스라엘 혼은 다른 혼의 인간들보다 더 오래 살아왔다는 의미이다. 그들은 살아 있는 동안 엘로힘의 법에 해당하는 죄를 벌금처럼 치르고 죽어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엘로힘이 심판할 근거 자체가 사라졌다는 말인데, 이런 결과를 예상했다면 그는 훨씬 더 복잡한 법을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하하하.

 

엘로힘을 섬기는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중세에는 면죄부를 판매했고, 죄를 사하는 권한을 교황이나 사제에게 부여해왔다. 오늘날에는 이러한 권위가 고해성사의 형태로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기독교는 왜 죄사함에 관련된 행위나 절차를 요구하지 않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예수의 피로 모든 죄가 사해졌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다. 개신교를 이끄는 혼의 인간들은 이미 부활한 이스라엘 혼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부활한 144,000명이다. 계시록에 부활한 이스라엘 혼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 저지른 악행에 대해 심판할 근거가 없다. 이들은 죽는 혼이 아니다.

 

다시 말해, 야훼는 지구에서 그를 섬기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이미 부활한 이스라엘 혼들과 함께 얄다바오트의 하늘에 이르기를 소망했다.

 

* 예수의 가르침.

 

만일 죄사함이 예수에게 구원의 핵심 과제였다면, 그는 죄사함을 노래하듯 강조하며 그 절대적 중요성을 알렸어야 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마시는 잔을 함께 마시라고 했고, 자신이 몸소 실천한 것처럼 가장 낮은 이의 발을 씻으라고 가르쳤으며,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마지막 당부를 남겼다.

 

자기 부정과 자기 십자가는 개인의 죄를 대신할 대속물 없이 온전히 자신의 행위를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며, 유대인에게는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예수는 아버지를 믿는 사람이라면, 땅에서 유대인의 제사장이나 바리새인, 사두개인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곧 최소한 야훼를 섬긴 사람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구원의 최저 기준임을 의미한다.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스스로의 선함과 의로움을 증명하며, 아버지의 선택을 바라며 살아야 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아버지의 선택에 합당한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예수의 가르침을 다시 읽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당신의 실수나 행위를 대신해줄 대속물은 없다. 다만 예수가 남긴 지식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십자가를 죄 사함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2 대속물은 없다

 

* 전편을 이어

 

예수가 다시 세상에 올 때 세상은 이미 극우가 판을 치고 있으며, 사람들은 양과 염소로 나뉘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의 재림을 알리는 징조로서, 양과 염소는 어떻게 구별되는 것일까?

 

앞서 언급했듯이, 유대교는 자신의 죄가 대속물을 통해 용서받는다고 믿는다. 이러한 개념은 종교적 상징에 머물지 않고 실제 현실에서 혼이 육신이 저지른 죄로 처벌받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로 이어졌다. 야훼는 혼이 소멸하는 죽음을 피할 방법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알려주었으며, 이에 따라 유대인들은 이 땅에서 이스라엘 민족으로 태어나 다시 그 삶을 반복하는 윤회를 소망하게 되었다.

이러한 믿음은 오랜 세월 지속되었고, 그 결과 유대 민족은 더욱 강해지고 지속적인 생존력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그들은 엘로힘으로부터 직접적인 정죄를 받지 않는 특권적 위치에 놓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애굽의 장자들이 죽임을 당한 사건이나 가나안 족속의 학살과 같은 행위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에게 그 책임이 묻히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육신으로 살면서 저지른 행위에 대한 처벌이 없게 되면, 악은 당연히 더 깊은 악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가인의 벌은 일곱 배이고, 그 후손의 벌은 일흔일곱 배'라는 성경 구절과 유사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야훼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구원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기준을 충족하는 144천 명만을 선택했고, 그들을 부활시켰다. 그 외의 사람들은 결국 혼의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는 악인이 더 득세한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악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으며, 혼의 반복된 윤회를 통해 더 많은 악을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악인에게는 끝이 없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돈이 마치 구원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면서 돈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불법은 허용된다는 왜곡된 생각이 사람들의 행동으로 이어져 왔다.

 

그러나 사람들은 지상에 천국의 아들이 강림하여, 기존의 모든 법칙이 이미 깨어졌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예수는 인간이 땅에서 행한 행위를 통해 천국의 문을 여는 열쇠를 얻게 된다고 말했으며, 그렇지 못할 때 혼은 영생에 이르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경고했다. 한편, 그는 야훼의 영들이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알리고 떠났다. 그리고 예수는 선과 악의 마지막 결말이 드러날 때 재림의 날이 된다고 말했다.

 

* 극우가 많아지고 그들은 염소가 되어간다.

 

초대교회의 주된 교리와 전도 방식은 예수가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고 대속물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믿는 사람은 죄가 없다고 전파한 것이었다. 또한 이러한 구세주를 믿고 따르는 자는 살아서 영생을 얻어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전했다.

 

초기 기독교가 주장한 예수가 인간의 대속물이란 교리는 엄청난 함정이다. 초대교회를 다스리는 신이 엘로힘과 야훼인 것을 알면 모든 것이 풀린다. 이들은 인간이 영생의 신이 되길 원하는 존재가 아니지 않는가. 인간은 지상을 다스리는 엘로힘과 야훼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예수가 떠난 자리에 세상의 임금이 다시 차지하고 사울이란 사람을 세워 히브리 율법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 야훼와 예수와 혼합된 종교가 만들어진다. 사울은 여호와의 메시아이다.

 

사울(바울)은 예수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대신한 희생이라는 사실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는 율법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오직 예수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쳤다. 사울 자신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를 만난 후 회개하고 예수의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초대교회의 엄격하고 순수한 신앙은 중세로 넘어가면서 점차 약화했고 죄 사함을 돈으로 사고파는 면죄부의 관행이 등장하면서 교회의 심각한 부패로 이어진다.

 

중세교회는 죄의 용서를 위해 고해성사, 보속, 참회 등의 절차를 요구했으며, 이는 일종의 대속 개념과 연결되어 있었다. 면죄부 제도 또한 단순히 기도만으로 죄가 사해진다고 가르친 것이 아니라, 금전적 기부나 일정한 행위와 결합된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루터는 면죄부 판매와 그 신학적 근거를 강하게 반박하며, 죄 사함은 단순한 외적 고백이나 금전적 거래가 아니라 진정한 영적 회개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면죄부를 사는 자들이 진정으로 회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라며 면죄부에 의존하는 신앙 행위가 신자들을 미신에 빠뜨린다고 지적하면 오직 믿음으로만구원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개신교는 종교개혁이 강조한 "오직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오직 성경으로"라는 원칙을 여전히 신앙과 교리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는 죄의 용서와 구원이 인간의 행위나 돈, 교회의 제도적 중재가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 대속과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복음을 믿음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처럼 죄의 문제는 예수로부터 출발했고 결국 다시 예수에게로 돌아왔다.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예수에 대한 믿음과 십자가의 대속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 여기게 되면,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지 않게 되는 일이 벌어진다. 즉 살아서도 벌을 받지 않고 죽어서도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 믿게 되면 악은 점점 더 깊은 악으로 나아가게 된다. 믿는 자들 가운데 일부는 자신의 악한 행위로 인해 마음 깊은 곳에서 불편함을 느끼면 그것을 헌금이라는 형태로 보상하려 한다. 그들은 자신의 재물 일부를 교회에 바침으로써 죄에서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믿는 듯하다.

 

마태복음 5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사람에게 행한 악을 예수의 이름과 교회에 바친 돈으로 해결되었다고 믿으니, 악은 더 깊은 악으로 빠져든다. 인간이 육신의 행위로 한 악은 육신의 처벌을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이런 처벌을 피한 사람은 혼이 그 악을 감당하여 벌을 받아야 했었다. 그러나 이런 이치를 모른 사람들은 살아서 지은 죄는 예수 안에서 모두 용서를 받았다고 착각하여 스스로 의로워지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이렇게 인생을 살다 죽은 혼은 다음 윤회에서 더 사악해지고 간교해졌다.

 

판결하는 자를 만나기 전에 고발당하지 않게 모든 것을 풀고 갚아야 한다. 이런 심판과 구원이 2,000년이 걸렸으니, 사람들은 심판이 없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믿는 자들이 악을 행해도 처벌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더욱 악한 방법을 통해 자신의 영화를 추구하며 삶을 소비할 것이다. 이는 마치 주인이 없는 포도원에서 마음껏 먹고 마시며 악을 저지르던 청지기나 품꾼들로 결국 주인이 돌아오자 쫓겨나는 것과 같다. 오늘날 교회가 믿고 섬기는 야훼 또는 엘로힘 하나님은 지구라는 농장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다. 이렇게 이들은 점점 더 염소가 되어간다.

 

* 예수의 죽음이 구원이라 믿는 교인은

 

교회는 처음에는 미숙했고, 그다음에는 타락했으며, 이어서는 성결해지기를 원했지만, 마지막에는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 믿는 자들 율법에 따라 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예수가 지상에 온 이후, 인간 내면에 뿌려진 천국의 씨앗, 혹은 겨자씨로 비유된 생명의 빛은 우리 안에서 양심과 도덕이 되어 행위를 제약하게 되었다.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저 사람이 저렇게 죽어선 안 되지', '아이들이 죽음에 이르다니'와 같은 생각이 떠오르며 개인의 고통이나 죽음, 약자가 강자에게 고통받는 일들이 우리 눈에 거슬리고 참을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것이 예수가 인간에게 준 빛으로 나아가는 참회의 길이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신자들로부터 2000년이 지난 오늘날의 교회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이 마음 깊은 곳에서 비추는 이 빛을 외면한 채 예수의 이름과 십자가로 죄 사함을 받았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의 행위를 성찰하지 않았으며 결국 '극우'라 불리는 가장 끝단에 이르게 된다.

 

초대교회는 예수의 십자가와 피를 팔아 장사를 했다. 중세교회는 죄의 문제를 돈으로 사고파는 일을 했다. 그리고 지금 교인들은 헌금으로 그 일을 대신한다. 교인들이 자기 행위의 악을 대하는 방법을 보면 참혹하다.

 

예수의 제자들 이후, 믿는 사람들이 주장한 예수의 십자가 구원이 과연 죄의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육신으로 저지른 죄는 육으로 처벌받거나, 진정한 참회를 하거나, 피해자에게 직접 배상해야만 온전히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신자는 이상하게도 열 가지의 악을 저질러도 그중 하나만 드러나면 처벌을 받고 설령 드러나더라도 그 처벌조차 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이들이 과거에는 왕과 귀족, 기득권자였고, 오늘날에는 돈이 많은 재벌이나 정치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땅에서 저지른 행위의 결과를 고스란히 짊어진 채 죽으면 혼의 몸이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땅을 다스리는 신이 그들의 죄를 없는 것으로 여기므로 그들은 책임을 면했다. 그 결과, 악을 행한 자들은 다음 생에서 더 큰 악으로 윤회하게 되었고 그렇게 점점 더 왼편으로 치우쳐 가게 된다.

 

가톨릭교회(로마 가톨릭)의 기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 특히 사도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시작된다. 교회는 1세기 예수의 제자들이 세운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연속으로 2세기 초 '가톨릭'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한다. 이렇게 유럽에서 먼저 믿은 사람들이 예수의 십자가를 대속물로 사용하며 스스로 돌아보는 생을 살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더 왼쪽으로 가는 생을 윤회하여 결국 염소라 불리게 된다.

 

개신교는 16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미국을 이주하는 기간을 거치는 동안 예수의 이름과 십자가의 교리는 인간을 스스로 돌아보는 때를 놓치고 그들도 점점 더 왼쪽으로 가게 되었다.

 

한국에는 19세기 말 개신교가 전파된다. 이후 한국에서 예수를 믿은 사람들은 자기의 악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예수가 대신 진다고 믿는 이들과 예수의 희생을 본받아 바른 삶을 살고자 한 이들로 나뉘게 되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악을 저지르고도 처벌받지 않는 사람들과 예수를 알고 사회와 국가,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로 극명하게 갈려진다. 이러한 구분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도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교회 교리는 이상하게 전파되고 이렇게 급진적으로 극우와 된 원인에 인간의 윤회를 모르면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한국은 생명의 마지막 발로로 영적인 가뭄 가운데 유일하게 자발적인 생수가 흘러나오는 곳이기 때문이다. 다른 민족의 전생을 지닌 특히 일본인으로 산 혼의 인간이 한국에 윤회했고 야훼의 부활 백성이 한국을 장악하려고 한국인으로 태어났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극우화가 빨라졌다.

