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교회에 헌금하는 액수는 엄청나다. 그 돈을 받는 성직자는 그들에게 야박하게 설교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선한 부자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거나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기부하는 돈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설교하며 기부나 헌금을 강요한다.
이런 설교로 교인을 속이는 목자는 삯꾼이다.
한국의 어떤 기업가는 자신은 1000억을 가지고 회사 돈으로 200억을 기부했다. 언론은 그 회사 사장을 칭찬하며 그리스도인의 모범이라 말한다. 그 돈을 벌기위해 노력한 수많은 회사 직원은 사라지고 회장의 업적으로만 기억한다.
당신은 헌금의 액수와 교회의 크기가 구원과 상관없다는 말을 이해하길 바란다. 보이는 물질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 천국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교회의 교리를 조심하라.
당신이 길고 먼 이야기처럼 생각한 구세주의 발걸음이 당신의 눈앞에 왔다. 추수때가 되어 그동안 성실히 복음을 지키고, 가르침에 마음을 다 했는지 예수가 묻고 있다.
2000년이란 시간은 인간에게 길고 긴 망각의 시간이지만 영원한 나라의 입장에서는 인간에게 베푼 기회의 시간이다.
육신이 죽어도 그 혼이 매일의 심판과 매일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여호와가 인간에게 베푼 혼의 구원은 여러 생을 살도록 허락한 것이다.
“이것이 윤회다.”
“재림.”
인간이 살아가는 100년 정도의 시간으로는 혼의 몸을 심판하기 어렵다. 각자가 가진 죄의 분량이 채워져야 소멸이란 심판을 받는다. 그런데 각각의 인생이 의와 죄가 교묘하게 뒤섞여 있다. 그리하여 죄를 청산하면 그 무게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 이유로 큰 죄를 지은 사람도 한번 이상 지상에 재림한다.
여기서 의문을 가지는 교인들이 있다. 왜 악한 사람에게 재림을 통해 다시 지상에 태어나 세상을 어지럽게 하는지 궁금할 것이다. 이 문제는 창세기에 다루겠지만 짧게 설명을 하면 여호와의 아버지 즉 우두머리 통치자의 세계도 나름의 법칙이란 것이 존재한다. 악한 세계도 유지되기 위한 명분이 필요하다.
그 시작점이 홍수 심판이다. 명분 없는 심판은 인간이 신에게 반기를 들고 참 아버지를 찾는 구실을 제공했다.
이것이 바벨탑의 사건이다.
여호와를 믿는 그들에게 명분 없는 심판은 영적인 세계에서 엄청난 혼돈을 야기했다. 그들이 그런 죽음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믿는 여호와를 대신한 다른 신을 찾는 과정을 그려지고 있다.
자신들의 존재와 이름을 하늘에 알려 여호와로 인한 죽음을 피하려는 내용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진짜 하나님을 찾아서 떠나는 여정 중에 여호와가 그 길을 막았다.
어둠의 통치자가 혼의 인간을 심판하는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을 충족하면 소멸에 이른다. 그것이 율법에서 말하는 죄이다.
율법을 따르는 사람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간략하게 설명하면 여호와를 믿고 섬기는 사람은 여러 생을 통해 육신이 잘먹고 잘사는 것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그의 명령에서 벗어나는 인간은 마지막 정산에서 심판을 받는다. 필요에 따라 죽음의 감옥에서 다시 부활시키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에 부활시키는 144,000명의 이스라엘 백성. (요한계시록편을 읽어라)
마태복음 5장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예수는 율법이 미완성의 법이며 자신이 완전하게 한다고 말했다. 율법은 육신의 욕구를 제제하고 다툼을 방지할 수는 있지만 혼의 몸을 살려 영생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다.
요약하면 먹고 사는 동안 필요하지만 영생을 위한 법은 아니다. 그런 이유로 예수는 모세가 준 만나를 먹어서도 너희 조상은 죽었고 나의 가르침은 영원히 살게 한다고 말했다.
율법안에 있는 사람은 영생이 없다. 다만 죄의 문제를 얼마나 잘 해결하는지가 관건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죄의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죄의 무게는 점점 무거워지고 결국 혼은 소멸이란 심판을 받는다.
아버지의 나라는 천국만 존재한다. 지옥이나 음부, 무저갱은 여호와가 영혼을 처리하기 위해 만든 장소이다.
다시 죄의 문제로 돌아가서 인간은 각자가 지은 죄의 값이 충만해지면 소멸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지상에 육신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죄의 무게를 채우기 위한 시간이다.
지상의 부귀영화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그들에게 이번 생이 마지막임을 스스로가 느끼기 때문이다.
평생을 버려도 다 버리지 못하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예수의 가르침은 멀리하고 오히려 자신처럼 살아야 한다고 광고한다.
그들은 다시는 지상에 오지 못하며 심판만이 그들을 기다린다.
부자는 대부분이 마지막 생이다.
이 세상의 이치와 흐름을 감각적으로 아는 그들이 과연 처음 이 세상에 온 영혼일까?
부자가 이룬 엄청난 부가 여호와의 계획 없이 혼자 이룬 성과일까?
