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가 아버지에 대해 가르치기 전에 이렇게 외쳐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천국을 항해 나아가는 사람은 땅에서 매여 있는 것이 없어야 한다.

 

마태복음 4장

17.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써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마가복음 1장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우리에게 천국이 가까이 오면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것이 회개이다. 이 말은 죄를 가지고 천국을 갈 수 없다는 말이다. 죽음을 앞둔 노후는 자신의 죄를 없애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나이가 들어 죽기 전에 후회하지 말고 살아있는 동안 영혼을 돌아보는 시간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늙어서 자신의 돈을 전부를 기부하는 일은 이미 추수가 코 앞인데 거름을 많이 주는 것과 같다.

이러한 행위로 자신의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호와는 육신을 정결하게 하라고 명령한다. 그렇지만 예수는 영혼이 깨끗하고 온전해야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쳤다.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제자들을 조롱하는 유대인들에게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몸을 더럽게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가 잘못된 가르침으로 헛소리한다고 조롱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한국 속담에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구세주 앞에 이스라엘의 모습이 그러하다. 영적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어리석음이다. 무지로 천국 아버지를 비난하고 있다.

 

죄는 여호와의 구속물이다. 그런 이유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발목이 잡히는 꼴이다. 이것이 인간이 지상의 영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이다. 의의 날개로 날아 천국으로 가야 하는 영혼이 죄로 발목에 사슬을 걸은 꼴이니.

 

요한복음 3장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니고데모와 예수의 대화이다.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가 없다고 하였다. 영적으로 거듭나라는 말씀에 먼저는 회개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이유는 혼의 몸을 내면에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성이나 뇌라고 말하는 것은 혼의 감각 일부이다.

 

흐릿하고 불명확한 혼의 몸을 온전한 영의 몸으로 만들어야 한다.

물이 얼음이 되듯, 나무에서 열매가 열리듯, 새의 알에서 생명을 얻는 것과 같이 혼의 몸을 영의 몸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그 변화를 입은 사람은 죄에서 멀어지고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 진리의 높은 산을 올라 자신의 집을 짓고 천국을 소망하게 된다.

 

마태복음 7장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신앙인으로 생기는 갈등과 혼돈은 잘못된 지식에서 비롯된다. 예수의 복음은 생명이고 영의 양식이라 스스로가 성장을 경험하고 삶의 평정을 찾게 된다.

 

죄를 저지른 자가 교회에서 회개만 하면 그 죄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편하고 얄팍한 이기심인가!

입으로 하는 회개가 자신의 죄를 가볍게 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구원을 받는 사람이 적다. 입으로 편하게 구원을 받으려는 사람이 많아 천국 가는 길은 복잡하지 않을 듯하다.

 

마태복음 5장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의 죄를 그 당사자와 풀고 와야 한다는 것이다. 땅의 일을 땅에서 풀어야 하는 이유는 땅의 일의 주관자가 여호와이기 때문이다. 여호와에게 발목을 잡히지 말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마태복음 5장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최소한 예수의 복음을 들은 사람은 유대인보다 의가 더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보다 의가 많아야 천국의 아버지가 명분이 생긴다. 죄는 죄대로 짓고 예수의 이름으로 퉁쳐 달라고 말하는 교인들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단순히 기도나 예수의 이름으로 죄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의 잘못된 가르침과 교세를 확장하고 성도를 모으려는 교회의 오류이다. 면죄부를 만들어 파는 행위, 신부에게 고해성사로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행위, 교회를 위해 헌금을 하거나 헌신하는 행동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간사한 마음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기 위해 철저히 자신의 죄를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부자들은 많은 돈을 버는 동안 자신이 누구에게 죄를 짓고 있는지도 모른 채 수 많은 잘못을 저지른다.

 

기업 회장들은 자신들이 모르고 짓는 죄가 매우 많다. 각 계열사 사장이 지은 죄와 매장의 점주가 지은 죄까지 일부는 회장의 몫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라. 기업의 가장 낮은 직급의 월급이 월 300만 원이 (2022년 기준) 안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매장의 점주는 일 년에 억이 넘는 이익을 가져가고 회사 임원은 수억의 월급을 받고 회장은 대주주의 명분으로 1,000억이 넘는 돈을 가져간다.

 

말단 직원이 벌어들인 돈을 회장이 가장 많이 가져가니 바닥에서 일어나는 죄의 값도 같이 짊어지고 가야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1,000억을 버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벌어들인 돈을 회장이 가져감으로 돈에 묻은 죄와 피 값도 같이 가져가는 꼴이다.