 

지구는 온통 염소와 양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예수의 재림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예수는 재림의 순간에 염소와 양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염소와 양으로 나뉘어 있는 상태일 때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이다. 이때 한 무리는 왼쪽으로 다른 한 무리는 오른쪽으로 나뉘게 된다. 이것은 세상의 종말이나 지구의 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점점 양이 되어가는 사람은

 

그렇다면 양은 어떻게 오른편으로 가게 되는가? 그것은 예수가 인간에게 뿌린 천국의 씨앗을 받은 사람들 가운데, 내면의 빛이 발현되어 그것을 감추지 못한 이들이다.

이들은 이웃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함께 외치며 저항하다가, 지주의 몽둥이에 맞아 고통 속에 죽는다. 나라가 망했을 때는 나라 없는 민족이 될 수 없다며 낫을 들고 싸우다 죽는다. 누군가는 마녀로 몰려 누명을 쓰고 희생당하지만, 또 어떤 이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이웃과 공동체를 살리며 생을 마감한다. 그렇게 이름 없는 이들의 몸부림 속에서, 빛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 움직인다.

 

이처럼 삶을 살아낸 사람이 죽음에 이르게 되면, 그 혼은 다음 생의 더 큰 대의와 더 많은 사람을 구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육신으로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은 짧지만, 그 속에서 발현된 빛은 더욱 강렬해진다. 혼의 내면에서 자라난 빛은 점점 강해지며 마침내 하나의 나무처럼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다. 이들은 점점 더 오른편을 향해 나아간다.

 

한국은 한때 악한 대통령과 무속 신앙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이를 다시 빛의 나라로 세우려는 이들의 외침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이러한 모든 기준의 중심에는 이재명이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재명은 마치 십자가에 달린 기준과 같은 존재다. 그를 옳다고 인정하는 자는 양이요, 그를 죽이려 하거나 반대하는 자는 염소로 구분되는 마지막 분별의 시점에 와 있다. 이는 스스로 의로움을 증명하지 못한 자들이 맞이하는 최종적인 키질과도 같다. 키질하면, 무거운 알곡은 아래로 떨어지고, 가벼운 가라지는 바람에 날려 자연스럽게 분리된다.

 

믿는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교회에 바친 헌금을 죄 사함의 대속물처럼 여기며 위안을 얻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에게는 진정한 회개의 기회가 사라진다. 누군가는 수천억 원을 벌기 위해 저지른 악을 덮기 위해 백억 원을 기부하고 또 다른 이는 십억 원을 교회에 바친다. 이처럼 헌금을 통해 회장은 목사의 축복과 장로에게 죄 사함이라는 안부를 받는다.

 

행위의 악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혼의 생이 다하는 마지막까지 차곡차곡 지금도 쌓아져 가고 있었다.

 

마태복음 25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예수의 재림이 있기 전, 모든 인간은 이미 양과 염소로 나뉘어 살아가고 있다. 이때 염소는 왼편으로, 양은 오른편으로 정렬시키는 이가 바로 재림주이다.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오른쪽의 양은 아버지 나라를 상속받게 된다.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의인은 생의 윤회 동안 자신의 내면에 있는 빛을 따라 주리고 헐벗은 자들을 도우며 살아왔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그 모든 행위로 인해 인간은 스스로 양이 되기도 하고 염소가 되기도 한 것이다. 예수는 어디에서도 헌금이나 교회 건축 혹은 성직자의 섬김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고 가르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누구든지 높은 자가 되려면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자기 행위의 대속물은 없다. 오직 예수가 전한 가르침만 남을 뿐이다.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 Daum 카페

 

아담의 자살과 야훼가 벌인 인신공양의 이야기는 다음카페에 있으니 읽기 바란다.

 

* 어린 예수

 

아벨이 바친 새끼 양이 구세주를 상징한다. 어린 예수를 죽이려는 헤롯왕과 다른 사람의 모습에서 야훼의 사악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새끼 양이란 단어에 숨어 구세주를 죽여 제물로 삼으려는 인신 공양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야훼가 현대에 벌인 인신 공양은 누군가의 한이고 아픔이라 여기서 다루지 않는다.

 

야훼는 어린 예수가 구세주가 되기 전에 죽여야 했지만 실패한다.

 

이사야 53장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8. 그는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 갔으나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이라 하였으리요

9.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

 

6절 인간을 죄를 예수에게 짊어지게 한다. 곤욕을 당하고 도수장에 끌려가고 심문을 받고 유대인의 죄를 뒤집어씌워 죽인다는 계획이다. 나쁜 놈. 이러고도 여호와를 섬길 것이냐?

 

*속죄제

 

속죄제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죄, 특히 부지중에 저지른 죄를 씻기 위해 드리는 제사다.

이는 죄로 인해 더럽혀진 성소를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초점이 있다.

속죄제를 드릴 때, 죄인은 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 자신의 죄를 상징적으로 전가한다.

제물은 흠 없는 동물이어야 하며, 피는 성소 휘장 앞에 뿌려져 죄의 용서를 상징한다.

제물 일부는 번제 단에서 불태워지고, 때로는 제사장이 먹기도 한다.

 

사람이 많이 죽은 장소에 나타나는 김**

술을 뿌려 제사하는 김**

전국에 일어난 산불 음모론의 중앙에 있는 김**

 

이런 말이 현 정부에서 들린다. 윤석열의 부인인 김명신이 누군가의 죽음을 자신의 죄를 사하는 도구로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다. 많은 희생이 나라를 살린다는 천공이란 사이비 도사가 말했다. 윤석열은 계엄을 통해 수천 명을 죽일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사람의 죽음으로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려는 의지는 야훼가 인간에게 주입한 사상이다.

 

* 예수의 가르침.

 

마태복음 16장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8장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예수는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며 땅에서 행한 것을 다 갚아야 하늘에서 풀린다고 말한다. 지은 죄는 당사자에게 갔어 풀고 법에 따른 벌을 받지 않으면 하늘의 심판이 더 엄격하단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구원이 없다.

 

교회와 다른 성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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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환의 입의 무게

 

마태복음 15장

11.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했다. 반면에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람을 깨끗하게도 한다. 예수는 입으로 정결케 하는 유대 선생을 만나지 못한 모양이다.

 

국민은 100명이 모여도 입이 되지 못하고, 1000명이 모여도 입이 되지 못하고, 100만 명이 모여야 겨우 입이 되는 것을 목격한다. 유명한 연예인의 말과 국회의원의 말은 TV를 통해 쉽게 전해진다. 사람마다 입의 무게가 다른 모양이다.

 

윤석열이 저지른 일은 국민을 죽이는 일이요, 의를 무너뜨리는 일이며, 국민이 지킨 나라를 자신의 사유물로 만드는 일이었다. 그 일에 관여한 모든 사람은 반드시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

 

국민의 이 일을 바로잡기 위해 계엄 불면증에 시달리고, 주말과 평일을 아스팔트 위에서 지낸다. 국민 100만 명이 입을 모아야 겨우 정치가 반응하는 모양이다. 국민 머리 위에 왕처럼 신처럼 군림하는 헌법재판관을 주가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과 유명인의 한마디는 국민 100만 명보다 더 큰 영향력을 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이승환의 입은 천만 국민의 기쁨이고 위로였다.

 

주께서 세상을 무엇으로 심판할까?

한 개를 가진 자에게 하나를 받을 것이고

두 개를 가진 자에게 두 개를 달라 말할 것이며

백 개를 가진 사람에겐 백 개의 소출을 요구하지 않겠는가.

 

주는 입의 무게만큼 많은 값을 요구한다. 글쓴이는 국민 MC, 국민 가수, 국민 배우란 말을 싫어한다. 계엄이 선포되고 국민은 자기를 희생하여 나라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하는 중에 강아지 생일 파티를 한 이가 있다. 그는 자기의 말에 무게가 얼마나 몰랐거나, 돈과 유명세로 교만해졌을 것이다. 글쓴이는 오래전부터 싫어했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예수는 입의 무게만큼 의를 요구할 것이며, 그 소출을 드리지 못하는 자는 구원에서 탈락시켜 어두운 곳으로 쫓아버린다. 그들은 곧 있을 예수의 나라를 기대하거나 소망하지 않으니, 눈과 귀로 주의 나라를 보는 일은 없다.

 

누가복음 21장

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9장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전국에 산불로 정신이 없는 이때, 유명인이 산불기금으로 돈을 기부했다는 이야기가 인터넷 여기저기 실린다. 많이 가진 자가 재산의 적은 일부분을 기부하는 것으로 의를 쌓았다고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물론 그들이 예수가 약속한 나라를 받길 기대하거나 소망하지 않을 것이지만, 글쓴이는 알길 바라는 사람에게 가르친다. 땅에서 얻은 것으로 하늘나라를 상속받길 원한다면 최소한 자기가 가진 재산의 90%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줘야 천국의 아버지가 쳐다볼까 말까 할 정도이다,

 

땅의 보화로 하늘의 보화를 사는 일은 없다. 왜냐하면 이 일로 사람의 칭찬이 따를 것이며, 유명세는 더 해지고 브랜드의 가치는 상승한다. 체면도 위신도 깎이지 않는 일에 돈을 기부한 사람이 얻을 예수의 칭찬은 없다.

 

요한복음 6장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육신의 몸이 영생에 이른 것이 아니다.

 

이승환은 고소 고발의 협박과 악플에 시달려도 초연하다. 그를 만날 일은 없지만, 주가 그를 칭찬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자기희생으로 자기 삶을 내어주고 의를 증명해 보인 사람이다.

 

돈과 권력으로 사람을 측정하는 일은 이제 없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혹 글쓴이에게 재난을 도운 사람에게 욕하지 말라고 한다면, 당신은 나와 상관없으니, 이곳을 떠나라.

눈과 귀가 있어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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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화려한 생을 사는 사람을 부러워 말라. 그들은 마지막 생을 사는 자들로 영원한 죽음이 그들을 기다린다.

 

윤회를 모르면 구원을 논하기 어렵다. 육신은 태어나 죽고 흙으로 돌아간다. 혼의 몸은 육신의 생보다 수명이 길다. 혼이 영생의 영으로 변화를 입으면 구원에 이른다. 교회에서 말하는 영혼이란 없다. 죽음이 있는 혼의 몸이나 영생의 몸이 있을 뿐이다. 혼과 영은 다른다.

 

예수가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라.

혼은 여러 번 육신의 생으로 살다가 죄와 의의 삶으로 마무리된다. 혼의 죽음은 우주에 에너지가 흩어지는 것으로 바벨탑의 사람들이 흩어짐을 면하고자 높은 하나님을 찾은 것을 읽어보라.

 

교회에서 섬기는 여호와는 선하지도 의롭지도 않다. 여호와는 히브리 유목민의 신으로 사악하며 폭력적이고 편협한 신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친 천국의 아버지를 찾아라. 그러면 혼의 죽음을 면하리라.

세상에 진리를 아는 자가 없으니 인생이 어찌 될지 안타깝다.

 

육신의 생이 화려하고 풍요로움이 넘치는 사람은 대부분 마지막 생을 사는 사람으로 육신이 죽으면 혼의 죽음도 맞이한다. 세계적인 가수, 운동선수, 돈 많은 자동차 사장 등 모두가 여기에 해당한다. 화려함은 곧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다.

 

혼이 태어나 처음 육신의 몸을 입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경험은 강한 의지로 마지막엔 가장 자극적인 삶을 선택한다. 이처럼 화려한 사람이 넘쳐나는 시대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은 우주의 겨울이 오고 있음 의미하면 이를 마지막 추수라 부르는 예수의 재림을 말한다.

 

진실을 모르는 자는 파괴되고 화려한 육신이 늙고 병드는 순간까지 내면의 혼은 철저히 외면받게 된다.

어찌 육신의 화려한 인생을 부러워하겠는가.

 

화려함은 절정을 말하는 것으로 곧 어둠이 닥쳐온다. 그들에겐 기회가 없음이다.

예수 가르친 진짜 진실을 듣길 바란다. 교회는 속이는 자요, 거짓말하는 사람들이다.

 

교회와 다른 성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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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민주주의.

 

100300국민법관제도.

국민이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국민법관제도.

국민이 고위 공직자를 파면할 수 있는 국민법관제도.

국민이 정당을 해산시킬 수 있는 국민법관제도.

 

국민은 헌법재판소 위에 있으며

국민은 대통령 위에 있으며

국민은 법원 위에 있으며

국민은 국회 위에 있다

 

너흰 너희의 수고로 이름이 알려져 국회의원도 해 먹고 장관도 해 먹고 총리도 해 먹었으니 더 이상 갚을 빚이 없다.