마가복음 12장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는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천국을 갈망하는 사람을 찾고 있다. 예수의 강림은 천국에 합당한 좋은 진주 같은 사람, 좋은 물고기 같은 사람을 찾기 위함이다.
천국을 무엇으로 살 수 있다고 착각하는 교인은 아주 어리석다. 헌금을 많이 하거나 교회에서 봉사를 많이하는 것, 선교를 많이 하는 값으로 천국을 가는 것이 아니다.
육으로 이룬 것은 지상에 남고 오직 의로운 행실로 열매 맺는 영이 그 나라를 들어간다.
2023년에 이 복음이 전해지는 이유는 그때가 되었음이다.
천국에 가는 방법이 사람들이 가진 재능과 능력에 따라 간다면 시작부터 불공평한 것이 아닌가. 이런 천국은 사양한다.
사람마다 재능과 집안이 다르고 처한 입장도 다른데 육신의 기준으로 구원의 값을 평가받는 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자신을 한번 돌아보라.
나는 타인에게 상처주지 않는 사람인가?
나는 타인의 것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인가?
나는 불평과 원망을 하지 않는 사람인가?
나는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나는 내 이웃을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인가?
만약 이런 사람이 아니라면 천국에 들어갔다가 천국을 망치는 꼴이다. 천국의 아버지가 자신의 나라를 망치는 사람을 헌금을 많이 했다는 이유로 들이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많이 지었다거나 성직자란 이유로 자신의 나라에 들이지 않는다.
선하고 공의롭고 진실되며 빛을 사랑하여 서로를 위로하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천국이다.
나는 가난하지만 이웃을 돌보았고
나는 바쁘지만 생명을 사랑했고
나는 힘이 없었지만 정의를 위해 노력했다.
내가 예수에게 드리는 헌금은 나의 선한 마음과 정성스러운 행실이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나는 천국에 가면 누구와도 잘 지내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한다.
그런 천국이 자신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이 너무 행복하고 기뻐서 육신의 욕망을 앞서야 한다.
그들은 그 나라를 상속 받는다.
마태복음 22장
3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예수가 언제 헌금과 십일조를 내라 가르쳤나?
예수가 언제 목사나 성직자가 섬김을 받아도 된다고 가르쳤나?
예수가 언제 선한 행위보다 주일예배를 드리는 것이 크다고 가르쳤나?
예수가 언제 교회를 양들의 집보다 크게 짓기를 가르쳤나?
예수가 언제 인간의 죄가 자신의 이름으로 사라진다고 가르쳤나?
예수가 언제 부자가 천국을 갈 수 있다고 가르쳤나?
사람들의 물질의 값이 아닌 마음과 뜻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시다.
뜻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버리는 사람이 천국을 간다.
육신의 욕망으로 예수의 가르침을 왜곡하는 자는 먼저 심판에 이르리라.
사람이 가진 마음의 값으로 천국은 시작된다. 겨자씨 같은 작은 믿음이면 된다. 구약의 여호와를 버려라. 예수의 가르침에 영생이 있음을 믿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천국의 아버지는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이곳에 교회를 세우거나 헌금으로 목사를 섬기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이곳은 결국 소멸하고 사라지는 곳이다.
1000년 남았다. 그 후 어떻게 될지 궁금하지 않는가?
예수가 죽고 2000년이 지나 다시 복음이 전해지는 이유는 때가 이르렀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12장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법을 저지른 많은 성직자와 예수를 믿으면서 악을 행한 자들의 심판이 이르렀다.
여호와는 자신의 주권안에서 물질의 노예로 인간들이 죄를 짓고 세상을 악하게 만들기를 강요했다.
예수의 이름 안에 모든 종교적인 범죄를 가렸고 종교인들이 자신의 죄를 예수의 이름 뒤에 숨겼다.
이젠 구세주가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여 나누게 될 것이다.
세상은 빛과 어둠으로 나누어진다. 불의와 정의로 나누어지고 평화와 전쟁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구원과 심판으로 나누어진다. 이제 중간은 없다.
예수의 이름을 팔아 불법으로 돈을 벌고 국가의 이권을 챙긴 그들의 심판이 클 것이다.
가난한 자의 마음을 업신여기고 이권이 없는 어린아이들을 멀리한 자들, 정치와 돈의 논리에 자신을 팔아 부를 축척한 그들은 절대 영생을 얻지 못한다.
모든 부자의 헌금보다 자신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선한 생명을 찾고 계신다. 예수가 뿌린 씨앗이 열매가 되어 다시오실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다.
예수를 믿고 가르침에 순종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이 천국에 들어간다.
교회의 숫자는 늘어나도 예수의 가르침은 후퇴하고 있다. 모두가 본질보다 교회와 집단의 교리에 빠져 눈이 멀었다.
교회는 세습되고 돈으로 성직자의 자리도 팔리고 있다. 정치적인 이권에 참여하여 돈을 벌어들이는 교회가 한국에는 많다.
많은 사람이 불의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노동자는 죽음으로 응답하는 세상에서 침묵하는 모든 성직자는 깊은 어둠에 가둔다고 말씀하셨다.
“불법을 행하는 자는 깊은 어둠에 가두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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