 

한국의 삼성전자에는 산업재해로 죽거나 병든 사람들,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은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이 본사 앞에서 집단시위를 하며 억울한 일을 예수의 이름으로 고한다면 예수가 그들의 기도를 듣지 않겠는가?

불의하게 벌어들인 돈에는 누군가의 눈물과 희생의 값이 있다. 그런 이유로 예수 때의 부자보다 지금의 부자들이 훨씬 죄가 많은 연고로 그들은 천국을 가지 못한다.

 

약자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상소한 모든 것을 다 갚기 전에는 기업 회장들의 영혼은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며 그들의 죄의 무게가 차면 그 영혼은 소멸한다. 부자들이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저지른 죄가 이미 넘쳐나 그들의 생은 마지막을 장식할 것이다.

 

사후 세계가 없다고 웃는 그들도 늙고 죽는다.

 

자신이 모르고 짓는 죄는 없다. 이런 간사한 말로 세상을 속이지 말아라. 인간은 육신 외에 혼의 몸이 있어 자신이 잘못한 것은 시간이 지나면 깨우친다. 특히 예수의 복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그 입에 독이 없어 말로 상처를 주지 않으며 몸으로 악한 일과 타협하지 않는다.

 

예수의 복음은 사람을 변하게 하고 혼의 몸이 영의 몸으로 열매 맺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리하여 자신의 허물을 빨리 알아본다.

흰 캠퍼스의 그림 같이 등불 앞에 자신을 보는 거울같이 죄와 멀리하게 된다. 예수 복음의 능력이다.

 

부자의 양심에 꺼리는 사건도 합법적으로 처리했다며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한다.

대형 로펌에 의뢰하여 법망을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한국에는 전관예우를 통해 약자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존재가 재벌가들이다.

 

모두가 부자를 부러워한다. 죽음을 준비해야 할 인간이 영적인 세계를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대가로 살아서 먹고 즐기는 일에 목숨을 건다.

 

돈이 많아 돈지랄한다는 표현이 있다. 수십 대의 자동차와 황금의 집을 자랑하고 통장의 현금을 자랑하는 너희도 죽음에 이른다. 그 죽음 앞에 베풀 긍휼은 없다.

 

어떤 기업으로부터 일방적인 해고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 몸이 아파 집에 있는 동안 제3자를 통해 회장에게 해고 통보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회장과 친분이 있는지라 해고 통보를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

 

그 일로 기도하는 중에 돈다발로 내 목을 긋는 환상을 보았다. 평소 자신이 일 년에 수 조원을 번다고 자랑하고 매년 교회와 성직자에게 기부를 많이 한다고 내 앞에서 사설을 늘어놓았다. 그로부터 이런 부자가 천국을 갈 수 있는지 의문이 시작되어 그 회사의 입사를 수락했다.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고 돈을 벌어 성직자를 돕거나 세상에 기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과연 의로운 사람인지 알기를 원했다.

내 개인적인 경험이라 치부해도 좋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을 팔아 장사하는 사람임을 알았다.

 

예수에게 물었다.

 

그가 천국을 갈 수 있습니까?”

 

예수의 대답은

 

부자가 헌금과 기부를 많이 하는 이유는 땅의 영광과 하늘의 영광을 모두 누리려는 사악한 생각이다

 

그 부자를 보면서 부자가 천국을 가지 못함을 깨우쳤다. 부자와 거지 나사롯의 이야기처럼 부자는 물질의 주인인 여호와의 종으로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얼마나 헌금을 많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죄를 짓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돈으로 지은 죄는 여호와가 구속이고 육신으로 누린 만큼 죽음은 참혹하다.

 

천국을 갈 수 있는 중요한 열쇠는 먼저 죄에서 멀어지고 의에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다.

 

교인들은 죄의 문제를 예수의 이름으로 청산하려 한다. 목사나 신부의 기도로 대신하길 원한다.

개개인의 죄를 청산하지 못한 채 쌓여만 간다. 잘못된 교회의 가르침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을 놓쳐버린다.

 

교인들의 매주 드리는 십일조와 헌금으로 교회의 창고는 넘쳐난다. 그러나 개인의 의의 창고는 오히려 갚아야 하는 빚으로 가득하다.

부자는 자신이 갚아야 하는 죄의 빚이 넘쳐난다. 그러한 이유로 천국의 근처도 가지 못한다.

 

마태복음 18장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땅에서 누린 보물은 죽어서 가져가지 못한다. 육신으로 지은 죄는 고스란히 남아 영혼을 잠식한다.

교회를 다니는 부자는 자신이 천국을 간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육신의 위로를 받는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은 구원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육신을 가지고 살아있는 동안 철저한 자기 검정이 필요하다. 그 모든 기준은 예수의 말씀이다.