이젠 아스팔트 국민이 직접 나라를 이끌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자.

 

국민은 안중에 두지 않는 정치는 이젠 그만.

국민이 국민을 지키고 국민이 경제를 살리며 국민이 태어날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만든다.

국민이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자.

수십 년, 수백 년 나라를 지킨 우리가 진정한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자.

 

마태복음 5장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는 죄란 세상에 없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인간이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세속적인 교인보다 더 나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

지금의 교회는 예수의 가르침과 다른 교리를 따르며 구원을 팔아 자신의 배를 채우는 일을 한다. 진실이 폭로되는 순간 지상의 모든 종교는 사라질 것이다.

 

땅의 법과 하늘의 법은 다르다. 땅의 법은 다수의 합의로 만들어진 규율이라면 하늘의 법은 혼의 인간을 영생의 영으로 부활시키는 진리다.

땅의 법이 천국의 법과 상관없다 하여도, 다수의 합의가 깨어진 판결은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다수의 합의로 만들어진 법을 공정하게 판결하지 못한 판사.

법의 칼로 사람을 헤친 검사.

여론을 왜곡하여 진실을 은폐한 언론.

이제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국민이 모든 권위를 가지고 직접 판결하는 국민법관제도를 실시해야 한다.

 

100300만의 지성이 국회보다, 판사보다, 대통령보다 못하겠는가!

 

아스팔트 국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나라를 다스리는 국민법관제도를 만들어라.

 

 

 

글쓴이는 사형제도를 반대했었다.

 

창세기 9장

2.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3.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4.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째 먹지 말 것이니라

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홍수심판 이후 여호와는 인간에게 육식을 권장하며 사람을 죽이는 자는 그 값을 치러야 한다고 말한다. 유대인의 율법이 있기 전, 인간을 제재하는 가장 강력한 법이 살인이다. 이 법은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교회에서 섬기는 여호와는 유일신도 아니며 선하지도 않다.

 

세상을 창조한 여호와는 엘로힘이라 부르고 히브리 유목민의 신을 야훼라 부른다. 성경의 기본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고 지식의 높은 산에 오르길 바란다.

 

홍수 이후 사람 수명이 줄어든 이유와 바벨탑을 쌓은 인간을 이해하려면 글을 참조하길 바란다.

홍수 사건으로 신이 인간을 멸망시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브라함 이전의 내용은 영혼의 이야기로 육신의 사건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인간 내면의 혼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나면 구원에 이른다.

 

요한복음 3장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예수가 가르친 천국의 아버지는 여호와가 아니며, 구원도 육신이 아닌 내면의 혼이 영으로 거듭나야 이루어진다. 육신이 백여 년을 사는 반면 내면의 혼은 천년을 넘지 못한다. 인간의 혼은 윤회를 통해 의와 죄를 쌓아간다.

 

여호와는 홍수로 살아남은 그들을 수명을 단축하거나 심판할 근거로 살인이란 법을 인간에게 선포한다. 물론 살인의 인간이 되기 위해 육식의 인간이 되어야 했다. 이는 창세기 편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신의 심기를 건드린 혼의 인간을 소멸시킬 방법은 각자가 지은 죄로 평가되지만, 율법이 있기 전 먼저 살인의 법이 선포된다. 이런 이유로 글쓴이는 사형제도를 반대했다. 악을 행한 사람을 죽여도 그 사람을 죽인 사람은 영적 법을 피하지 못했다.

 

예수의 가르침을 이야기해 보자. 예수는 인간에게 죄란 없다고 말했다. 이는 구세주를 믿으면 죄가 사해진다는 뜻이 아니라. 땅의 인간이 영으로 천국 아버지의 호적에 들어가면 땅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과 같다.

 

예수는 육과 혼이 살아서 있는 동안 천국에 이르는 길을 제시했다. 그러나 교회는 구약의 여호와를 섬기므로 진리를 퇴색시켜 버렸다. 예수의 가르침이 구약의 율법과 사도바울의 서신에 갇혀버린 것이다.

 

각설하고, 대한민국에 일어난 계엄이란 반란에 대해 많은 근심과 몸부림을 치는 중, 그들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국민의 합의에 실행한 제도라 할지라도 살인에 해당하는 것이니 과연 옳은 일인지 주께 물어보았다. 이미 그들을 죽여야 한다고 말했지만, 영적으로 이런 일을 해도 되는지 확인하여 물었다.

 

글쓴이의 기도 내용이다.

 

“악인과 손잡지 않을 것이며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다.

유대인만 빌라도의 손을 빌려 예수를 죽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빌라도의 손을 빌려 너희를 죽일 수 있다.

사람의 뒤꿈치를 다시는 물지 못하게 뱀의 머리를 자를 것이다.”

 

12월에 이런 글을 쓰면서 슬픔과 분노를 참지 못했다. 왜 이런 격한 감정이 들었는지 지금 언론에 밝혀지는 사실을 보면 국민도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창세기 뱀과 같은 인간은 대한민국에 있으면 안 된다. 한반도는 예수의 가르침이 새롭게 선포될 국가이며, 가장 이상적인 국가로 본보기가 되어야 할 국민이다. 이런 빛의 자녀 속에 뱀이 숨어 악을 행하고 이간질하며 함정에 빠뜨리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악의 싹을 잘라 다시는 한반도에 윤회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을 사형시켜야 하는 이유이다. 그들은 일본인의 전생을 가진 살인자들이다.

 

그럼, 국민의 합의로 악인을 사형시킨다면 살아남은 우리는 어떻게 될까의 답을 오늘 새벽에 받고 신이 나 글을 올린다.

 

주의 답.
“엘로힘의 심판에 다다르기 전에 구원받으면 된다.”

 

짧은 문장이지만 이해를 위해 설명하자면, 혼의 수명은 천년이다. 그러나 법에 따라 수백 년씩 줄어들기도 한다. 각자가 육신으로 행한 행위로 수명은 줄어든다. 아니 신이 혼의 수명을 줄일 도구로 성경을 사용한다. 혼의 몸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에너지는 흩어지고 우주로 떠돌게 된다.

 

창세기 3장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23.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24.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혼은 물이요 영은 얼음이다. 혼은 새의 알이라면 영은 날개로 날아간 새와 같다. 아담도 영생하지 못하는 혼의 인간으로 여호와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지 못하게 길을 막았다.

아담이 입은 가죽옷이 짐승의 육체라 부르는 물질의 몸, 지금 우리의 원조가 된다. 아담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면 글쓴이의 글을 읽어보라.

 

우리가 살아서 내면의 혼이 영생의 영으로 변화를 입으면 지상의 법으로 우릴 소멸시키지 못한다. 이미 우린 불멸의 인간이 된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는 인간이 영생에 이르는 방법을 유일하게 가르쳤다. 살아서 진리를 듣고 천국에 합당한 인간으로 거듭나면, 지상의 신들이 천국의 자녀에 대해 변론하지 못한다. 예수가 자신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 말한 것을 기억하라. 교회에서 가르친 설교는 진리가 아니다. 그들은 돈을 받고 구원을 팔고 있는 상인들로 실상은 구원이 없다.

 

암튼 내용을 요약하면, 우리가 살아서 진리를 듣고 한반도의 악을 제거하여 뱀이 머리를 자른다고 할지라도 그 죄를 묻지 못하는 진리의 인간이 되면 영적으로 자유롭다.

 

윤**과 김** 국방부 요직 인사 중 누구를 사형에 처할지 고민하지 말고, 누구만 살려 죄를 가볍게 할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국가를 붕괴시키는 사람은 없어져야 한다.

 

글쓴이는 내란 반란군 모두 사형에 찬성합니다.

 

 

교회가 극우로 치닫는 것은 때가 가까이 왔음이다. 물론 육신으로 예수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스스로 ‘재림주’라 말하는 자는 모두 가짜다.

 

교회가 섬기는 여호와는 히브리 유목민의 신으로 반쪽짜리 신이다. 그들이 예수의 이름을 도용하여 구원을 팔아 장사하고 있다. 여호와는 뱀을 창조한 신이며 히브리인을 위해 애굽의 장자를 죽이고 가나안 땅의 토착민을 집단 살인한 신이다. 여호와는 사악하고 무지하며 어둡다.

 

예수가 전한 천국의 아버지는 여호와가 아니다. 유대인은 예수를 신성모독이란 죄명으로 죽인 민족이다.

 

지금까지 예수의 이름을 팔아 구원을 장사하고, 확인되지 못한 천국을 팔아 육신의 배를 채운 모든 목자는 심판을 받는다.

 

요한복음 10장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전**이는 자신이 순교하여 의로움을 증명해 보이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그는 제게도 개인적으로 생명을 던지겠다라는 메시지가 수백 통이 왔다.” 그러면서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언제든지 내가 죽을 기회를 줄 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서 효과 있는 죽음을 해야 한다. 언제 내가 한번 안내할 테니라고 덧붙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선한 목자는 자신의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 그러나 전광훈이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것을 위해 때를 기다려 죽어 달라는 선동을 하고 있다. 그는 돈과 권력을 위한 거짓 목자이다.

 

물질과 땅의 영광을 위해 선동하는 자는 거짓 목자들이다. 그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 또한 염소에 불과하다.

 

마태복음 25장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주의 때가 이르렀다, 선한 사람은 자신의 선을 증명하기 위해 등불을 들어 눈 속에서 키세스 군단, 우주 군단이란 애칭을 받으며 나라를 걱정한다. 그렇게 모인 국민은 정치적 야망이나 돈에 마음을 팔지 않았으며, 예수는 이들을 선한 양이라 부른다.

 

마태복음 24장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교회는 여호와의 백성이 모인 곳으로 예수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는 곳이다. 누구도 예수를 모방하여 천국을 상속받고자 하는 이가 없다. 교회에서 예수와 같은 이를 본 적이 있는가?

 

어떤 이는 우리 집사가, 우리 목사가, 봉사하는 연예인, 기부하는 가수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 또한 예수의 백성이 아니다.

 

마태복음 25장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국민을 죽이려고 총과 폭탄을 든 대통령과 군대를 향해 소리치는 자가 선하며

세월호 사건, 이태원 사고, 제주항공 사건 등 이웃의 죽음에 슬퍼하는 자가 선하며

국민의 합의로 만들어진 법을 공정하게 처리하지 못한 검사와 판사를 비난하는 자가 선하다.

 

돈을 자랑하며 역사를 속이는 강사가 악하며

무리를 선동하여 악의 편에 선 교회가 악하며

무지로 늙고 정신이 병든 노인이 악하며

세상의 상식을 외면한 젊은이들이 악하다.

 

수백 번의 법의 수사에도 당당하게 서 있는 이재명이 선하며

수십 년의 언론 탄압에도 당당한 이재명이 선하며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은 자의 배신에도 당당한 이재명이 선하며

암살자에게 살아남은 이재명의 뒤에는 구세주가 함께한다.

 

이재명은 어떤 대통령과 비교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지도자이다. 앞으로 이런 지도자는 없다. 그러니 국민은 오랜 기간 대통령을 시켜 먹을 즐거운 고민을 하시라. 선한 국민이라면 이런 지도자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예수가 육신의 지도자로 선택했기에 교회는 이재명을 두려워한다. 교회는 거짓 진리를 전하는 곳으로 모든 종교는 사라지고 예수의 가르침이 가득하게 된다.

글쓴이가 이미 여러 번 언급한 사람은 이재명이다.

 

이재명이 죽어 대한민국이 살지 목사가 죽어 대한민국이 살지 지켜보시라!

예수는 목사의 편에 없다.

 

세상을 무엇으로 선과 악으로 나누겠느냐?

 

전쟁과 총으로 국민을 위협하는 윤** 편에선 사람과 이재명을 악하다 비난한 모든 자는 가라지이다.

 

글쓴이는 몇 년 전 대전에 있는 가죽 공방에서 강사를 만나 적이 있다. 몇 주간의 수업에서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부산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며 이재명을 극히 혐오하는 사람이란 사실이다. 세계로 교회.

 

글쓴이는 한국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과정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아는 데도 속이 천불이 난다. 선한 국민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염려하지 마시라. 주가 윤석열은 쓰레기 차이며 모든 쓰레기를 분류되면 떠난다고 말했다. 김명신에 관한 이야기도 이미 언급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글쓴이의 글을 읽고 지혜를 얻길 바란다.