 

개인 간에도 서로 상처를 주고 죄를 범하기도 한다. 그 대상이 자신의 옆에 있는 누군가이기에 화해하고 서로 상처를 치유하는 시간을 가지면 된다. 물론 죄를 범하여도 무시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러지 말아야 한다. 시간이 지나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회개하고 그 사람에게 잘못을 뉘우치면 된다.

 

돈이 많은 부자는 만나는 사람이 많아서 누군가에게 죄를 지어도 모를 때가 있다. 또한 죄지는 것을 알면서 돈을 위해 무시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마음이 구약의 여호와가 준 이기심이다. 여호와는 자신을 믿는 이스라엘을 위해 다른 민족은 처참하게 죽이고 노예 삼기를 독려했다. 구약 성경의 해석과 축복이 여호와를 섬기는 백성에게 한정적이다. 이런 이유로 자기 백성을 할례라는 표시를 통해 구별 짓고 있다.

 

여호와가 물질을 축복하는 대상을 구분하여 다르게 표시한 것은 자신 외에 다른 신이 있음을 스스로가 증명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의 주인이고 유일한 하나님이라면 세상을 구별하여 나눌 필요가 없다.

 

재벌가들이 돈으로 타인과 구별 짓고 사회가 학벌로 구별 짓는 것, 사람의 피부 색깔로 구별 짓는 바보 같은 행위가 여호와를 믿는 교회의 실상이다.

 

이런 여호와의 본성이 잘 묻어나는 것이 재벌 총수의 모습이다.

기업의 회장은 자신의 회사와 돈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한다. 그 일이 사람을 다치게 하는 일임을 알아도 묵인하는 경우가 있다. 내 가족, 회사를 위해 직원들이 죽어 나가도 상관없다. 대의를 위해 개인은 희생해도 된다는 신념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여호와의 함정이 있다.

함정을 가르쳐 줄까?

 

인간에게 물질을 주는 이유가 함정이다.

창세기 9장에 사람의 생명을 죽이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피를 피로 갚는다는 말이다. 회사에서 죽거나 다친 사람의 값을 여호와도 묻는다는 말이다. 설마 여호와가 부자에게 영생에 이르는 선물을 줄거라 생각했는가?

 

여호와는 인간의 영혼을 소멸하기 위한 죄의 값을 저울질하는 존재이다.

어리석은 사람들아.

여호와는 인간들이 많은 돈으로 죄를 많이 짓기를 바란다. 잔혹하고 포악하게 사람을 다치지는 일을 바라는 자가 여호와이다.

사람을 죽인 회사의 회장과 기업 임원진의 죄가 무거울 것이다.

 

그들이 사람을 죽여 받을 참혹한 심판은 과학의 르네상스가 열리면 영적 세계가 과학으로 증명될 것이다. 믿지 않아도 좋다.

 

사람들은 육신으로 영원히 살지 못하는 것을 깨우치고 다른 별로 이동하여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인간에게 영적인 세상이 함께 공존함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 세상에 살며 새로운 다른 공간을 꿈꾸고 달을 관광하는 사람들이 영적인 세상이 있음을 발견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영생의 인류를 발견한 인간들은 그들처럼 되기를 소망하지만 그 답을 찾지 못해 엄청난 혼돈에 빠질 것이다. 그대들이 믿는 여호와가 빛의 하나님이 아니고 천국의 주인도 아님을 직면할 것이다. 각자가 지은 죄의 값을 치러야 하는 참혹한 현실을 마주할 것이다.

 

마가복음 2장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들 때문에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니

5.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생각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신성모독이로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생각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사람을 살리는 행위보다 율법이 더 중요한 사람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보다 자신의 권위가 더 중요한 사람들.

 

신이 인간을 이롭게 하지 못한다면 그를 믿을 이유가 없다. 인간이 겪고 있는 병과 죽음의 고통을 돌아보지 않는 신을 섬길 필요가 있는가?

 

죄와 율법은 여호와로부터 시작되었고 그 죄의 구속에서 해방시킨 존재가 예수이다.

예수가 이스라엘 백성중에 아버지의 자녀를 찾아 지상에 왔다. 하지만 예수가 본 이스라엘인들은 죄의 구속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먼저 주인을 결박하고 감옥에 있는 양들을 풀어줘야 하는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은 오히려 예수를 죽였다.

 

맹목성은 눈과 귀를 닫는 행위로 사망에 이른다.

여호와가 유일신이다.

돈이 전부다.

권력이 전부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구세주를 발견하지 못한다. 그를 만나면 자신의 권세보다 강하므로 오히려 죽이려 든다.