 

 

 

 

 

 

전두환 전한길 전광훈 하 하 하 

 

 

교회와 다른 성경 이야기.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https://cafe.daum.net/good-horse/

 

윤**이 대통령이 되는 순간, 글쓴이가 받은 계시는 그가 쓰레기차란 말이었다. 대선 때 윤**이 당선되는 순간 머리를 박고 기도하는 중 받은 계시로 그가 대한민국의 쓰레기를 담아 떠난다고 글로 옮겨 놓았다. 이전 글 새로운 1년과 이재명’, 인스타 구제주의 전언참조.

 

대한민국이 선택받은 이유는 다음에 가르쳐 줄 것이다. 한국의 현 상황을, 꿈을 통해 본 것을 민주당 후보 공천 기간 꾼 3가지 꿈에 남겼다.

 

지금 한국에는 일반인이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대통령은 국민을 죽이라는 명령을 하고, 그의 말을 지지하는 교회와 사람들이 거리에서 소리를 치고 있다. 머리에 총을 맞아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겠다 싶은 일이며, 이들의 논리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정도이다.

 

글쓴이는 꿈을 계시로 받지 않는다. 그러나 총선 당시 계속되는 꿈이 기억에 남아 기록하였고 꿈과 같이 구석구석까지 벌레가 득실거리는 한국의 모습을 보고 있다. 주의 강림이 있기 전, 사람 속에서 양과 염소를 가르고 알곡과 가라지를 분류하여 먼저 가라지를 불에 태운다는 말과 같이 이제는 중간은 없다고 이미 말했다. 중도, 중용, 중간 등 이런 말은 글쓴이는 아주 싫어한다. , 진실, 진리, , 절대다수의 공의란 말이 대체되어야 하며 머리 좋은 놈이 굴리는 말 바른 소리는 입을 찢어 놓아야 한다.

 

죽음과 삶의 중간은 없다. 빛이 강해지면 그림자의 경계는 더욱 짙어진다. 오직 빛과 어둠만 보일 뿐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죽이려는 자와 그를 막아서는 국민이 존재할 뿐 중간은 없다. 너희는 어디에 설 것인가?

2024년부터 1년이 극렬해질 것이며 2025년은 대대적인 청소가 시작된다고 보았다.

 

글쓴이는 이 모든 일이 34일 아니면 54일 전에 정리가 되길 바란다. 물론 대한민국을 청소하는 일은 몇 달 만에 해결되지 않겠지만, 국민이 진실을 대면한다면 나머지는 시간문제이다. 그럼, 왜 이런 일이 2025년에 일어나는지 설명하겠다.

 

1948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이스라엘이 국가 건립을 선포했다. 1948년은 대한민국에 이승만이 국가를 설립했다는 개소리를 하는 국민이 있다. 어릴 적 교회에서 들은 이야기로 한국은 제2의 이스라엘 민족이며 여호와의 왕국이란 말을 했다. 그런 이유로 한국에서 메시아가 재림한다고 가르쳤고, 많은 적그리스도가 넘쳐나는 곳이 되었다.

 

유대인이 섬기는 여호와는 예수가 가르친 천국의 아버지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이 섬기는 여호와의 이름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죽였다. 여호와는 히브리 유목민의 신에 불과한 반쪽짜리 신인데 예수의 가르침과 여호와의 경전을 뒤섞어 전 세계를 전해지면서 전쟁과 거짓 진리가 넘쳐나게 되었다.

 

여호와는 유대인을 버리고 개신교로 옷을 갈아입고 미국이란 새로운 왕국을 건립한다. 이 과정에 많은 유대인이 죽었고 그들은 나라 없이 떠돌게 된다. 이것이 신이 그 백성을 버렸단 결과물이다. 신이 유대인을 보호하고 있었다면 그런 엄청난 살인은 자행되지 않았을 것이다. 글쓴이 성경의 기본을 참조하길 바란다.

 

계시록은 여호와의 계시이며 예수와 상관없는 내용이다. 예수가 세상에 자신을 들어내는 순간 여호와는 사망이 이른다. 지상에서 모든 이권을 빼앗긴 여호와가 부활하여 이스라엘 144,000명과 함께 지상에 강림한다는 내용이 계시록의 핵심이다.

 

이스라엘 144,000명의 부활은 지상을 장악한 짐승이라 말하는 신과 사탄을 대적하여 싸우는 군사로, 결국 재림하는 예수를 막아설 군사들이다. 이 숫자를 천국에 들어가는 구원의 숫자로 가르치는 교회는 심판을 받을 것이며 먼저 신천지 이만희가 심판을 받게 된다. 그는 가짜다.

 

계시록의 666은 시간의 666년으로 지상을 장악한 다른 신과 사탄이 왕 노릇을 하는 기간을 의미하며 이 시간의 해석은 다니엘이 예언과 계시록의 예언을 참고하길 바란다.

 

다니엘이 계시를 받은 해가 BC 572년으로 12장에 나오는 날수를 1년으로 환산해 합치면 된다.

 

572+1260=1832년은 AD 688년이 된다.

688+1290=1978

688+1335=2023

1978~2022년까지 여호와의 적그리스도 출현 44

1978+22=2000

2000+22=2022

 

688년이 왜 666년이 되었는지 글을 읽어보라 길어서 설명하기 싫다.

 

왜 올해가 한국이 여호와로부터 독립인지 설명한다. 여호와는 이미 개신교로 옷을 갈아입고 미국이란 국가를 건립했다. 그렇게 철 지난 이스라엘 국가를 다시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립하도록 허락한 것은 지상의 인간을 속이려는 거짓말이다. 신이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에 놀라운가?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도 거짓말쟁이 겁쟁이며 야곱도 거짓말쟁이로 사악했다. 교회는 여러 가지로 속이는 거짓말을 잘도 한다. 그 아비 그 자식들이다.

전**이 제주항공 사고를 하나님이 사탄에게 허락한 것이라 말하는 것을 보니 자신이 섬기는 여호와가 사탄의 우두머리라 시인하는 꼴이다. 옳다. 여호와는 사탄과 손을 잡고 지상을 장악하려는 악한 신이다.

 

여호와가 가장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존재가 예수이다. 예수의 재림이 예언된 한국을 영적으로 장악하려는 시도가 1948년 시작되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이승만이란 악인을 통해 교회는 악의 중심에 섰다. 왜 교회가 친미 친일인지 역사 공부를 좀 하길 바란다.

 

2025년은 한국이 여호와의 영적인 구속에서 해방되는 해로, 교회의 모든 악이 드러나며 종교 집단은 한국에서 사라지게 된다.

 

대한민국 독립기념일은 3월 1일이며, 대한민국의 건국일은 음력 10월 3일이다.

이재명을 정치적으로, 육적으로 죽이려는 자는 다 죽는다.”

 

그가 구세주나 심판자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모세가 들어 올린 놋뱀과 같다.

 

시대마다 사람을 무엇으로 구분할꼬?

예수 사후 나라마다 벌어진 일로 이미 구분되어 왔다.

재림의 예언지인 한국에서는 독립을 원하는 사람과 친일 세력으로, 광주에 벌어진 5.18 사건에서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죽은 자를 조롱하고 그의 부모를 경멸한 자들은 심판을 받을 것이다. 세상에 벌어진 일로 인간은 사후 자신이 받을 화복이 결정되어 진다.

 

마태복음 25장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예수는 교회에서 예배하고 찬양하고 헌금하고 소리높여 기도하며 목사를 섬기라고 말한 적이 없다.

너희 이웃에게 한 일로 너희를 판단한다고 가르쳤다. 사울의 말과 예수의 말 중에 무엇을 따르겠느냐?

 

교회는 집단 살인한 일본을 지지했으며, 예수를 믿고도 악을 행하고 구원의 팔아 자신의 배를 채웠다. 교회에서 가르친 예수 믿으면 천국, 불신하면 지옥이라는 말은 개떡이다. 교회는 늘 악의 축이었다. 히브리 유목민의 섬기는 야훼를 닮아 아브라함처럼 거짓말하고, 야곱처럼 형의 축복을 빼앗았으며, 애굽의 장자를 죽이는 살인을 방조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을 빼앗고 토착민을 죽였듯이, 한국을 침략한 일본을 지지했다.

 

너희가 섬기는 여호와는 예수의 아버지도 아니며 천국의 주인도 아니다.

사악하고 눈먼 히브리 유목민의 신에 불과하다.

 

누가복음 11장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유대 종교인이 지식을 얻고도 육신의 욕망을 위해 거짓말한 것과 같이 목사는 겨자씨만큼의 양심조차 없을뿐더러 예수의 가르침을 저버리고 육의 영광을 좇고 있다.

 

마태복음 12장

33.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아느니라

34.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35.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36.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37.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내면에 선한 열매를 맺은 자와 가시뿐인 자는 시대마다 구분되어 왔다.

인간은 윤회를 통해 예수가 가르친 말씀대로 양과 염소로 구분되고 있다. 좋은 나무는 선한 열매가 내며, 나쁜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를 얻지 못한다.

심판의 기준은 사람의 행위와 말에 있다. 선한 사람은 결코 죽음에 이르는 말을 하지 않는다.

 

누가 이재명을 정죄하고 심판한단 말인가?

 

그는 한국을 파멸에서 구할, 주가 세운 육적 지도자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그를 정죄한 사람은 그보다 더 의로운 자라야 할지니, 주가 그 값을 물을 것이다.

교회와 다른 성경 이야기.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https://cafe.daum.net/good-horse/



도널드 트럼프 이름도 이상하다. 그가 총에 테러를 당하는 모습을 보며 왜 그가 살았는지 궁금했다.
트럼프에 관한 돈, 정치, 여자에 이르기까지 여러 이야기가 있는 모양이다. 몹시 나쁜 놈이라 말한다.
트럼프의 영화도 개봉되어 더 나쁜 놈으로 소문이 나는 모양이다.
 
트럼프가 테러에 죽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지, 그냥 그 사람의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주가 개입한 일인지 궁금했다.
 
윤석렬 공천 개입으로 정신없는 10월 31일 한국에서 외교 전문가의 말이 유튜브에서 흘러나왔다.
트럼프는 전쟁을 아주 싫어한다. 피가 낭자하게 흐르는 것을 싫어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CNN 방송에 전격 출연해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면 24시간 내로 전쟁을 끝내겠다”고 말했다.)과거 인터넷 신문.
 
주의 대답은
 
“트럼프가 인생을 아주 더럽게 살아 죄가 크다고 쳐도 그의 한마디로 전쟁을 하루빨리 종식한다면 죽음에서 살아나는 사람이 수백 수천 수만이 되는데 그럼 그가 죄인이냐? 의인이냐?”
 
옳소이다. 그는 의인입니다.
 
창세기 9장
5. 내가 반드시 너희의 피 곧 너희의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살인은 히브리 유목민의 율법이 있기 전 선포된, 인간을 구원에서 멀어지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창세기 11장

1.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류하며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바벨탑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바벨탑보다 높은 빌딩이 수두룩하지만, 여호와의 진노로 무너지는 빌딩은 없다. 설마 수천 년 전의 문명이 지금의 인간보다 더 높은 건축물을 만들 수 있다고 상상하질 않길 바란다.

 

혼은 윤회를 거쳐 여호와가 말한 죄의 무게가 가득 차면 지상에 흩어지는 죽음을 맞이한다. 구약성경에도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 드물게 나온다. 에녹과 엘리야 정도이다. 이 하늘은 예수가 가르친 천국과 다르다.

 

요한복음 3장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인간은 보이는 육과 내면의 혼으로 살아간다. 혼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나야 영원히 살지만 대부분의 혼은 지상에 흩어지는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 육신의 부모와 혼의 부모가 다른 이유이다. 예수의 육은 마리아와 사가랴에서 태어났지만, 영은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은 사실이다. 이것을 교회는 마리아가 남자 없이 혼자 임신했다고 가르친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신약 성경을 다시 읽어보라. 육신의 예수와 영의 예수를 보게 된다.

 

창세기 3장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아담의 혼이 영생의 영으로 회복되어야 영원히 산다. 영생의 영으로 만드는 방법 중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일로 신들이 아담의 영생을 막아 버렸다.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길이고 진리고 생명이라 가르쳤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행하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많은 교회와 성도가 있어도 예수를 닮은 자가 없는 것은 그들이 거짓 교리를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6장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혼의 몸은 윤회를 거쳐 육의 시간으로 1000년을 넘지 못한다. 예수는 보이는 육신이 아닌 내면의 혼을 영으로 회복시켜 아버지 나라로 인도하기 위해 지상에 강림했다.

 

요한복음 15장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혼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나는 방법은 에덴동산의 생명나무 열매를 먹는 것과 예수를 믿고 그의 가르침대로 선의 열매를 맺는 것이다. 혼이 영으로 거듭나는 것을 비유하면 새의 알에서 부화하는 새와 같다. 알 속의 작은 세계관에서 거듭나지 못하면 썩어버리거나 다른 동물의 먹잇감이 된다. 날개를 단 새가 경험할 시각적 공간적인 세계관은 엄청나다.

 

예수의 진리를 배운 사람은 새와 같이 종교적 교리나 인간의 지식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이해하는 경지에 이른다. 삶과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더 많은 열매 맺기를 당부했다. 영의 세계는 시간의 개념은 없어도 공간의 개념은 있다. 영의 수준 즉 완성도에 따라 거처하는 공간이 다르다.

 

요한복음 14장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예수의 제자는 천국 아버지 나라에 들어가기엔 부족한 영들이었다. 그런 이유로 예수는 그들이 머물 임시 거처를 마련하고 다시 지상에 강림하여 제자들을 인도했다. 이것이 영으로 강림한 예수의 부활이다. 예수가 육신으로 부활했다는 낭설을 믿는 이는 없길 바란다. 살리고자 하는 것이 영이라 가르친 예수가 육신으로 부활했다는 오류를 범하지 말라.

 

부활한 예수의 영은 제한적으로 그의 제자에게 보였다. 그리고 모습과 행위가 육신의 예수와 달랐다. 부활한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제자의 이야기를 읽어보라. 사람은 보이는 육과 내면의 혼으로 두 사람이 존재한다. 혼은 육신을 입기 전 망각의 물을 마시고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 아담에게 입힌 짐승의 몸 즉 가죽옷이 우리의 육신이다.

 

노아 때 일어난 심판은 육의 죽음이 아니라 혼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지구가 온통 물에 잠겼다거나 방주에 모든 동식물의 종을 보존했다는 교회의 억지 해석은 오류를 만들어냈다. 아브라함 이전의 이야기는 영의 세계에 일어난 혼의 인간 이야기이다. 창세기는 아담이 창조되자마자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농사를 짓고 아벨은 가축을 기른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단 말인가. 육신의 진화를 무시하면 본질적인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

 

창세기 6장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홍수 이야기는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을 무작위로 강간한 죄로 인간이 심판을 받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유대인의 창조설 또는 그들의 역사를 얼마나 신뢰하는가? 교회처럼 맹신하는 일은 종교의 타락을 불러왔다. 예수의 가르침 외의 이야기는 글쓴이에게서 다시 배워야 한다. 주의 가르침이다.

 

홍수로 기록된 신의 심판으로 죽음을 맞이한 혼들이 많았다. 영으로 거듭나지 못한 혼은 지면에 흩어진다. 이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두 번째 죽음이다. 노아 때 살아남은 자들이 지상을 다스리는 신으로부터 죽음을 면하고자 더 높은 하나님을 찾는 여정을 시작했으나, 이것을 바벨탑이란 거짓말로 인간을 속이고 있다.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신이 악하며 심판 또한 공정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인간을 정죄할 율법이 등장한다. 처음 선포된 율법이 살인은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강력하고 누구도 벗어나지 못하는 육신의 법이다.

 

홍수에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 받고자 더 높은 하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이들의 여정은 길고 험난했다.

 

지상을 다스리는 여호와는 천국의 아버지가 아니며 선하지도 않다. 그는 무지하고 폭력적이며 집단살인을 일삼는 신이다. 그런 여호와를 교회가 섬기고 있다.

예수는 히브리 유목민의 신이 유일하지 않으며 선하지도 않다고 말했다. 이것은 유대인들이 말하는 신성모독으로 예수를 죽이는 빌미를 마련했다.

 

예수는 진짜 하나님과 빛의 세계를 가르쳤고 교회는 그의 가르침을 구약의 여호와로 덮어버렸다. 그들은 진리를 버렸다.

 

인생이 단지 눈에 보이는 육체만 있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거듭나지 못한 혼은 신들이 선포한 율법에 따라 죽음을 맞이한다. 지금은 예수가 언급한 추수 때이며 모든 혼의 심판의 시간이다. 예수 또한 열매 맺지 못한 가리지는 불태운다고 말했다.

 

요한복음 8장

31.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글쓴이의 글을 읽어라. 주의 가르침이다.

 

여호와가 여자를 하대하는 이유가 있다.

 

보이는 세계는 규칙과 질서가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는 우두머리 통치자의 권위로 계급과 힘으로 유지된다. 그곳은 예수가 가르친 천국과 다르다.

지상에 있는 동물은 성관계의 산물이지만, 혼의 인간은 그렇게 생산되지 않는다.

 

창세기 아담은 육신의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보이는 육과 내면의 혼으로 살아간다. 먼저 영의 세계요 다음이 육의 세계다. 유일하신 천국의 아버지가 존재했고 그의 아들 그리스도의 세계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

중 오류가 발생했다. 그 오류를 글쓴이는 얄다바오트라 부른다. 그는 어둠이며 교만하고 진리에 어둡다. 그가 천국의 권능을 훔쳐 달아나 자신을 위한 세계를 창조했다. 이것이 우리가 속해 있는 세상이다.

천국의 아들은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왔고 그 마지막 여정이 예수의 재림이라 말하는 추수

때이다.

 

얄다바오트의 다른 이름은 사탄, 무지, 혼돈, 교만이라 부르기도 한다. 얄다바오트의 세계는 여성성의 영이 없다. 그 세계의 신들은 모두가 남성성의 다양한 형태의 존재물이다. 지상에서 보는 뱀의 형상, , 독수리, 곰처럼 다양하다. 물론 짐승의 모양과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 모습을 모방하여 지구가 만들어졌다. 태양계를 의미한다.

 

태양계를 넘어선 곳의 주인을 우주의 아버지라 부르며 그 이름이 얄다바오트다. 천국은 그 세계를 넘어서 모든 것을 포함한 세계이다. “죽었더니 천국에 왔더라이 말은 지상의 신들이 인간을 속이려는 거짓말이다. 이를 거짓 진리라 말한다. 지상을 다스리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부르는 엘로힘과 야훼는 얄다바오트의 아들이며 그들은 거짓 진리로 인간이 진실을 발견하지 못하도록 눈을 가렸다. 이것이 구약 성경의 율법이다. 글쓴이의 성경의 기본을 읽어보라.

 

아들의 세계에 발생한 오류를 바로 잡기 위해 얄다바오트의 세계로 하강한 첫 번째 사건에서 아담의 창조가 시작된다. 어둠 속에 하강한 빛은 얄다바오트의 창조물과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밝고 아름다웠다. 어둠은 그 빛으로 인해 흔들렸다. 그러나 구세주는 어둠의 세계가 파괴되기 전에 빠르게 그곳을 떠났다. 어둠과 무질서의 세계가 아직도 존재하는 이유는 얄다바오트가 훔친 천국의 권능을 되찾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장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은 세상은 어둠이고 빛이 하강하여 자기 백성을 구출하러 예수가 왔다고 전하고 있다. 어둠의 주인은 교회가 섬기는 히브리 유목민의 신이다.

 

창세기 1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의 태초는 인간이 살게 될 공간으로 혼돈과 황폐함으로 가득한 세상을 정비하는 과정을 말한다. 얄다바오트가 만든 세상의 일부분이며 그의 아들 여호와가 강림하여 새롭게 한다는 내용이다. 요한의 증거는 이 모든 세계 이전을 말한다. 이 가르침을 이해하는 자는 복이 있다. 문 앞에 와 있음이다.

 

그럼, 인간 창조 여정을 떠나보자. 어둠은 자신의 세계에 나타난 빛의 아름다움을 보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창조주보다 더 위대한 신이 있을지 모른다는 의문이 들었다. 얄다바오트의 세계는 각각의 세계를 다스리는 신들과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천사라 불리는 영생의 영들로 이루어져 있다.

 

천사는 천국의 자녀가 아니라 어둠의 종들이며, 신의 명령을 거역하는 자들은 사탄이라 부른다.

천사들의 동요에 신들은 자신의 눈으로 본 천국 아들의 형상을 본떠 새로운 인간을 창조한다. 즉 얄다바오트가 본 형상을 기반으로 아담이 만들어진다. 천사들에게 능력을 과시하려는 얄다바오트의 오만이 인간의 시작점이다.

 

얄다바오트는 자신의 왕국을 항해 이렇게 외쳤다.

천사들아, 나를 불신하지 말라. 나는 너희가 본 것과 같은 것을 창조할 위대한 신이다. 창조물은 창조주의 위대한 능력에 머리를 조아리길 바란다.”

나외 다른 신은 없다.”

 

이것이 교회가 믿고 있는 유일신 사상의 시작점이며 그들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통일하여 부른다.

어둠의 권능 자들은 힘을 합쳐 천국 아들의 모양을 모방하여 혼의 아담을 만들었지만, 아담은 깨어나지 않았다.

 

창세기 2장

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창조물인 아담이 깨어나지 않자 무지한 어둠은 천국에서 훔친 권능을 아담에게 불어 넣었고 아담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국의 아들이 찾고자 한 천국의 권능이 얄다바오트에서 아담으로 옮겨지는 순간이다.

여기서 운명의 수레바퀴 같은 인간의 고통이 시작된다. 우리가 보는 육신의 모양은 혼의 인간을 닮아 진화했고, 혼의 아담은 천국 아들의 모양에 따라 지어졌다. 이리 무리 속 한 마리 어린 양 같은 처지가 아담이다.

 

왜 구세주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지상에 하강하는지 뜻을 이해했는가?

천국의 아들은 모든 것을 원 상태로 되돌려 놓기 위해 인간 예수로 나타났다. 아담이 깨어나지 않는 것은 모양은 천국의 아들을 닮았고 속은 사악한 신들의 본성으로 채워졌기 때문으로 자동차에 물을 넣고 달리려는 것과 같다.

 

인간의 창조는 사악하고 무지했다. 그러나 내면의 깊은 곳에 천국의 빛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물론 모든 인간의 혼이 빛을 품은 것은 아니다.

 

예수는 인간도 알곡과 가라지가 있다고 가르쳤다. 알곡처럼 천국의 빛을 품은 위대한 인간도 있는 반면, 오만과 사악함으로 가득 찬 인간도 무수히 존재한다.

 

각설하고 아담으로 돌아가서 아담은 얄다바오트가 불어 넣은 생기로 일어났고 어둠의 세계의 전리품으로 에덴으로 옮겨졌다. 아담의 시작은 얄다바오트의 자랑거리로 전리품에 불과했다. 동물원의 원숭이와 같은 입장이다. 혹성탈출 오리지널 영화를 보면 이해를 돕는다.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교회는 가르친다.

 

창세기 2장

20.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아담을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든다. 여자가 창조되는 원인에는 다른 이야기가 있지만 여기선 생략한다. 여자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었단 말이 아담 안에 있는 천국 빛의 일부를 가져와 여자를 채우고 일으켰단 말과 같다. 이렇게 얄다바오트가 천국에서 훔친 빛은 혼의 인간 아담과 여자로 옮겨진다.

그리고 혼의 아담과 여자가 신의 명령을 거역하여 에덴에서 쫓겨난다. 그곳은 얄다바오트의 세계, 가장 낮은 곳이며 지금 인간이 사는 지상이다.

 

창세기 1장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지상은 얄다바오트의 창조물의 쓰레기장과 같은 곳으로 더럽고 황폐한 곳이었다. 글쓴이의 창세기 글을 읽어보라.

 

창세기 3장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아담과 여자를 짐승의 몸에 보낸 것이 육신의 아담 시작으로 유인원이나 원숭이와 다르다. 가죽옷은 짐승의 몸이며 혼의 감옥이자 인간의 동굴이다.

 

혼의 인간을 담은 짐승의 몸은 원숭이나 다른 포유류와 다르게 진화한다. 엘로힘은 혼의 인간이 입을 옷을 새롭게 만든다. 모든 짐승에게 혼이 들어갈 수 있지만 오랜 시간 살아가지 못한다. 예수 앞에 군대란 귀신이 돼지 몸에 들어간 사건을 읽어보라. 이 사건에도 많은 비밀이 있다. 신약의 예수 가르침을 전할 날이 속히 오길 바란다. 이 글을 이해하는 자는 복이 있다.