 

인간을 구속하는 죄의 문제에서 자유롭기 위해 예수의 가르침을 아는 것이 절대적이다.

국가마다 법이 달라 사형이 집행되는 곳도 있고 아닌 곳도 있다. 낙태가 허용되는 나라도 있고 아닌 나라가 있다. 나라마다 법과 제도가 달라 잘못하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이 말은 여호와의 주관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은 율법과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말이다.

인간의 행위의 값을 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영생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알아야 한다.

 

육신은 혼의 감옥이다. 창세기 아담과 여자가 에덴에서 쫓겨나 가죽옷을 입은 사실을 기억하는가?

혼의 아담과 여자는 어둠의 통치자 얄다바오트를 피해 다른 곳에 있었고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 열매를 먹은 대가로 에덴에서 쫓겨나 지금의 지구라는 어둠의 통치자가 다스리는 가장 낮은 곳에 보내졌다.

 

아담의 혼은 천국 아버지가 보낸 천사에 의해 지식을 습득하고 빛이 났다. 하지만 부모를 떠나는 사건이 발생하여 어둠의 통치자가 혼의 인간들을 동물의 육체에 가두어 두게된다. (인간의 기원편을 읽어라)

 

동물의 육체를 입은 혼의 인간은 자신의 거처와 참된 아버지를 잊어버리고 망각이란 여호와의 저주의 샘물을 마셨다.

인간은 그런 이유로 자신이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 채 눈에 보이는 육신의 삶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 혼의 몸을 소멸하고 심판할 도구로 율법과 죄의 구속을 여호와가 선포한다.

 

동물의 육체를 입은 혼의 인간은 참된 구세주를 만나 자신이 벗었음을 알고 새로운 옷을 지어 입어야 한다. 그 옷이 영의 옷, 영생이다.

진리에 무지하고 헐벗은 자신의 영혼에게 빛을 선물해 줄 수 있는 시간이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이다.

 

예수가 영이 아닌 육체로 세상에 온 이유는 육신의 인간에게 주어진 60 ~ 100년 정도 시간이 지식을 습득하고 영의 회복을 돕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감옥에 있는 동안 감옥을 벗어나는 준비를 하지 못한 혼의 인간은 죽음을 맞이하면 어둠의 통치자들에게 끌려가 형벌을 받는다.

 

여호와를 믿지 않거나 죄가 가벼운 혼의 인간은 세상을 떠돌거나 나름의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육신을 입고 다시 태어난다.

 

이런 이유로 혼의 인간이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은 육신을 가지고 살아 있는 동안이다.

다른 비유를 들면 새들이 알을 낳고 품는 시간이 지나면 새끼가 태어난다. 혼의 몸이 육신의 품에서 새로운 영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자신을 품어줄 예수의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다.

 

어미 새가 알을 돌보지 못하면 썩고 생명을 얻지 못한 채 죽는다.

우리의 혼은 새로운 생명을 얻는 시간이 필요한데 대부분은 여호와의 물질에 취해서 자신의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지 못한다.

 

설령 구원을 바라고 소망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여호와의 목자는 삯꾼이라 문제이다. 그들은 이리가 오면 양들을 버리고 도망친다.

 

인간의 혼을 구속하는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이지만 그 생명을 노리는 뱀이 있는 사실을 명심하라.

어미가 떠난 둥지를 뱀과 다른 동물이 공격하듯, 혼의 인간을 잠식하려는 사탄이 있다. 그러하므로 예수의 가르침 안에 있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예수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사이비 집단과 자신이 메시아라 말하는 모두를 조심하라. 예수가 육신의 몸으로 재림하는 일은 없다.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다시 죄의 문제로 돌아가서 여호와를 떠나 죄에서 자유로운 나라로 이주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가 죄에서 자유롭게 하며 영생을 주는 분이다.

 

마태복음 21장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회개는 자신이 욕망에서 벗어나 아버지의 명령을 기억하는 것이다.

나도 가끔은 이익을 위해 고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럼 마음이 들면 이런 생각을 한다.

 

인생 뭐 있나?

즐겁게 살다가 아버지 나라에 가야지. 다시는 육신을 입고 지상에 오고 싶지 않다.

육신의 부귀영화가 뭐가 중요하겠나?

천국은 이 세상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빛날 테니 말이다.”

 

세상을 구하고 약자를 돕고 불의에 항거하라. 악을 심판하기 위해 기도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삶이 아버지의 명령이고 뜻이다.

 

부자는 죄의 문제를 청산하고 다시 돌아가기에 너무 멀리 왔다. 죄의 짐도 많고 상소도 많은 이유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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