 

창세기의 이야기가 시간순이나 6,000년의 제한적인 이야기로 믿는 사람은 없길 바란다. 아브라함 이전 12,000년을 넘어 80,000년을 넘는 방대하고 긴 이야기가 있다. 인류사를 구약 성경을 기준으로 해석하는 어리석은 일은 멈추어야 한다.

 

아담이 짐승의 몸으로 보내지고 아담은 그 옷을 벗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신은 다시 짐승의 육체를 입히는 긴 윤회의 과정을 설명할 날이 꼭 오길 바란다. 제발 교회의 교리에서 벗어나라.

 

혼의 인간은 아담과 여자가 유일했다. 물론 신들이 혼의 인간을 더 만든다고 해도 혼을 일으켜 세울 천국의 빛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움직이지 못하는 폐기물에 불과하다.

 

마태복음 15장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구세주가 지상에 육신을 입고 인간으로 온 이유가 해결되는 시점이다. 얄다바오트가 훔쳐 달아난 천국의 빛이 육신의 몸에 있다는 말이다. 그들을 잃어버린 양 또는 아버지가 선택한 백성이라 예수는 말했다. 그럼, 왜 유대인에서 그들을 찾아야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다음에 신약 성경에서 가르친다.

 

어떤 이는 아담의 몸에서 무한정 천국의 빛을 뽑아 다른 혼을 생산하면 되는 것을 왜 만들지 않았느냐 묻는 이가 있다면 복이 있다. 너희가 나의 말을 이해하고 있음이다. 어둠이 천국의 아들을 닮은 혼을 생산하는 일은 엄청나 시간과 모든 신들의 능력을 합쳐야 하는 일이다. 글쓴이의 글을 따라오면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 혼의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아담에게 불어 넣은 생기 즉 천국의 빛이 가장 깊은 곳으로 숨어버린다. 이때가 인간에게 나타난 구세주의 첫 번째 강림이다. 구세주는 아담이 무지를 발견하도록 도왔고 빛은 어둠을 피해 깊은 곳으로 숨었다. 뱀은 여자에게 창조주의 비밀을 누설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것이 교회가 원죄라는 단어에 가두어 버린 구원의 비밀이다.

 

어둠의 신들은 자신을 닮은 아담과 같은 전리품이 가지길 원했다. 그만큼 혼의 인간이 자신들보다 특별나고 아름다웠단 말이다. 그러나 각각의 신은 혼의 인간을 창조할 능력도 혼을 깨울 천국의 빛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둠이 선택한 것이 여자를 간음하여 혼의 인간을 생산하는 방식이다. 구원과 타락이 여성성의 영을 쟁탈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예수가 혼인 잔치의 비유를 가르친 이유이다.

 

아담의 여자를 얄다바오트가 간음하여 엘로힘과 야훼를 생산하고 모든 신들이 여자를 간음하여 수많은 혼을 생산했다. 이것이 신화에서 보이는 다양하고 복잡한 신들의 이야기다. 영생의 영이 히브리 유목민의 여호와만 있다고 믿는 교회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 교회는 어둠이며 그 아비가 하는 짓을 똑같이 행하고 있다. 자신의 공동체만 이로움을 다하는 이기적이고 교만하며 자신들만 구원받을 거라 믿는 것이다. 이것은 속임수이다.

 

창세기 3장

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20. 아담이 그의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불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머니가 됨이더라

 

신을 배반한 아담은 지상으로 쫓겨나고 지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육신으로 살다 결국 지상에서 소멸하는 운명에 처한다. 지상으로 쫓겨난 아담의 여자는 모든 신의 간음의 대상으로 혼의 모체가 된다.

살아있는 모든 혼의 어머니는 이브이며 영의 세계는 육신의 강간과 다른 형태이지만 여성성이 겪는 고통은 참담하다. 여성이 원하지 않는 권위가 덮치고 자신을 복사하는 방식으로 혼은 태어난다.

 

마태복음 5장

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예수는 이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을 아는 고로 여자를 향해 음욕을 품는 것조차 싫어했다. 육신의 인간에게 이 가르침을 지키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물론 여자를 성욕의 대상으로 보는 일이 괜찮다는 말도 당연히 아니다.

믿는 자들이 거룩하다 부르는 여호와의 민낯을 아는 것이 진실을 보는 걸음의 시작이다. 인간사가 강간으로 시작되었단 말에 충격받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신방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날에 구세주의 가르침은 끝날 것이다.

 

창세기 2장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흘러 나와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11. 첫째의 이름은 비손이라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을 둘렀으며

12. 그 땅의 금은 순금이요 그 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13. 둘째 강의 이름은 기혼이라 구스 온 땅을 둘렀고

14. 셋째 강의 이름은 힛데겔이라 앗수르 동쪽으로 흘렀으며 넷째 강은 유브라데더라

 

무지한 그대들에게 몇 장의 글로 수만 년의 이야기를 어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에덴동산은 영적 세계의 상징적인 장소이지 지구에 있는 지역이나 강이 아니다. 짐승이 무슨 900년을 살고 태어나면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른단 말인가?

창세기는 글쓴이만 해석이 가능하다. 주께서 글쓴이에게 깨우치고 전한 이야기다.

 

에덴에서 시작된 네 개의 강은 혼의 인간 분류이다.

 

첫 번째는 얄다바오트의 후손이며

두 번째는 악한 신들의 후손이며

세 번째는 뱀의 후손이라 부르지만, 그의 대리자 천사 즉 사탄의 후손이며

네 번째가 아담과 여자에게서 난 사람의 자녀들이다.

 

마태복음 13장

3.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예수가 사람의 특성에 따라 네 종류로 분류한 이유를 알겠는가?

그러나 예수가 씨를 뿌리고 난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일이 중요하다.

겨자씨는 작지만, 나무가 된다는 말과 같이 예수가 위대한 이유는 모든 인간에게 천국의 씨앗을 주고 갔다는 사실이다. 원 뜻은 잃어버린 양만 구출하고 떠나면 그만이었지만 이방인 중에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고 그들에게도 기회를 준 것이다. 이 기간이 2,000년이며 누구도 예수 앞에 변명할 사람이 없다. 2,000년 동안 육신의 배만 채우고 산 너희는 여길 떠나라.

 

마태복음 13장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네 부류의 혼의 인간이 혼혈을 생산했고 예수는 그들 속에 생명의 씨앗을 뿌린 후 인간은 알곡과 가라지만 남게 된다. 중간은 없다. 완전한 빛 앞에 어둠은 더욱 짙어지고 혼돈 속 사탄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세상의 끝에는 알곡과 가라지만 존재한다.

 

마태복음 25장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예수의 재림 때는 오직 양과 염소만 존재한다. 열매 맺지 못한 혼의 인간 끝이 이르렀다. 가라지는 불태워지고 알곡은 천국의 아버지 나라로 갈 것이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봐야 하는 이유이다. 지금은 세상 끝이며 재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에덴에서 시작된 네 종류의 혼이 열매 맺은 인간과 열매 맺지 못한 무익한 종으로 구분되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지금까지 악하고 불의에 힘을 쓰고 물질에 장악된 형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이라면 죽음이 두렵고 고통스러울 것이다.

 

인간 내면의 모든 혼은 아담의 여자를 간음하며 생산되었거나 아담과 여자의 관계에서 태어난 혼들이다. 여기서 중요한 사건은 반쪽짜리 혼의 인간은 여성성을 지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신과 여자, 뱀과 여자, 얄다바오트와 여자의 관계에서는 여성성을 가진 혼이 태어나지 않았다.

 

창세기 6장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아담과 여자에서 태어난 후손 중에 여성성을 지닌 딸들이 나니 얄다바오트의 천사들이 지위를 이탈하여 지상에 내려오는 일이 벌어졌다. 아담의 여자는 신들의 전유물이라면 사람의 딸들은 천사가 탐하길 원한 여자들이었다. 천사는 닥치는 대로 여자를 간음하여 자신을 닮은 혼혈족을 생산한다.

 

노아 사건도 다음에 설명한다. 천사가 고통을 감수하면서까지 짐승의 육체를 입는 일인 벌어졌고 배후에 뱀이 존재했다. 창세기의 뱀은 단순한 천사의 우두머리가 아닌 신이었다. 영생의 권능을 지닌 신으로 지상을 다스리는 엘로힘과 야훼를 포함한 대표적인 권능자이다.

 

하늘을 떠나 지상으로 찾아드는 천사의 무리를 참지 못한 얄다바오트는 그들을 사탄이라 부르며 자신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분리하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사람의 후손과 사탄에게서 혼혈족의 혼이 생산된다. 이 사건은 천사의 범죄가 오히려 인간의 잘못으로 기록되어 인간을 심판했다는 이야기로 노아의 홍수 심판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면 기가 막힌다.

 

지상에 육체는 남성과 여성이 비슷하게 반반으로 존재한다. 보이는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이 규칙과 질서라고 서두에서 말했다. 여기에 움직임이 포함된다. 진동 또는 순환이라 말하기도 한다. 이런 세계를 살고 있는 인간은 빛과 어둠이 반반 혹은 왼손과 오른손, 밀물과 썰물과 같이 균형적으로 영적 세계가 존재할 것이라 착각했다. 그러나 실상은 온통 어둠인 이곳에 부분의 빛이 존재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혼의 성 비율은 생각지도 못할 정도로 여성성의 혼이 적다. (천국은 여성 남성의 구분이 없다. 중성이란 말이 아니라 인간이 말하는 구분이 없다는 뜻으로 완성급의 서열만 있을 뿐이다.)

 

세상을 지배한 다수의 남성과 여성의 육체를 가졌지만, 남성의 기질로 세상 앞에 서 있던 많은 여자 지도자, 개척자가 그러하다. 내면의 혼이 여성성인 경우는 드물다.

영적 세계에서 벌어진 혼의 생산이 간음과 폭행과 같은 형식으로 생산된 것으로 이것을 글쓴이는 영적인 위안부라 말한다.

 

영적 세계는 시간의 개념은 없고 공간만 존재하며 계급과 힘으로 유지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얄다바오트를 닮아 여성을 간음하여 생산하는 방식을 택했으므로 신들은 여성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형태가 여호와를 통해 세상에 표출되었다.

 

여성 성에게 가해진 폭행은 인간사의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으로 글쓴이는 운명의 수레바퀴라 말한다. 이 고리를 끊어낼 유일한 길은 지식의 높은 산에서 구세주를 만나는 것이다.

 

주의 대답은 이러하다.

“여자를 간음하고 더럽혔으니 존중하지 않고 하대하는 것이다.”

 

신들은 여성의 혼이 중요했지만, 사랑의 관계가 아닌 간음의 형식으로 혼을 생산했으므로 여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특히 구약의 야훼는 이런 형태가 강하게 보이는 이유이다. 창조주 엘로힘과 격심하게 다르며 더욱 악하다.

 

야훼는 지상을 장악하려는 의도로 히브리 유목민에게 자신만이 유일한 신이며 다른 형상의 신을 섬기는 일을 엄격히 경고하고 있다. 아브라함 이전의 내용은 영적인 사건이지 육의 일이 아니다. 이 말은 야훼가 여성성을 인정하지 않은 오류에서 망친 기간이 2,000년이나 된다는 말이다. 야훼가 아브라함을 부른 것은 그가 믿음이 좋거나 순종적이어서가 아니다. 아브라함 곁의 이복누이 사라 때문임을 알길 바란다. 야훼는 여자의 권위를 무시하고 하대한 대표적인 신이다. 교회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아브라함이 아닌 야곱으로 시작된다. 야곱의 이름이 이스라엘임을 기억하라. 이삭은 야훼가 지상에서 거둔 첫 번째 열매이며 아브라함이 상수리나무에서 만난 세 명의 남자 중에 아버지가 있다.

 

글쓴이는 일본인을 아주 싫어한다. 그 이유가 신의 악한 방식을 잘 배운 민족이 일본인이다.

 

전도서 1장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일본은 고립된 섬나라였고 그들만의 독특한 윤회 방식으로 존재했다. 한마디로 빛이 없어 못된 것만 배워쳐 먹었다고 말한다. 지형적인 이유도 크지만, 본성이 그러하니 다시 그런 혼들이 윤회한다.

 

그들이 전쟁에서 택한 군 위안소는 그의 아비 사탄에게 배운 것으로 참 많이 닮아있다. 보이는 것은 이미 영적인 세계에서 벌어진 일로 해 아래는 새것이 없다. 인간이 행하는 일은 자발적인 새것이 아닌 이미 벌어진 일의 모방이라 보면 된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빛으로 항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빛을 피해 숨는다.

 

요한복음 8장

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예수 때 대자뷰와 같이 지금 우리나라와 일본이 이러하다. 일본의 조상은 자신의 나라가 망할 것을 알고 한국을 침략하길 오랫동안 벌여왔다. 이젠 아예 한국인의 육신을 입고 자국을 지지하고 있으니 그들을 친일파라 부른다. 그러나 실제 내면의 혼이 일본의 전생을 가진 일본 사람이다. 미래에 사람은 지향하는 사상 즉 추구하는 진리로 구분된다.

 

일본인이 한국과 중국 등의 여자를 전쟁을 제물로 바치고 더럽힌 죄는 절대 용서받지 못한다. 이미 참회를 빌어야 할 위안부 고통의 삶을 산 할머니가 죽고 없기 때문이다. 용서를 빌 대상이 사라지므로 모든 죄를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마태복음 16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땅에서 지은 죄는 땅에서 풀지 못하면 방법이 없다. 참회할 대상이 사라졌음이다. 그리 오랜 시간 사과의 한마디를 듣고자 한 여자의 눈물을 외면한 나라는 지구에서 사라져야 한다.

일본은 스스로 망하는 길을 택했고 그 길에 동참하는 친일파는 한국에 없어져야 한다.

 

일본이 벌인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죽은 누군가는 2024년의 거리에서 집회하고 우리나라 국민을 죽인 일본인으로 한국의 친일파로 윤회해 있다.

 

전쟁의 고통을 겪은 인생들에 주의 안위를 구하며 선한 혼들만 한국에 윤회하길 기도한다. 그리고 세계의 대한민국이 되는 날을 글쓴이는 주의 이름으로 기다린다.

 

교회와 다른 성경 이야기.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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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로 장사하는 자의 말을 믿지 말고 진짜 예수의 가르침을 들어라.
 
구원은 육이 아닌 내면의 혼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나면 받는 구세주의 축복이다. 예수는 인간이 살아서 어떻게 해야 구원에 이르는지 가르쳤지만, 종교 팔이 하는 자는 예수의 가르침을 뒷전으로 숨기고 히브리 경전과 사울 서신을 설교하는 일에 열중한다. 그들이 구세주의 가르침을 뒷전에 두는 것은 그의 가르침은 어렵고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종교를 팔아 육신의 배를 채운 사람은 곧 심판에 이른다.
 
구원의 시작은 예수와 그가 가르친 천국의 아버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천국의 아버지는 구약의 여호와를 넘어선 존재이며,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구원에 이르는지 보자. 예수는 자신이 떠날 것을 알고 남겨진 사람들을 위해 목자로 베드로를 선택했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천국에 가지 못하고 나머지 공부를 하는 재수생과 같은 입장이었다.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베드로를 칭송하지만, 실상은 요한과 마리아, 도마, 빌립과 같은 제자보다 수준이 한참 낮았다. 다른 제자는 예수와 함께 천국의 거처로 옮겨가지만, 그는 지상에 남겨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예수의 부활 때, 어린양을 먹일 것을 베드로에게 강하게 언급한 장면을 기억하라.
 
마태복음 3장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천국의 문은 인간사에서 예수가 세례를 받는 이때 유일하게 열렸다. 지금도 닫혀있으며, 그 문을 열 수 있는 존재는 재림하는 구세주뿐이다. 여호와는 천국의 아버지가 아니다. 히브리 유목민의 신으로 악하고 어리석다.
예수가 세례를 받는 순간 천국의 문은 열렸고 천국의 아버지와 예수가 선택한 사람만이 그 문을 통해 구원을 받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열려있는 천국 문을 침략하려는 어둠의 세력이 나타났다.
그 원인에는 세례 주는 요한의 배신이 있다.
 
마태복음 11장
1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12.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13.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요한의 배신으로 구세주는 홀로 지상에 있는 어둠의 세력을 상대해야 했으며 결국 죽음에 이르는 일이 벌어졌다. 요한의 배신으로 사탄에게 40일 동안 고난을 받은 사건을 기억하라. 요한은 천국 문을 지키는 수문장과 같은 존재였다. 글쓴이의 성경의 기본을 읽어라.
 
금은보화가 가득한 집에 대문이 열려있고 그 문을 지키는 군사가 없다면 그곳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보라. 천국을 탐하는 악한 영들이 빼앗으려 하니 예수는 급히 지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이 예수가 공생애 기간을 4년도 채우지 못하고 죽은 근본적인 원인이다. 예수와 사랑하는 몇 명의 제자가 천국에 들어가고 그 문은 굳게 닫혀버렸다. 예수가 떠나기 전에 다시 지상에 강림하여 가라지를 태우고 알곡은 곳간에 들인다는 약속을 했다. 이것이 두 번째 인간에게 열리는 천국의 입성이다. 예수의 재림은 양과 염소를 가르는 일이요, 열매 맺지 못한 가지를 불태우는 일이며, 의롭고 충성스러운 자녀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마지막 여정이다.
 
마태복음 16장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사건이 실제 있었는지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믿음이 적고 말이 많으며 혈기가 넘치는 사람으로 예수를 부인하는 장면도 나온다. 이 사건을 설명하면, 지상에 남겨질 베드로에게 답을 알려주고 다시 예수가 올 때까지 어린 양을 잘 양육하라고 천국의 아버지가 억지 계시를 주신 것이다.
베드로가 결코 훌륭해서가 아니라 따라오지 못하는 자 중에 머리로 세운 것이란 뜻이다. 18절은 설명이 긴 연고로 다음에 가르친다.
 
마태복음 16장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짧게 끝난 예수의 공생애는 남겨진 이들에게 엄청난 슬픔이었다. 그들을 이끌 목자로 베드로를 세웠고 예수가 떠나면 닫힐 천국의 문을 여는 비밀을 가르쳤다. 그것이 위의 내용으로 베드로가 땅에서 의와 선과 공의를 베푸는 만큼 천국에 가까이 이를 것이요, 살인과 거짓과 탐욕과 비난을 하는 만큼 천국에서 멀어진다고 말했다. 그럼, 베드로는 구원을 받았을까? 마지막 가톨릭의 교황이다. 놉.
 
믿는 사람들이 땅에서 선과 의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이 이치를 몰라 악을 행하고 종교적인 이기심에 타인을 배반한다. 아무리 열심히 예배를 보고 많은 돈의 헌금하고 기도해도 절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선교에 목숨을 거는 사람의 비유는 소경이 소경을 안내하는 것이라 말한 예수의 가르침을 기억하라. 결국 모두가 구덩이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다. 교회에서 가르친 교리로 천국에 간다는 말은 예수의 가르침엔 없다.
 
마태복음 5장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땅에서 지은 죄는 땅에서 풀어야 한다. 사람을 죽이고 때린 교인이 가톨릭 성직자에게 고백한다고 죄가 사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얼마나 꼴사나운 일인가? 폭행을 당한 사람은 따로 있고, 사기를 당한 사람은 피눈물을 흘리는데 입으로 몇 마디 한다고 죄가 없어진다고 가르치니 종교를 파는 사람의 머리가 참으로 비상하다.
 
예수는 분명히 땅에서 일어난 일은 땅에서 풀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사람에게 지은 죄를 구세주가 사해주는 일은 없다. 다만 구약의 여호와가 만든 율법의 구속에서 인간을 해방하기 위해 병자에게 “죄 사함을 받아라.”라고 말한 것이다. 예수가 병자에게 말한 죄 사함은 많은 의미가 있다. 긴 이야기라 다음에 전한다.
 
글쓴이의 어린 시절, 그러니까 중학교를 막 입학한 첫 번째 체육 시간이었다. 교사가 교실에 들어왔고 첫 수업을 받는 아이들은 늘 그렇듯 소란스럽고 정리가 안 돼 있었다. 교사가 학생 하나를 불렀다. 그리고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가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조차 싫을 정도이다. 영문도 모른 채 폭행을 당한 아이는 글쓴이 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교사는 나와 같은 동네에 사는 교회의 집사였다. 글쓴이가 교회와 교인을 신뢰하지 않는 이유 중에 그 교사도 포함되어 있다.
 
글쓴이에게 구세주가 그를 용서할 것인지 묻는다면 아니라고 말할 것이다.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아 내가 지옥 가는 일은 없다. 내가 용서하고 사랑하고 긍휼을 베풀 대상은 아버지의 선택을 받은 자녀로 구세주의 가르침으로 선과 의를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다.
양의 탈을 쓴 이리는 용서의 대상이 아니라 피하고 멀리할 사람들이다.
 
상처를 받거나 폭행을 당한 대상이 어린아이라면 더욱 용서하는 일은 절대 없다. 예수가 어린아이를 잘 보살피라고 한 말을 기억하라. 베드로에게 맡기고 간 어린 양을 기억하라. 인간은 윤회를 거듭하고 오직 육신으로 진리를 깨우친다. 영적인 세계에 진리가 전해졌다면 이미 그곳은 파괴되고 없어졌을 것이다. 글쓴이의 창세기를 읽어라. 예수가 떠나고 태어날 아이와 2025년에 태어날 아이 속에 빛의 자녀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앞으로 태어날 아이 내면에 어떤 영혼이 있을지 모른다. 아이를 아끼고 사랑하라.
 
인간의 분류도 다양하다. 국가별, 피부 색깔별, 유전적으로 다양하게 분류한다. 마찬가지로 혼의 인간도 한 가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창세기 아담의 이야기를 보라. 에덴에서 시작된 네 개의 강은 혼의 인간이 네 종류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며, 예수가 씨를 뿌린 밭이 네 가지인 것도 혼의 종류가 크게 네 가지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르면 죄를 당한 사람에게 용서와 참회를 빌지 않고 판사에게 선처를 구하거나 용서를 비는 일이 일어난다. 어이없고 웃기는 일이다. 땅에서 지은 일을 땅에서 풀지 못하거나 판결을 굽게 한 판사와 죄인은 구세주의 심판을 받는다.
 

 

참회는 당사자에게 받아야 한다. 목사나 신부에게 입으로 나불거리는 말과 몇 마디의 중언부언하는 기도로 해결되는 일은 없다. 때가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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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보이는 육과 내면의 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요한복음 3장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육과 혼과 영의 개념을 모르는 제자들과 성경을 해석하는 이들로 인해 혼돈이 생겼다. 인간은 먼저 혼의 아담이 창조되고, 그 다음에 짐승의 몸이 만들어진다.

 

창세기 3장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혼의 아담이 보이는 지상으로 쫓겨날 때 짐승의 육체를 입게 된다. 아담은 영생의 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필요조건에 의해 영생을 하거나 우주의 에너지로 흩어지는 혼으로 창조되었다. 그 전제는 창조주의 말에 절대복종하며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 포함되어 있다.

 

혼은 두 가지로 나눠진다. 땅에서 소멸하는 짐승의 에너지가 있고, 즉 고양이의 별은 없다. 반려동물과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길 바란다. 인간의 혼은 영적 세계를 넘나들며 윤회를 거듭한다. 최대 1000년의 기간 동안 혼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소멸이란 죽음을 맞이한다. 지옥이나 새 예루살렘 성전과 같은 단어는 여호와가 선택한 백성을 위한 장소이지 일반인들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여호와의 성전은 예수가 증거한 천국과 다르다.

 

여호와를 넘어선 곳에 예수가 증거한 천국이 있다.

 

각설하고, 혼은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는 일을 해야 한다.

 

요한복음 6장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모든 인간은 죽는다. 죽음을 경험하고 살아 돌아온 사람도 죽는다. 육신으로 영원히 사는 일은 없다. 예수가 구원하길 바란 것은 인간의 내면에 갇혀 있는 혼의 몸이다. 혼의 몸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나면 진리를 발견한다.

 

예수가 농부, 씨뿌리는 자, 겨자씨와 같은 가르침을 전한 것을 기억하라. 혼은 예수의 가르침에 따라 지식의 높은 산에 오르면 눈과 귀가 열리는 일이 발생한다. 이들을 욕망의 불이 사르지 못한다. 이들은 육신의 죽음을 받아 줄 날을 기다리며 진리를 사랑한다. 이들을 빛의 자녀라 부른다.

영생의 영으로 거듭난 사람은 죽음이 슬프지 않다. 그러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소멸이란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다.

 

예수가 말한 추수 때가 이르렀다. 지금부터 죽는 인간의 혼은 소멸이란 죽음을 맞이한다. 예수는 2000년 전 구원의 길을 가르쳤고 스스로 열매를 맺기를 당부했다. 그러나 교회는 육신의 욕망과 타협하여 육신의 배를 채우는 일에 앞장섰다. 그들의 선택에 대한 심판이 이른다.

앞으로 일어날 죽음이 슬픈 이유는 혼의 심판에 이르렀기에 다시는 기회가 없음이다.

교회와 다른 성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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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려오는 뉴스에 웃음이 나온다. 청와대 관계자가 진보 채널 기자랑 통화한 내용이 나오고 주진우 기자를 만나는 명태균이라는 사람도 등장한다.

정치적 성향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는 것도 웃기는 일이다. 세상에는 혼자 잘 먹고 잘살려는 놈과, 자기끼리 잘 먹으려는 놈들과 그리고 함께 잘살아 보자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인간의 오만은 다른 성향의 사람을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면, 이것이 결국 파멸로 이끌 것이다. 콜걸로 소문이 있는 여사가 진보성향의 기자를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이 스스로 망하는 시작점이 된 것과 같다.

 

인간이 사는 세상의 이면인 영적인 세계를 모르면 한국을 좋은 나라로 만들기 어렵다. 또한 혼의 윤회를 모르면 지금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이 망할 것을 안 일본의 조상은 오랜 기간 한국을 탐해왔다. 한국의 30%는 일본의 전생을 가진 일본인의 혼으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 또한 한국에는 예수의 재림을 맞이할 빛의 자녀도 모여있는 곳이다. 진리가 여기서 시작된다.

 

요한복음 1장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창세기 1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세상은 빛이 있기 전 이미 어둠이 가득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없다. 이것을 단순한 깜깜함으로 이해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간이 사는 세상엔 먼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가득했다는 것을 명심하라. 인간이 사는 육적 영적 세계는 얄다바오트가 만든 창조물의 쓰레기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글쓴이의 글 성경의 기본을 읽어라. 얄다바오트는 우주의 아버지라 불리며 엘로힘과 야훼의 아버지이다. 예수가 우리에게 가르친 천국의 아버지는 이들 세 명의 신을 넘어선 존재이다. 그는 빛이고 생명이며 진리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더럽고 징그럽게 느끼는 모든 생명체가 신의 본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예수가 가르친 천국은 아름답지 않고 빛이 없는 어떤 것도 없다. 인간이 사는 지구는 태양의 빛이 없이 존재하지 못한다.

 

각설하고, 세상에는 빛으로 표현된 진리와 어둠으로 표현된 거짓 진리가 있다.

예수는 지상에 있는 인간을 두 부류로 나눈다.

 

마태복음 25장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빛과 어둠.

양과 염소.

알곡과 가라지.

 

이것은 영적 세계가 이렇게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가 전한 천국의 아버지는 창세기 여호와가 아니다. 감히 예수의 가르침과 히브리인의 경전을 함께 묶은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다. 유대인은 구세주를 죽인 민족이며 아직도 그들은 살인을 저지르는 전쟁 중이다.

 

세상을 이분법으로 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생각으로 중도 또는 중용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렇게 신과 인간 사이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무는 존재가 창세기의 뱀이다. 뱀은 천사가 아닌 신의 경지의 영이며 여호와가 손을 잡고 지상의 영역을 확장하는 힘을 빌리는 존재이다. 뱀은 신이며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천사나 사탄이라 말하는 저급한 영들과 아주 다르다.

 

경계의 인간 또는 중도를 표방하는 자를 가장 멀리해야 한다.

 

마태복음 7장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뱀은 신을 섬기며 신앙을 말하지만, 실상은 보석과 돈으로 세상을 지배한다. 뱀의 혀에서는 두 가지 말이 흘러나오며, 정의와 불의를 저울질하고 빛과 어둠을 섞어 희미하게 만든다. 이분법적인 세계관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모두를 아우르는 정책과 하나 된 나라를 만들자고 외치는 모두는 뱀의 혀에서 나오는 말을 하고 있다. 하나 됨을 말하기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

 

빛과 어둠은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물며 상대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이 파멸로 이끌게 된다. 윤석열만큼 흠이 많은 사람도 드물다. 이런 사람과 손을 잡은 문재인은 경계의 인간이다.

 

마태복음 5장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의 가르침은 분명하다. 악과 타협하지 않는다. 어둠에 발끝도 들이지 않는다. 빛은 빛으로 자신의 의로움을 증명하며 주의 날을 기다린다.

 

정치판에 돌아다니는 생각, 즉 상대의 사람을 통제하거나 자신의 입과 돈으로 내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멸망으로 이끌 것이다.

 

교회와 다른 성경 이야기.
2025년 예수 재림의 해
https://cafe.daum.net/good-horse/



어떤 사람 또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자일 수도 있고 남자일 수도 있다. 누군가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이 이성 간에만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그러나 같은 성별을 가진 두 사람이 서로 여자와 남자 역할을 하며 생식기를 제거하고 여장을 하며 성호르몬 주사를 맞는 것은 엄격히 다른 문제이다.

 

좋은 사람, 선한 사람, 의로운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동성에 한정된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인생은 보이는 육신과 보게 될 영의 삶을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

글쓴이가 예수를 오랫동안 사랑한 것이 성관계를 전제로 한 사랑이 아닌 것과 같다.

 

사랑에 대한 뱀의 혀와 같은 이야기는 많다. 그러나 천국의 사랑은 가슴에 담긴 마음이다. 사랑이 익어가거나 깊어지거나 넓어진다는 표현의 확장성을 가진다면 그 감정은 소멸한다. 익으면 시들고, 깊으면 얕아지고, 넓으면 좁아진다.

천국의 사랑은 마음에 담기는 것과 같다. 내 안에 들어왔다”란 표현으로 이해하길 바란다. 그대가 진리의 높은 산을 올라 세상을 바라볼 때 예수의 사랑이 어떤 감정인지 알게 된다.

 

육신의 시간은 혼의 구원을 위한 시간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의 성장과 변화는 오직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 이루어진다. 영적인 세계는 서로 관여하는 영생의 영, 즉 신들이 많으므로 그곳에서 진리의 빛을 찾기 어렵다. 만약 영적인 세계에 예수가 전한 빛이 존재한다면 그 세계는 이미 무너졌을 것이다.

글쓴이 성경의 기본을 읽어라.

 

인간에게 사랑의 대상이 꼭 동일한 성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육체적 관계를 위한 집착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이는 그들이 보이는 육신을 더 사랑함이다.

보이는 세상에서 구원을 위한 사랑은 영적 세계로 연속성을 지니지 못한다면, 그것은 쾌락에 불과하다. 육체적인 감정에 몰입하는 것은 육신의 쾌락을 얻을지 몰라도, 영적인 구원은 없다.

 

윤회를 알지 못하면 거짓 진리를 분별하기 어렵다. 윤회하는 방식이 남자의 육체에 남성성의 혼이 들어오거나 여자의 육체에 여성성의 혼이 들어가는 방식이 아니다. 윤회는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성별과 무관하다. 육신을 입고 있는 혼의 여성성일 가능성은 매우 작다.

많은 여성의 육체에 남성성의 혼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들을 자는 듣길 바란다.

 

영혼의 신비를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혼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나면 영원히 존재한다. 대부분의 혼은 가라지로 불에 태워진다는 표현처럼 소멸한다.

신비의 혼을 담을 육체를 생산하는 일은 거룩한 일이다. 예수가 말한 빛의 자녀 또는 천국 아버지의 선택을 받은 혼이 입을 육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들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진리를 듣고 길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이 천국의 자녀가 된다. 그들은 이 지상을 떠날 것이다.

 

2025년부터 태어나는 아이들을 존중하길 바란다. 그들의 육체에 위대한 혼이 태어날 것이다.

 

 

교회와 다른 성경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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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사람이나 가르치는 사람들이 예수의 말을 가볍게 다루는 일이 많다. 사울의 서신을 인용하고 제자의 말을 들어 예수의 복음 위에 세우는 경향이 아주 높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허락된 곳이 아니다.

 

요한복음 3장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7.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인간은 보이는 육과 내면의 혼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면의 혼이 영생의 영으로 거듭나야 구원을 받는다. 혼이 영으로 거듭나지 못하면 윤회를 거쳐 죄의 무게가 도달하면 우주에 흩어지는 죽음을 맞이한다.

창세기 아담과 여자에게 영생의 문을 닫아버린 여호와를 기억하라.

 

예수가 가르친 천국의 아버지는 유대인의 하나님이 아니며. 예수가 유대인으로 태어난 사실만으로 그가 증거한 신이 여호와라 단정하여 가르친 모든 성직자는 화를 받는다.

 

요한복음 17장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예수는 진짜 하나님을 가르치러 왔다. 지상의 이권을 가진 영생의 신들이 많지만, 그들이 천국의 아버지는 아니다. 구약의 여호와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살인을 서슴지 않는 악한 신이다.

어찌 히브리 유목민의 신이 진리와 사랑과 긍휼과 선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구원은 예수의 가르침을 답습하여 그를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마태복음 6장

5.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에게 칭송받고 영광 받았다면 그 행위에 아버지가 갚을 상이 없다. 이것에 포함되는 사람은 모든 성직자다. 사람을 구제하는 것은 은밀한 중에 함으로 아버지의 상을 기다리는 것이다. 연예인이 뉴스에 마라톤하며 얼마를 기부했다고 대대적인 광고 같은 칭찬 글이 올라온다. 그가 아무리 선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이미 사람의 칭찬과 영광을 받았으므로 천국의 아버지가 갚을 상이 없다.

 

누가복음 21장

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천국을 상속받기 위해 거지로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차고 넘치게 가진 사람이 오천만 원 기부했다는 국민 MC의 이야기를 보면서 이 사람도 천국을 얻지 못한다고 들었다. 일 년에 주식으로 천억을 번 기업 회장이 회삿돈으로 200억을 기부했다는 신문의 글을 보니 교인인 기업 회장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글쓴이에게 전했다.

그의 기부를 이렇게 가르쳤다.

 

그가 땅에서 누린 영광을 하늘에서 누리려는 사악한 행동이다.”

 

우린 살아가는 동안 돈을 번다. 왜 돈을 벌어야 하는가?
비싼 오마카세 식사와 에르메스 사치품을 사고 수억의 자동차를 자랑하며 수백억의 집에서 살기 위함인가?

 

그들 모두는 죽고 예수의 심판이 기다린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 공포와 두려움으로 호소하지만 그를 긍휼히 여길 구세주는 없다. 2025년은 예수가 가르친 혼의 열매를 얻는 추수의 시간이다.

예수는 혼의 몸에 영생의 씨앗을 뿌리고 떠났다. 이것을 알지 못한 제자들이 엉뚱한 지식을 전하 것이 문제가 되었다. 예수의 사망 순간부터 지상에 머문 혼의 인간은 구원을 위한 선과 의의 열매를 맺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었다. 육신의 시간은 100년에 불과하지만 혼의 한세대는 2000년을 넘어서지 못한다.

윤회를 통한 구원은 글쓴이의 글을 읽기 바란다.

지금은 지상에 머무는 혼의 인간도 추수 때이며 영적 세계에 머무는 혼의 인간도 추수 때를 맞이했다.

 

마태복음 19장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예수는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지만, 이 시대는 부자는 천국에 가지 못한다. 2000년 전의 부자와 지금 부자의 규모와 재산 형성의 차이가 크다. 돈은 누군가의 피와 땀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것을 많이 가진 사람은 천국에서 멀어진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보이지 말라 그들은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예수는 땅에서 행한 선과 의가 사람에게 알려져 칭찬과 영광을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갚을 상이 없다고 분명히 가르쳤다. 목사와 성도가 집단으로 모여 행하는 찬양과 기도와 헌금은 천국의 아버지가 받지 않는다.

사람의 무릎 키스를 받은 교황도 아버지가 구원하지 않는다. 성직자가 높은 단상에서 성도의 섬김을 받으며 가르친 모든 행위는 의가 아니다.

 

글쓴이가 어떤 병자를 만나 친절을 베푼 일이 있다. 병자는 감사하여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고 말했다. 물론 글쓴이는 거절했다. 늘 그렇게 살아왔다.

그때 들은 음성이다.

 

“살아서 친절을 베푼 일에 밥과 선물과 돈으로 바꾸면 천국에 갈 노잣돈이 부족하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천국에 들어갈 입장료는 아주 비싸다. 지상의 어떤 돈과 보화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 4장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유대인의 하나님과 예수가 가르친 천국의 아버지는 다른 존재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구원은 없습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창세기에서 아벨이 바친 피의 제물 시작은 인신 공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예수가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그가 가르친 하나님이 히브리 여호와라 판단하는 것은 오류입니다. 이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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